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11일 오후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 시네마운틴 벽면 광장에서 열린 오픈토크에 참석하고 있다. 2013.10.11 뉴스1
부산영화제 폐막…봉준호-타란티노 감독 ‘깜짝 토크’
18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안선경 감독의 <파스카>와 몽골의 비암바 사키아 감독의 <리모트 컨트롤>에 뉴커런츠상을 안기고 12일 폐막했다. 2년 연속 20만명 관객 돌파(21만7800여명)라는 외연적 성공뿐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한국독립영화(<만찬>)의 첫 폐막작 선정 및 아시아 신인감독 작품 비중 증가 등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뭐라해도 영화제의 매력은 영화인과 관객의 직접 만남. 폐막 전날밤 야외극장 상영작 <과거를 찾아서>의 감독 리치 메타는 꽤 긴 영화소개와 인삿말을 한국어로 했다. 밤별이 보이는 무대, 서툰 한국말 한줄한줄에 보내는 따뜻한 환호와 박수, 감독의 상기된 표정…바로 이런 순간이 사람들이 부산영화제를 찾는 이유 아닐까.
예정에 없던 손님이라면 더욱 흥분될 터. 미국 쿠엔틴 타란티노(50) 감독의 9일 ‘자발적 입국’은 강동원 논란, 태풍 향 등 악재가 적잖았던 영화제 종반부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몇년째 초청에 공들여도 인연이 없던 그가 며칠 전 불쑥 마카오라며 전화를 걸어와 모든 비용은 필요없으니 영화만 보게 해달랬다고 한다. 타란티노는 “친구가 부산에 가면 봉준호 감독을 만나게 해주겠다고 했다”고도 말했다. 애초 일체의 공식행사를 않겠다던 타란티노도 영화의 전당 안 무대 앞은 물론 구름다리까지 몰려든 사람들의 열띤 반응에 들뜬 표정이 되어갔다. 축제의 마무리에 어울렸던 11일 두 감독의 아드레날린 넘치는 70분간의 오픈토크 내용을 옮긴다. 사회는 미국의 영화평론가 스캇 파운더스가 맡았다.
“‘살인의 추억’ 보고 스필버그의 ‘조스’가 떠올라”
타란티노 <괴물>을 미국 개봉 당시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특히 <살인의 추억>을 보고나서 봉준호 감독의 광팬이 됐다. 걸작이다. 70년대 미국영화가 떠올랐다. 스필버그 감독의 <조스>가 공포스럽지만 유머가 있는 것처럼.
봉준호 70년대 미국영화를 좋아했다. 장르의 컨벤션(정형성)을 그대로 한국에 풀면 적용이 안된다. 뉴욕이 배경이면 멋질텐데 한국에 오면 논두렁에서 굴러떨어지면서 흙탕물이 튀는 식(<살인의 추억>)이다. 미국의 장르 컨벤션이 한국에 와 어떻게 망가지는가 그런 기이함에서 새로운 게 나오지 않나 싶다. 미국영화라면 과학자나 군인, 근육질 사람들이 괴물과 싸우는데 우리는 망가진, 바보같은 가족들(<괴물>)이다. <설국열차>는 처음으로 그런 것 전혀 없이 에스에프에 정면도전해보자라는 생각에서 만든 작품이다. 그런데 역시 이런 장르 쾌감을 폭발시키는 건 옆에 있는 이분이 잘하지 않나 싶다.
타란티노 불쌍하고 망가진 가족들, 미국영화나 세계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인물이다. 거기서 출발해 몬스터영화를 재창조한 거다.
봉준호 형님 영화의 캐릭터도 정상은 아니다. (웃음)
“내 영화 좋아하면 ‘내추럴 본 킬러’ 절대 보지 마라”
사회 타란티노 감독은 연쇄살인이나 괴물 영화 만들 생각 없나? 봉 감독은 도전하고 싶은 장르가 있나?
타란티노 연쇄살인범 영화는 안 만든다. 이 지구가 내가 만든 연쇄살인범 영화를 감당할 수 없을 거다. 내 깊숙이 뒤틀린 질병을 드러낼 것 같다.(웃음)
봉준호 올리버 스톤 감독의 <내추럴 본 킬러> 시나리오를 쓰지 않았나?
타란티노 내가 쓴 각본이지만 정말 싫어한다. 내 영화를 좋아하면 절대 보지 마라.(웃음)
봉준호 2차대전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한다거나 무인도 배경 영화도 해보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건 뮤지컬. “오늘밤~”이렇게 노래가 시작되는 순간, 부끄럼을 참을 수가 없다. (웃음)
타란티노 내가 장르영화를 좋아하는 건 흥분감과 재미 때문이다. 하지만 난 장르를 재구성해서 내 스타일로 ‘쿠엔틴 버전’으로 재창조하려 애쓴다. 나는 영화를 배우는 학생으로 내가 죽는 날이 영화학교를 졸업하는 날이다.
봉준호 장르영화, 예술영화 이런 구분 않는다. 뭐가 날 흥분시키느냐, 그 이미지에 꽂혀가느냐가 중요하다. 어느 쪽이든 볼땐 흥분되고 나와선 여운있는 영화를 생각한다.
타란티노 사실 봉 감독 <마더>도 그렇지만 <재키브라운>이 꼭 장르영화일까? 캐릭터에 관한 영화이자 흑인착취, 인신매매 등 여러 주제가 나온다.
사회 타란티노 감독은 훌륭한 아시아영화 소개가 임무라 말한 적도 있고 실제 기타노 다케시 등 소개에 앞장섰다. 어떻게 그렇게 됐나?
타란티노 70년대 성장 당시 티브이와 극장에서 보는 게 다른 나라 영화들이나 B급 장르라 말하는 것들이었다. 홍콩 대만의 무협영화, 일본의 괴수영화, 또 마카로니 웨스턴 같은 영화를 너무 좋아했다. 어제 부산에서 35㎜ 필름으로 장철 감독, 왕우 주연의 <외팔이>를 보며 너무 흥분했다. 장철은 오랜 나의 영웅이다. 홍콩에서 활약한 한국 감독들의 영화들도 어릴 적 봤다. 일제 시기 순사와 여성 주인공이 싸우는 <레이디 쿵푸> 같은 무협영화였다. 나는 역사를 배우기 전 그런 영화를 통해 한국이 일본에 어떤 혹독한 세월을 당했는지 알게 됐다.
변희봉씨의 경우 타란티노 영향이다
봉준호 70년대엔 볼 게 티브이밖에 없었다. 주한미군 방송인 이 있었는데, 이게 금·토요일 밤이면 야하고 폭력적인 걸 했다. 그때야 영어도 모르고 영상을 보며 내 맘대로 영화를 구축했는데 커서 보니 그게 존 카펜터 같은 이들의 영화였다.
“변희봉 선생은 타란티노 영향이다”
사회 봉 감독의 경우 송강호, 변희봉 등 자주 일하는 특정배우가 있다. 타란티노도 마찬가지다. 이유는?
봉준호 다시 일하면 편하다. 송강호씨와 세 작품을 했는데 갈수록 대화가 줄어든다. 좋은 의미에서. 변희봉 선생의 경우 타란티노 영향이다. <펄프픽션>이나 <재키브라운>을 통해 존 트라볼타나 팜 그리어 같은 배우들이 다시 주목받았다. 변희봉 선생 역시 10년 넘게 영화를 안했는데 영화에서 폭발시키면 어떨까 했다.
타란티노 B급 슬래셔무비들을 보면 배우들 연기 잘한다. 저런 이들에게 좋은 시나리오를 주면 어떻게 나올까 궁금했다.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이 <터커>에서 당시 바닥을 헤매던 마틴 랜도 같은 배우를 쓰는 걸 보고 영감을 받았다. 물론 진 해크먼이나 더스틴 호프먼 같은 배우는 늘 연기를 잘하지만 그들은 늘 좋은 영화에 출연해왔다. 샘 페킨파 감독처럼 나도 배우 군단이 있다. 하지만 그건 무엇보다 그들이 내가 쓰는 대사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봉준호 그런 면에서 크리스토프 왈츠(<바스터즈: 거친 녀석들>)는 어떻게 발견했나? 대단한 배우다.
타란티노 그가 내게 온거다. 한스 란다라는 캐릭터는 쓰다보니 점점 살이 붙어가며 언어천재가 되어갔다. 란다는 내가 만든 최고의 캐릭터다. 이를 완벽하게 표현할 배우가 필요했는데, 독일에서 추천받은 몇몇 배우는 아니었다. 1주일 안에 안되면 영화를 엎을 결심을 하고 있었는데 이틀 뒤 왈츠가 나타나 오프닝 장면을 해보였다. 이 영화를 내게 되돌려준 배우다.
사회 지금은 거대예산 영화들을 성공시켰지만 둘다 독립 저예산에서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초기영화의 매력이나 개성을 잃지않고 있는데 비결이 있나?
봉준호 <설국열차>는 첫 영어 영화이긴 하지만 제작사나 투자사가 다 한국이었다. 그래서 내가 보호받을 수 있었다. 할리우드의 경우 스튜디오 간섭도 많은 걸로 아는데, 400억원짜리 영화를 만들며 크리에이티브면에서 압박 같은 걸 받은 적 없다. 행운이라 생각한다.
타란티노 그건 내가 감독인 동시에 작가였기 때문이다. 내가 시나리오 쓰면 많은 이들이 감독하고 싶어한다. 만일 그런 것만 했다면 좀더 빨리 성공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감독이며 작가였던 것, 그게 내 목소리를 지킨 거다.
부산/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봉준호,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11일 오후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 시네마운틴 벽면 광장에서 열린 오픈토크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3.10.11 뉴스1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11일 오후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 시네마운틴 벽면 광장에서 열린 오픈토크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3.10.11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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