배우 윤계상(31)
‘집행자’ 주연 윤계상
악수를 나누고 자리에 앉자마자 배우 윤계상(31)이 말했다. “저 <한겨레> 1년째 구독 하고 있어요.” 이 사람 혹시 ‘인터뷰의 기술’ 같은 책을 읽고 나온 것일까? 첫마디부터 상대의 호감을 사는 말을 하거나 약점을 공략하는 이른바 ‘선빵의 법칙’을 알고 있다. 그가 날린 ‘선빵’ 덕에 인터뷰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그는 “그나마 가장 올바른 신문인 것 같아서 (한겨레를) 본다”며 “발음 공부를 하려고 사설을 소리 내어 읽는다”고 말했다. 신문 읽기도 연기 연습의 일환인 셈이다.
그는 다른 어떤 배우보다도 연기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정확히 말하면, “진정한 연기자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누구보다도 강하다. 2004년 배우로 전업한 이래 그의 모든 노력은 ‘아이돌 그룹 지오디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연기도 잘 모르는 가수 출신이 얼굴 좀 알려졌다고 배우 행세한다는 말을 듣기 싫었다. 티브이 오락프로엔 좀처럼 얼굴을 내밀지 않았고, 일부러 진지하고 우울한 역을 고집했다.
‘아이돌’ 꼬리표 떼려 고심 또 고심
사형 집행관 감정변화 너끈히 소화
“배우로서 느낌 갖는게 진짜 소원” 영화 <집행자>의 신입 교도관 오재경 역도 그렇다. 공무원 수험생 생활 3년 만에 경쟁률이 낮은 교도관 시험에 지원해 가까스로 합격한 오재경. 재소자들에게 존댓말을 하며 인간적으로 대하려고 하던 신참 교도관은 점차 상말과 폭력에 호소하는 교도관이 되어 간다. 그리고 12년 만에 부활한 사형 집행을 직접 맡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윤계상은 성격과 감정이 복합적으로 변모해가는 이 배역을 성공적으로 소화했다. “오재경이라는 배역이 저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오재경이 우연히 교도관이 되듯이 저도 우연히 배우가 되고, 오재경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 사형 집행에 참여하는데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면, (일생일대의 작품이 되리라 생각했던) <비스티 보이즈>가 저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줬던 것도 비슷해요. 그리고 오재경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교도소 근무를 계속하듯, 저도 다시 연기하고 있잖아요.”
이 짧은 말 속에 배우로서 윤계상의 편력과 고뇌가 함축돼 있다. “연기에 아무 관심 없을 때” 변영주 감독의 <발레 교습소>(2004) 시나리오가 들어왔고, 한두 쪽만 읽은 상태에서 출연 제의를 거절하려고 변 감독을 만났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읽지 않았다는 말에 화가 난 변 감독은 윤계상의 자존심을 건드렸고, 그는 이 사람을 이겨보고 싶다는 생각에 영화에 출연하게 됐다.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가 너무 좋아 “이 감독에게 온몸을 불살라야겠다”고 생각하고 찍은 영화가 <비스티 보이즈>(2007)였는데, 40분 이상이 잘려나가며 캐릭터가 무너지는 걸 지켜봐야 했다. 그 뒤 8개월 동안을 자폐아처럼 지냈다. 시나리오도 보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선택한 작품이 드라마 <트리플>(2009). “주연이 아니라 조연이더라구요. 내가 이렇게까지 떨어졌구나, 이게 내 위치구나 생각했죠.” 지독한 슬럼프를 <트리플>로 극복한 뒤 선택한 영화가 <집행자>였다.
“시나리오를 보니까 ‘주워 먹는’ 역할은 아니었어요. 뒤로 물러나서 관찰하는 쪽이었어요. 촬영 15회차까지 리액션밖에 없었다니까요. 답답하지만 기다리게 만들었어요. 유일하게 과하지 않은 연기를 한 것 같아요. 지금까지 내가 뭔가를 빨리 보여드리려고 급했구나라는 걸 깨닫는 과정이었어요.” <비스티 보이즈> 때 인터뷰를 하면서 그는 “대한민국에서 연기로 열 손가락 안에 들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도 꿈은 변하지 않았다. “배우로서의 느낌을 갖고 싶어요. 정말 소원입니다.” 요즘 좀처럼 만나보지 못한 강한 열망이다. 5일 개봉.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사형 집행관 감정변화 너끈히 소화
“배우로서 느낌 갖는게 진짜 소원” 영화 <집행자>의 신입 교도관 오재경 역도 그렇다. 공무원 수험생 생활 3년 만에 경쟁률이 낮은 교도관 시험에 지원해 가까스로 합격한 오재경. 재소자들에게 존댓말을 하며 인간적으로 대하려고 하던 신참 교도관은 점차 상말과 폭력에 호소하는 교도관이 되어 간다. 그리고 12년 만에 부활한 사형 집행을 직접 맡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윤계상은 성격과 감정이 복합적으로 변모해가는 이 배역을 성공적으로 소화했다. “오재경이라는 배역이 저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오재경이 우연히 교도관이 되듯이 저도 우연히 배우가 되고, 오재경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 사형 집행에 참여하는데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면, (일생일대의 작품이 되리라 생각했던) <비스티 보이즈>가 저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줬던 것도 비슷해요. 그리고 오재경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교도소 근무를 계속하듯, 저도 다시 연기하고 있잖아요.”
영화 <집행자>
“시나리오를 보니까 ‘주워 먹는’ 역할은 아니었어요. 뒤로 물러나서 관찰하는 쪽이었어요. 촬영 15회차까지 리액션밖에 없었다니까요. 답답하지만 기다리게 만들었어요. 유일하게 과하지 않은 연기를 한 것 같아요. 지금까지 내가 뭔가를 빨리 보여드리려고 급했구나라는 걸 깨닫는 과정이었어요.” <비스티 보이즈> 때 인터뷰를 하면서 그는 “대한민국에서 연기로 열 손가락 안에 들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도 꿈은 변하지 않았다. “배우로서의 느낌을 갖고 싶어요. 정말 소원입니다.” 요즘 좀처럼 만나보지 못한 강한 열망이다. 5일 개봉.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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