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내 거 인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18년 지기가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썸’을 타기 시작한 이 남녀는 오랜 시간 ‘소꼽 친구’를 가장한 채 서로의 곁에 머무른다. 어라? 어디선가 많이 본 설정이다. 이젠 고전이 된 <해리와 샐리가 만났을 때>부터 최근작 <러브, 로지>까지, 이 레퍼토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흔한 연애사일지 모른다. 14일 개봉하는 영화 <오늘의 연애>는 이승기와 문채원이라는 두 대세 배우를 내세우고 요즘 세대의 언어와 놀이문화, 데이트 코스 등을 촘촘히 담아내는 방식으로 이 낯익은 설정에 새로운 포장지를 두른다. <죽어도 좋아>(2002) <너는 내 운명>(2005) <내 사랑 내 곁에>(2009)를 만든 박진표 감독의 신작이다.
노래·드라마·예능을 종횡무진하던 만능 엔터테이너 이승기(28)는 여자에게 번번이 차이는 초등학교 교사 준수 역을 맡았다.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예쁜 기상캐스터 현우(문채원)에겐 밥 먹자면 밥을 먹어주고, 술 먹자면 술을 먹어주며 곁을 맴도는 ‘남자 사람 친구’기도 하다. 첫 영화로 톡톡 튀는 로맨틱 코미디를 택한 이승기를 12일 만났다.
데뷔 10년만의 첫 영화에서 언제나처럼 ‘반듯한 모범생’ 역할을 맡은 이승기. 너무 안전한 선택 아니냐는 질문을 던져봤다. “욕설에 술주정까지 하는 반전 매력을 선보인 채원씨는 썩 괜찮은 옷을 입은 셈이죠. 반면 평범한 준수에게 매력을 불어넣어야 하는 제 연기는 겉으론 쉬운 선택으로 보이지만 실제론 훨씬 까다롭지 않을까요?” 그동안 시나리오가 꽤 많이 들어왔을 법 한데, 데뷔는 늦은감이 있다. 여러 분야를 병행 하다보니 시간이 없었다는 그는 <오늘의 연애>를 선택한 배경에 대해 “박진표 감독님의 <너는 내 운명>을 너무 좋아했다. 약간 신파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사랑의 진실함과 진중함을 담아내는 스타일에 믿음이 갔다”고 설명했다. 박 감독은 캐스팅 후 원래 준수 캐릭터 위에 화도 잘 내고 질투도 폭발하고, 그러면서도 허당끼가 있는 이승기의 모습을 덧입히는 ‘맞춤형 수정’을 해줬다고 한다.
‘누난 내 여자니까’로 데뷔한 이승기는 노래 가사처럼 학창시절 연상녀를 짝사랑 해 본 경험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경험치가 연기에 큰 도움이 되진 않더라고. “경험 만큼 연기할 수 있다면 카사노바가 역사상 최고의 멜로 연기자겠죠. 여자들은 판타지 속에선 옴므파탈을 좋아하지만 현실에선 준수 같은 순정남을 원하잖아요? 연기로든 실제로든 여자는 너무 어려워요. 하하하.”
영화 속 준수처럼 이승기도 ‘고소공포증’이 있다. 그래서 자이로드롭을 타며 고백하는 하이라이트 장면은 그에게 큰 도전이었다. “감독님이 자존심을 건드리더라고요. ‘원하면 대역을 쓰겠다. 그런데 예전에 ○○○은 모든 걸 대역 없이 해냈다’는 식으로요. 와~ 그 얘기 듣고 절대 대역 달란 말 안 나오죠. 결국 자이로드롭을 37번이나 탔어요.” 덕분에 고소공포증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단다. 이렇게 드라마든, 영화든, 예능이든 할 때마다 하나씩 배워나가며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한는 이승기는 스스로를 “후천적 연예인”이라고 표현했다.
데뷔 이래 10년 동안 따라다니는 ‘국민 남동생’칭호에서 벗어나려면 전략적으로 ‘센’작품도 해야하지 않을까? “그 고민은 데뷔 5년차 때 끝냈다”고 쿨하게 답하는 이승기. “드라마 <너희들은 포위됐다>, <구가의 서> 등에서는 선이 좀 굵은 역할을 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여전히 ‘꽃미남’을 떠올리죠. 근육을 과시하며 마초성을 폭발시키는 것보단 이승기다운 남성성을 보여주는 게 답인 듯 해요.” 대신 데뷔 이래 똑똑한 역할은 해 본 적이 없다며 의사, 검사, 변호사 같은 전문직 연기를 꼭 해보고 싶다는 대답을 덧붙였다.
흥행성적에 대한 바램을 물었다. ‘신인 영화배우’답지 않은 솔직한 답이 돌아왔다. “손익분기점이 190만명이니 손해는 안 보는 것이 1차 목표예요. 하지만 감독님 최고 흥행작 <너는 내 운명>(350만명)을 넘어서는 게 더 큰 목표죠.” 배우로서의 포부도 가감없이 드러냈다. “저 상 욕심 많아요. 신인상 당연히 탐나죠. 40살쯤 됐을 땐 남우주연상도 받고 싶고요. 이런 건 좀 솔직해도 되지 않나요?”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사진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