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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리얼판타스틱영화제 준비현장

등록 2005-07-13 17:09수정 2005-07-14 16:21

전세계에서 공수된 상영작 필름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는 리얼피판 스태프 박찬진씨.
전세계에서 공수된 상영작 필름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는 리얼피판 스태프 박찬진씨.
[100℃ 르포] 오른손으론 ‘릴’ 잡고 왼손은 필름 감싸쥐고 하루 13시간 돌린다 돌려

사무실 바깥 좁은 복도,
여러나라서 공수돼온 필름들이 쌓이고…
손끝과 두 눈만으로 이상여부 가려야 하는
20대 젊은이의, 바쁜 눈동자가 번뜩인다

 “여차저차 해서요, 요기로 오시면 돼요.”

지난 8일 전화로 물어 찾아간 리얼판타스틱영화제 운영위원회 사무실은 서울 성북구 돈암동 시네마빌딩 지하에 자리잡고 있었다. 어, 그런데 사무실이 낯이 익다. 알고 보니 영화인회의와 한국영화제작자협회가 함께 쓰는 사무실이다. 영화제를 후원하기로 한 영화인회의가 자신의 사무실을 영화제 스태프에게 임시로 내준 것이다.

 “처음 이 사무실로 들어온 지난 3월에는 우리 스태프가 3~4명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스태프만도 10명 가까이 되고 자원활동가도 25명이나 생겼어요. 덕분에 주인인 영화인회의 사람들은 저쪽으로 밀려나고 우리가 한가운데를 떠억 하니 차지하게 됐죠.” 영화제 홍보를 맡은 석영화(24)씨가 20평 남짓한 지하 사무실의 한쪽 구석으로 밀려난 영화인회의 사람들을 향해 슬쩍 눈짓하며 설명하는 말투에서 미안함과 고마움이 함께 묻어난다.

서울 돈암동 영화인회의 사무실 한켠을 빌어 연 리얼피판 운영위원회 사무실.
서울 돈암동 영화인회의 사무실 한켠을 빌어 연 리얼피판 운영위원회 사무실.


사무실 바깥의 좁은 복도 역시 이들 차지였다. 박찬진(22)씨가 복도에서 여러 나라에서 공수해온 필름의 상태를 꼼꼼히 살피고 있다. 오른손으로 필름을 건 릴을 빠르게 돌리는 동안 흰 장갑을 낀 왼손으로 필름을 감싸쥐고 이상이 없는지 손끝 촉각을 곤두세운다. 왼쪽 릴에서 오른쪽 릴로 빠르게 감겨가는 필름에 꽂힌 두 눈이 번뜩인다. 찢어진 곳은 없는지, 필름 양쪽 끝 구멍이 막히지 않았는지, 불순물이 붙어있지 않은지를 왼손의 감각과 두 눈에 의지해 100% 수작업으로 가려내야 한다.

 “장편영화 한 편 검색하는 데 보통 1시간 정도 걸리지만, 필름 상태가 좋지 않은 고전영화는 4~5시간 걸리기도 하죠. 혼자서 60편이 넘는 영화 필름을 모두 검색하려다 보니 하루 13시간씩 꼬박 매달려야 해요. 영화제가 일주일도 채 안 남았으니 더욱 속도를 내야죠.”

사무실 안에서는 영화에 입힐 자막을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다. 여은정(29)씨가 전문번역가들이 번역해 보내온 자막을 영화와 직접 대조하며 마지막 손질을 하고 있다. 그 옆에선 다른 스태프가 영화 속 대사 시간을 하나하나 재어 기록하고 있다. 오래 내뱉는 대사에는 긴 자막을, 금새 내뱉는 대사에는 짧은 자막을 넣도록 번역에 앞서 사전 작업을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필름들이 영화제가 임박해서야 도착하는 터라 가장 마지막까지 바쁠 수밖에 없는 작업 분야다. 밤샘 작업은 필수고, 영화제 도중에도 자막을 가다듬어야 하는 등 작업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14일부터 23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필름포럼(옛 허리우드극장)에서 열리는 리얼판타스틱영화제는 지난해 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에서 뚜렷한 이유 없이 해촉된 김홍준씨와 스태프들이 뭉쳐 ‘진짜’ 판타스틱 영화제를 하겠다며 준비한 영화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방자치단체와 국가의 예산을 지원받는 부천영화제와 달리 갖가지 어려움에 부닥칠 수밖에 없었다. 김도혜(39) 프로그래머는 “우리가 날마다 하나하나 이뤄가는 게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다.

사실 상영작을 섭외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올 부천영화제를 위해 200편 이상을 머릿속에 선별해 둔 터라 이를 60여편으로 간추리기만 하면 됐다. 그 동안의 사정을 설명해주면 대부분이 선뜻 영화를 보내주기로 약속했다. 다행스럽게도 부천영화제와 섭외가 겹친 영화는 3~4편에 불과했다. 같은 ‘판타스틱’ 영화제임에도 서로 상영하고자 하는 영화의 뱡향성이 달랐던 것이다.

필름 검색 작업은 한 편에 보통 1∼5시간이 걸린다.
필름 검색 작업은 한 편에 보통 1∼5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돈이었다. 20여억원을 지원받는 부천영화제와 달리 예산을 2억원으로 잡았지만, 이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기업 후원금은 1천만원에 그쳤다. 프로그래머 3명은 월급을 반납했고, 다른 스태프들도 차비 정도만 받으며 나와 일했다. 하루 17시간씩 일하는 등 1명이 2~3명의 몫을 해내야 했다. 몇달 동안은 실업급여를 받으며 생활했지만, 이젠 그나마도 끊겼다.

이런 가운데 영화인과 일반 시민들이 모아준 후원금이 큰 힘이 됐다. 홈페이지(realfanta.org)에 가보면, 10만원 이상 후원한 ‘레알판타 선수’ 200명의 명단 가운데 박찬욱 감독, 배우 김혜수씨 등 영화인부터 고등학생·회사원·주부까지 다양한 이들의 이름을 볼 수 있다. 1만원 이상 후원한 ‘레알판타 응원단’ 400여명이 남긴 격려의 글도 있다. 이렇게 해서 모인 후원금이 4천만원 가량이다. 영화제 티켓이 대부분 팔린다 해도 전체 예산 2억원에는 못미치기 때문에 레알판타 응원단 모집은 영화제가 끝나는 날까지 문을 열어두기로 했다.

 “부천영화제의 12분의 1에 불과한 예산으로 3분의 1 편수에 해당하는 영화를 소개할 수 있게 됐어요. 힘을 실어준 영화인들과 일반 시민, 그밖에 주변에서 도움을 준 많은 이들 덕분이죠. 사실 이 영화제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열릴 수 있을지는 장담 못합니다. 그 동안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래도 이번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친다면 ‘진심만 있으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세상에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김 프로그래머의 말이다.

리얼판타스틱영화제와 부천영화제의 막이 오늘 동시에 오른다. 양적 차이는 이미 드러나 있다. 이제 관객들이 질적 평가를 하는 일만 남았다.

사진 강재훈 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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