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순수미술을 훔치다-‘영화, 그림 속을 걷고 싶다’ 한창호
‘영화, 그림 속을 걷고 싶다’ 쓴 영화평론가 한창호
대중예술의 대표격인 영화와 순수예술인 미술은 멀고도 가까운 예술 장르다. 장면 하나하나가 ‘한 폭의 그림’같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까지 떠올리지 않더라도 잘 만들어진 영화 한 편이 주는 즐거움에는 극적 긴장감, 캐릭터의 매력 뿐 아니라 심미적인 쾌감을 빼놓을 수 없다.
영화평론가 한창호(44)씨가 쓴 <영화, 그림 속을 걷고 싶다>(돌베게)는 영화의 상상력에 순수미술의 전통이 어떻게 침윤돼 있고 각기 ‘대중’과 ‘순수’라는 배타적 직함을 단 두 예술장르가 어떻게 소통하는지 보여주는 해설서다. 한씨는 스릴러 영화인 히치콕의 <싸이코>와 현대 미국인의 적막한 내면을 표현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이 지니는 심리적, 심미적 유사성을 짚어내고, 한국영화 <스캔들-남녀상열지사>의 화면구도에서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에 짙게 깔려있던 허무주의를 발견한다.
10년 동안의 기자생활을 접고 97년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난 그가 영화와 미술을 접목시키는 작업을 시작한 건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이탈리아는 그가 열광했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와 루키노 비스콘티 같은 걸출한 작가를 탄생시킨 영화의 나라이면서 르네상스 이후의 서구 미술을 탄생시킨 곳이 아닌가. “볼로냐 대학에서 수업을 들을 때 마음이 답답하거나 머리 속이 복잡하면 늘 대학 옆에 붙어있는 미술학교를 찾아갔어요. 우두커니 앉아서 그림을 보는 게 습관이 되면서 두서없이 머릿속에 기재되있는 얄팍한 미술지식을 정리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죠.” 한국에서 영화를 공부할 때부터 영화광이기보다는 오페라, 미술, 팝음악 등 잡식성 예술애호가에 가까웠던 그는 대학에서 ‘르네상스 미술사’를 들으면서 미술을 공부하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한다.
“안토니오니나 비스콘티, 베르톨루치, 파졸리니같은 이탈리아 감독 뿐 아니라 고다르, 로메르, 폴란스키같은 유럽 감독들의 작품에는 회화적 이미지가 매우 강합니다. 특정한 미술작품을 인용한다기보다 무의식 속에 각인된 유럽 미술의 전통이 스크린으로 투사되는 것이죠. 유럽 뿐 아니라 미국 감독 가운데서도 데이비드 린치나 팀 버튼처럼 미술학교 출신이 많아요. 이들은 예사롭지 않은 화면을 만들어내죠.” 그의 노트는 ‘폴란스키-<대해적>-벨라스케스’식으로 영화와 미술을 연관시킨 메모들로 빼곡하다. <영화, 그림 속을 걷다>는 지난해 4월부터 <씨네21>에 연재해온 원고들 가운데 35편을 추렸다. 앞으로 김기덕, 봉준호 등 한국 감독의 영화와 미술을 접목시키는 작업도 해보고 싶다는 그는 이 책을 통해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미술 못지 않게 근사한 영화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영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보다 폭넓은 시야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강재훈 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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