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만화를 토대로 만든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 배우 김수현은 북한의 최정예 요원으로 서울 달동네에 남파돼 ‘바보 동구’로 신분을 감춘 원류환 역을 맡았다. 쇼박스 제공
[문화‘랑’]영화
웹툰독자 100만 겨냥 원작 충실
첫 주연 김수현, 캐릭터 재현 성공
감독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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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성공한 소설이나 만화로 만든 영화에서 원작은 최소한의 흥행을 보장하는 울타리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 꼭 넘어야 할 벽과도 같다. 영화 제작단계부터 관심을 높여주는 계기가 되는 대신, 원작에 대한 기대감이 영화에 대한 만족도를 줄이기도 하는 ‘양날의 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달 5일 개봉하는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열혈 독자만 100만명에 이른다는 최종훈 작가의 웹만화를 영화화했다. 원작은 서울의 한 달동네 바보가 알고 보니 북한 최정예 남파공작원이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포털사이트에서 누적 조회수 4000만건을 기록했고, 누리꾼들이 뽑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웹만화’ 집계에서 1위에 올랐을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영화 <은밀하게…>는 만화 속 장면을 몽땅 스크린으로 옮겨왔다고 해도 좋을 만큼 원작에 충실하다. 북한의 최정예 부대인 ‘5446 특수공수대’ 조장인 원류환(김수현)이 9년 동안의 극한 훈련을 이겨낸 뒤 남파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서울 달동네에 침투한 원류환한테 내려진 첫 지령은 뜻밖에 ‘방동구’란 이름으로 바보행세를 하며 다음 지시를 기다리라는 것. 그는 2년 넘게 ‘6개월에 1회 이상 노상에 대변을 볼 것’ ‘하루 3회 이상 이유없이 넘어질 것’ 등의 임무를 수행하며 마을주민들한테 따뜻한 보살핌을 받는 달동네 구성원이 된다. 원류환 역의 김수현이 “관객들한테 부담을 주지 않는 진짜 ‘동네 바보’처럼 보이려 했는데, 힘을 빼고 연기를 하니까 나중에 쾌감이 느껴지더라”고 할 만큼 깔끔한 연기를 선보였다.
장난스러운 전반부와 달리 후반부에는 원류환의 옛 북한 특수부대 동료 리해랑(박기웅)과 리해진(이현우)도 달동네에 남파돼 합류하면서 긴장감이 영화를 지배한다. 북에서 떨어진 ‘자결 명령’을 원류환 일행이 거부하면서, 이들을 제거하기 위해 남파된 특수공작부대 총책임교관 김태원(손현주) 대좌 등 북한 요원들과 결전을 벌이는 모습이 거칠게 그려진다. ‘주워온 바보 아들’ 원류환이 달동네를 떠나는 장면에서 엄마노릇을 해온 슈퍼 주인 전순임(박혜숙)이 건네는 통장에 ‘우리 동구 월급, 우리 둘째 아들, 아들 장가 밑천’이라는 글이 새겨진 대목에선 가슴 짠한 눈물도 자아낸다.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내내 영화는 원작의 이야기 틀을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감독 입장에선 원작을 뛰어넘는 영화에 도전하는 위험 부담 대신, 열혈 독자층을 관객으로 끌어안는 안전 전략을 택한 셈이다. 영화의 핵심 장면에선 원작의 구도까지 화면에 담으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주요 등장인물들의 경우 복장과 머리모양뿐 아니라 만화 속 주인공들의 벗은 몸매까지 고스란히 닮았다. 김수현의 경우 “인물을 연기하다가 막힐 때마다 ‘정답이 여기 있다’는 생각으로 원작을 들여다봤다”고 밝혔다. 영화를 연출한 장철수 감독은 “기존의 웹만화 팬들한테 누를 끼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 실패하지 않은 작품으로서 기억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원작 주인공과 배우가 얼마나 닮았는지를 말하는 ‘싱크로율’은 기대해도 좋을 만하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과 1300만 관객을 동원한 <도둑들>로 ‘충무로에서 가장 뜨는 배우’가 된 김수현은 바보 ‘방동구’와 냉철한 공작원 ‘원류환’을 오가며 첫 주연답지 않은 연기를 펼쳤다. 원작자인 최종훈 작가가 “첫 촬영 때 사람들이 김수현을 왜 최고의 배우라고 한 지 알게 됐다. 이보다 캐릭터와 싱크로율 잘 맞는 배우가 있겠냐”고 했을 정도다. 신인급 배우인 박기웅, 이현우도 리해랑, 리해진 역을 맡아 걸쭉한 북한사투리와 거친 남파공작원 연기를 무리 없이 소화했다. 소름 돋는 반전 연기를 펼치는 고창석의 연기는 또다른 볼거리다.
후반부로 갈수록 구성이 다소 느슨해지는 점은 아쉽다. 데뷔작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2010년)로 칸 영화제 비평가주간 장편경쟁 부문에 초청됐던 장철수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영화 <아저씨>의 무술감독 박정률이 합류해 등장인물들의 강도 높은 액션 연기를 지휘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원작 캐릭터. 쇼박스 제공
웹만화를 토대로 만든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 배우 김수현은 북한의 최정예 요원으로 서울 달동네에 남파돼 ‘바보 동구’로 신분을 감춘 원류환 역을 맡았다.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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