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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아이 존엄사’ 절절한 고통 아로새긴 ‘마이보이’

등록 2014-03-20 19:53수정 2014-03-21 21:42

전규환 감독이 6번째 영화 <마이보이>를 내놨다. 할리우드식 장르영화의 틀 없이, 이번에도 어린아이의 존엄사를 앞둔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놀랄 만큼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트리필름 제공
전규환 감독이 6번째 영화 <마이보이>를 내놨다. 할리우드식 장르영화의 틀 없이, 이번에도 어린아이의 존엄사를 앞둔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놀랄 만큼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트리필름 제공
[문화‘랑’] 영화
전규환 감독의 6번째 작품
파격적 소재에 사실적 연출
차인표·이태란 등 스타 기용
“슬픔을 어떻게 누르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새로운 실험”
전규환(아래 사진) 감독한테는 늘 ‘파격’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7년 남짓한 영화 연출 이력부터가 짧지만, 강렬하다.

그는 첫 영화 <모차르트 타운>(2008)으로 도쿄영화제 등에 초청받으며 단숨에 주목받는 감독이 됐다. <애니멀 타운>(2009), <댄스 타운>(2010)까지 ‘타운 3부작’을 완성하자 평단에서는 “현대 사회에 대한 돋보이는 묘사로 대가의 역량을 지녔다”며 무명에 가깝던 감독에게 극찬을 보냈다. <댄스 타운>과 2011년 작 <불륜의 시대: 바라나시>로 2년 연속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받았고, 2012년에는 영화 <무게>가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퀴어라이언상’을 받았다. <르몽드>, <버라이어티> 등 유력 언론들이 그를 ‘아시아를 이끌어 갈 차세대 스타 감독’으로 꼽기도 했다. 진짜 파격이라면, 그가 데뷔작 <모차르트 타운> 이전에 배우 조재현, 설경구 등의 매니저 생활을 하며 단편영화 한편 찍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영화의 소재와 스크린에 구현된 영상도 평범 이상이다. 그동안 그는 소아성범죄(<애니멀 타운>), 착취당하는 탈북여성(<댄스 타운>), 꼽추 염쟁이와 트랜스젠더 형제의 밑바닥 삶(<무게>), 테러의 도시 바라나시에서의 불륜(<불륜의 시대>), 아동 존엄사(<마이보이>) 등을 소재로 삼았고, 이 가운데 <불륜의 시대>, <무게>는 성기 노출, 시신과의 정사 장면 등이 논란을 부르며 영상물등급위원회한테 잇따라 ‘제한상영가’를 받았다.

영화 <마이보이>의 한 장면.
영화 <마이보이>의 한 장면.

하지만 전 감독은 “파격적인 소재를 좋아하지 않는다”거나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고 말한다. 여성의 가슴과 남성의 성기를 동시에 가진 트랜스젠더, 시신과 정사가 등장하는 영화 <무게>에 대해서조차 “우리가 깊이 관심 갖지 않는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를 다뤘을 뿐 파격이나 추상이 아니”라고 했다. 그의 영화가 여느 감독들이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극단적인 기괴함과 전혀 다른 울림을 주는 것은 이런 ‘전규환식 리얼리티’ 때문인지 모른다.

영화 <마이보이>(4월10일 개봉)는 전규환 감독이 내놓은 6번째 장편영화다. 성인들한테도 강도 높은 전작들과 달리 이번엔 ‘12살 관람가’ 영화를 내놓자 그 또한 ‘파격’이란 말이 붙었다. 그는 “‘전규환이 변했다’는 말을 듣는데, 모든 영화에서 장르 변주와 문법을 바꾸려는 실험의 일환일 뿐”이라며 “이번에는 우리 사회가 슬픔을 어떤 방식으로 누르느냐를 보여주기 위해 걸맞은 형식을 썼고, 다음 작품에는 또다른 실험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는 갑작스런 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진 아이 유천(오즐)과 이별을 준비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그렸다.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초등학생 형 이천(이석철)은 동생의 휠체어를 끌고 가출하고, 홀로 남은 엄마(이태란)는 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 아직 숨쉬는 아이의 존엄사를 선택한다. 영화는 작위적인 설정 없이 가족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가며, 이들의 밑바닥 감정을 마치 화면에 클로즈업하듯 내밀하게 보여준다. 특히 유천의 산소마스크를 떼는 날, 일상 속에서 슬픔을 억누르며 살던 이들이 폭발시키는 감정의 진폭이 너무나 강렬하다. 마지막으로 유천이한테 환자복 대신 화사한 새 옷을 갈아입히고 “가지 말라”며 절규하는 엄마의 모습은 한 인물의 실제 고통의 깊이가 화면 밖으로 전해진다고 느껴질 만큼 절절한 울림을 준다.

전규환 감독
전규환 감독

그러나 영화는 거기서 더 나아가지 않는다. 이들의 아픔이 또다른 인연으로 발전하거나, 남은 이들을 위한 해결책을 제시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전 감독은 “관객들이 인공적인 이야기를 가미하거나 조미료를 치는 데 익숙해져 또다른 이야기로 전개되는 걸 좋아할지 모르지만, 내가 아는 현실은 그 이상의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그런 방식이 인물들의 슬픔을 해소하는 데도 도움이 안 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작들과 달리 이번 영화에는 대중들한테 인지도가 높은 배우 이태란, 차인표 등이 출연했다. 차인표는 유천이 가족을 연민과 애정으로 지켜주는 ‘도예가’ 역을 맡았다. 전 감독은 “이들이 영화를 대중들한테 알리는 구실도 크지만, 기성 배우들의 캐릭터를 해체해 관객들한테 그들의 또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감독한테는 중요한 작업”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동생의 죽음에 원인을 제공하고 방황하는 주인공 이천 역에는 연기 경력이 없는 중학생 이석철을 캐스팅했다. 실제 전문 드러머 활동을 하는 이석철은 동생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드럼을 치면서 폭발시키는 마지막 장면에서 연기 경력이 없다고 믿기 어려운 뜨거움을 쏟아낸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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