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감독.
조정래 감독, ‘귀향’ 제작 나서
구사일생 강일출 할머니 실화 바탕
구사일생 강일출 할머니 실화 바탕
영화계에서 일본군 성노예 또는 위안부 문제는 주로 다큐멘터리로 다뤄졌다. 1995년 이후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3부작, 안해룡 감독의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2009), 권효 감독의 <그리고 싶은 것>(2013) 등이 모두 피해 할머니들의 실제 모습과 육성을 담았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일이어서 여기에 극적인 요소를 넣어 가공하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 관객들한테 극 영화는 다큐와 또다른 흡입력을 갖는다.
조정래(41·사진) 감독이 내년 개봉을 목표로 준비 중인 <귀향>은 국내에서 시도 자체가 드물었던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극영화다. 25일 서울 대학로 한 찻집에서 만난 조 감독은 “2차대전 당시 초등학교 3~4학년 또래의 초경도 안 한 소녀들이 끌려가서 참혹한 일을 당하고,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끝내 죽임까지 당했던 사건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국제사회가 공인한 최악의 전쟁범죄”라며 “한편의 극영화로 이런 현실을 이해하도록 돕고, 지금의 세대가 공감할 수 있도록 문화적 증거를 남겨둘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에는 1943년 일본군에게 납치되듯 중국 목단강 위안소에 끌려가 일본군 성노예 생활을 하다 숨져간 15살 안팎 소녀들의 참혹했던 실상을 보여준 뒤, 현재를 사는 어린 무녀가 이들의 원혼을 고향으로 부른다는 이야기가 담긴다. 실제 16살 나이로 목단강 위안소에서 ‘일본군 성노예’ 생활을 했던 강일출 할머니가 2차 대전 말기 일본군의 ‘소각명령’으로 다른 위안부들과 집단 학살을 당하기 직전 독립군의 도움으로 살아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조 감독은 “상당수 위안부 소녀들이 국외 전쟁터에서 숨졌다. 누구에게나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을 향한 그리움으로 그 곁에 머물려는 회귀본능이 있는데, 영화에서나마 이들의 원혼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도 원혼들이 고향에 돌아오기를 바라는 뜻을 담아 ‘귀향’(鬼鄕)으로 지었다.
조 감독은 예술고등학교 국악합창반 학생들의 합창대회 도전기를 그린 영화 <두레소리>(2012)로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도쿄국제영화제 등에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조 감독은 창작판소리 그룹 ‘바닥소리’에서 북을 치는 고수로 활동하던 2002년 ‘나눔의 집’에 위문공연을 갔던 게 인연이 돼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영화화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할머니들의 시간은 지금도 끔찍했던 일을 당하기 전 소녀 시절에 멈춰 있어요.” 그래서 조 감독은 할머니들을 ‘주름진 소녀’라고 표현한다. 그는 “영화가 위안소 생활 끝에 숨진 소녀들의 억울한 원혼을 달래고, 살아남은 이들의 찢긴 과거를 조금이나마 보듬어 줄 수 있었으면 한다. 또 죄를 지은 이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라는 촉구의 뜻도 담을 것”이라고 했다.
조만간 주연급 캐스팅을 마무리하고, 올여름 중국 현지 촬영 등을 거쳐 내년 3월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10억원 이상의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투자사를 찾는 한편 뜻에 동감하는 시민들의 후원도 기다리고 있다. ‘귀향’ 누리집(guihyang.com)을 통해 이미 400여명이 3000만원 이상을 후원했고, 재일동포들이 영화가 제작된다는 소식을 듣고 50만엔을 보내오기도 했다. 대기업 투자·배급사와 중국 쪽 기업에서 투자에 관심을 갖고 접촉해오는 점도 반갑다.
“주변에서 ‘왜 그걸 다시 끄집어내느냐’며 냉소적인 태도를 보일 때는 정말 어려움을 많이 느낍니다. 하지만 억울하게 숨진 소녀들의 혼령을 고향으로 모시는 데 이 영화가 구실을 했으면 좋겠어요.”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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