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떡하지, 야구가 좋아질 것 같다. 해마다 프로야구 시즌이면 8개월 동안 경기중계로 꽉 찬 채널이며 붐비는 야구장을 모른 척 살았는데…. 올해는 시즌도 되기 전에 영화판에서 장외 리그가 한창이다. 한국 첫번째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를 담은 다큐멘터리 <파울볼>(조정래·김보경 감독)이 4월2일 개봉한다. 1982년 봉황대기 결승전에 진출한 재일동포 학생야구단 선수들을 다시 찾아가는 <그라운드의 이방인>(김명준 감독)은 3월19일 상영을 시작했다. 서울 독립영화전용관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3월18일부터 25일까지 열린 한국 스포츠 다큐멘터리 기획전에선 고등학교 야구 선수들의 역전 드라마를 담은 <굿바이 홈런>(이정호 감독·2013년 개봉)이 다시 관객들을 찾았다. 10개 구단, 연간 144경기에 누적 관중 1억을 넘는 시대에 ‘헝그리 야구’ 정신이라니. 그러나 전설적인 명승부가 아닌 ‘언저리 선수들’의 모습을 담은 영화들은 야구장 밖 관객들의 인생과도 겹친다. “버티기만 하면 뭐라도 될 거야.” 우리 대부분은 영화 <파울볼> 속 김성근 감독의 말을 믿으며 산다.
■ 독립구단의 눈물 ‘파울볼’
“아무리 경기를 망친 날도 내일은 잘해야지 하며 잠들어요. 그러나 마운드가 없어지니까 다음날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거예요.” 넥센 불펜코치로 활동하다 2013년 고양 원더스에서 다시 선수생활을 시작한 김수경의 말이다. <파울볼>은 계속 뛰고 싶다, 계속 보고 싶다는 선수와 관중의 마음이 이끌어가는 영화다. “여기가 우리의 마지막이다.” 2011년 12월12일 고양원더스 창단 직후, 다시 그라운드에 선 선수들은 이렇게 말했다. 구단의 방출, 은퇴 등으로 정규리그에서 뛸 수 없게 된 이들은 택배 배송 기사, 일용직으로 일하며 벼랑 끝에 서 있었다.
2014년 9월11일, 결국 팀이 해체된 선수들의 ‘실패한 도전’을 굳이 영화로 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영화의 내레이션을 맡은 배우 조진웅은 “모두가 고양 원더스를 알고 있지만 아무도 그들의 경기를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4년 전 김성근 감독을 인터뷰하러 갔던 날 이 장면이 영화가 될지 안 될지도 모르면서 멀찍이서 카메라를 들고 있던 조정래·김보경 감독을 보았다. 그로부터 1093일 동안 카메라는 고양 원더스 감독과 선수, 팬들을 따라다녔다. 영화에서 웃음 포인트였던 코치진이 지독한 훈련을 몰아치고 선수들이 허둥대던 장면들은 모두 진짜다. 어떤 위대한 승리도 예정되어 있지 않지만 거듭되는 타격 훈련에 터지고 고름이 흐르는 손을 들고 다른 팀을 만나 깨지고 또 깨지면서 조금씩 커온 것도 진짜다. 선수와 감독은 경기수가 늘어나면 정규리그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실제 고양 원더스는 21명의 선수들을 프로리그에 보냈다. 이대로 경기수가 늘고 선수들의 기량이 날로 향상된다면 모두 가슴 설레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려도 좋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2014년 9월 고양 원더스는 한국야구위원회와 운영 방향이 맞지 않는다며 돌연 해체를 선언했다. 영화 전반 주역이 김성근 감독이라면, 후반은 프로리그에 가지 못한 12명의 선수들이 중심이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영화는 역전홈런 따윈 존재하지 않는 현실을 비추며 인디뮤지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노래 ‘절룩거리네’를 거세게 흘려보낸다.
김성근 감독은 영화에서 2번 눈물을 흘린다. 한번은 이희성 선수가 처음 프로야구 팀으로 가게 됐을 때, 다른 한번은 구단이 해체를 결정한 날이다. 관객은 아슬아슬한 승부가 아니라 벼랑 끝 선수의 운명을 두고 마음을 졸이다 눈물을 떨구고 만다.
■ 언저리 야구의 희망 ‘굿바이 홈런’, ‘그라운드의 이방인’
“굴하지 마, 다시 기회가 있어. 야구로 치면 우리는 1이닝밖에 안 한 거야. 정말 잘했어.” 늘 지기만 하는 원주고 야구부의 이야기를 담은 <굿바이 홈런>에서 나이 스물도 안 된 선수들은 고개를 떨구었다가 또 일어난다. 밑바닥에서 올려다보니 프로야구는 거대한 피라미드다. 유소년 야구선수 5000명, 고교 신인 700명. 그중 70명만이 프로리그에 선다. 프로야구 연습생인 ‘신고선수’로 뛰다가 스타플레이어로 성공하는 선수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1군에서 뛸 기회를 얻기 위해 몸부림치다 끝나고 만다. 화면은 흔들리고 경기 소리에 섞여 선수들의 말은 잘 들리지 않곤 하지만, 고교 선수들이 얼마나 절박한지 충분히 전해진다.
“이겼다! 31년 만에 우승이야!” 1982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군산상고와 맞붙었던 재일동포 고교야구단 선수들을 찾아나선 <그라운드의 이방인>. 몸도 마음도 무거운 48살의 아저씨들은 31년 만에 다시 선 잠실야구장에서 그때처럼 던지고 뛰어오르며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고 해도) 오늘은 참 행복하다”고 외친다.
<굿바이 홈런>에서 늘 예선에서 탈락하던 원주고 야구부를 따라다니던 카메라는 2009년 처음으로 화랑기 4강까지 오르는 장면을 담을 수 있었다. 그 뒤 다시 부진했던 원주고 야구부는 지난해 처음 대통령배를 거머쥐었다. 32년 만이다. 영화는 끝났지만 선수들의 분투는 그 후에도 계속됐던 것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각 영화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