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급사들 극장 디지털화 비용 분담액 한해 수백억원
“가상필름비 부당” 반발에 대기업 체인과 소송 비화
“가상필름비 부당” 반발에 대기업 체인과 소송 비화
필름영화 시대가 사실상 저물고 있다. 하지만 국내 영화 배급사들은 여전히 ‘유령’ 필름 프린트값을 내고 있다. 그 액수가 영화 한 편당 최대 5억원, 영화업계 전체로는 한해 수백억원에 이른다. 어떻게 된 일일까?
대기업 극장체인 씨지브이와 롯데시네마는 2007년 필름 대신 디지털 파일로 상영하는 스크린 1000여개를 확보하겠다며 ‘디지털 시네마 사업’을 본격화했다. 당시 이들은 “극장을 디지털화하면 1벌에 200만원 안팎이던 필름 프린트가 필요 없어지는 만큼 배급사도 극장 디지털 시설비 일부를 부담하라”며 배급사와 ‘디지털시네마 이용계약’을 맺었다. 필름 프린트값이 사라진 데 따른 ‘비용 분담’이란 명목의 이른바 ‘가상필름비’(VPF·Virtual Print Fee)를 물린 것인데, 배급사는 상영 스크린 수에 최대 80만원을 곱한 돈을 내야 한다. 어지간한 상업영화 한 편에 가상필름비로만 억대의 돈이 들어간다.
이를 위해 씨지브이와 롯데시네마는 지분을 절반씩 투자한 자회사 ‘디시케이’(DCK)를 설립해 디지털영사기 1000대 이상을 자신들의 극장에 공급하고, 배급사한테 받은 가상필름비로 실제 영사기값의 3분의 2가량을 충당해오고 있다. 극장 쪽은 시설 초기 영사기값의 3분의 1만 내고 해마다 유지·보수비를 내는 조건으로 10년 뒤 영사기 소유권을 이전받게 된다.
이후 소니코리아와 <스포츠조선> 자회사인 에스디시(SDC)코리아가 디지털 시네마 사업에 합류하면서, 배급사들은 메가박스와 일부 단관극장 상영에도 가상필름비를 내고 있다. 지난해 전국 1967개 상영관 가운데 디지털시네마 상영관은 1863개로 95%를 차지하는데 이들 3개 회사가 가상필름비를 걷는 스크린 수는 1800개에 이른다. 영화계에선 전체 연간 가상필름비가 300억원, 그 중에서 디시케이 한 곳이 거둬들이는 액수만 200억원 정도로 추산한다.
배급사들은 극장의 시설투자비인 영사기 구입·관리 비용을 콘텐츠 공급자인 배급사에 덮어씌우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디시케이는 사실상 시장지배적 사업자인 씨지브이와 롯데시네마가 만든 합작회사로, 배급사가 계약 이행을 거부할 경우 극장 상영에 불이익을 주는 등 불공정 행위를 벌인다는 불만을 사고 있다. 지난 1일 영화사 청어람은 “가상필름비가 부당하다고 생각해 디시케이에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더니 롯데시네마와 씨지브이가 개봉 예정작의 극장 예매서비스를 차단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내기도 했다.
또 초기 비용 부담을 나누자는 애초 취지와 달리, 디지털 영사기 비용의 회수 시점이 다가오는데도 기약 없이 가상필름비를 내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디시케이는 지난해 11월 문화체육관광부, 주요 영화단체와 맺은 ‘한국영화 동반성장 이행협약’에서 “가상필름비 정산 정보를 공개하겠다”고 했지만 합의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영화계는 비용회수 시점 등 정보를 공유해 초기 디지털 시네마 사업이 완료되는 시점엔 가상필름비와 디지털 시네마 대행업체도 정리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디시케이 쪽은 “국외 직배사와는 가상필름비 지급 시한을 ‘최대 10년’(2020년까지)으로 계약서에 명시했지만, 국내 배급사들이 복잡한 계약서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이라며 “지급 시한이 되기 전이라도 초기 디지털 영사기 비용 정산이 끝나면 회사는 없어지거나 다른 사업을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