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
일본 소년만화의 위용
‘18년 동안 77권 출간, 35개 나라에서 3억2000만부 발행’
지난 15일 ‘단일 작가에 의한 코믹 시리즈 중 가장 많이 발행된 작품’으로 세계 기네스에 오른 일본 만화 <원피스>의 기록이다. 해적 왕을 꿈꾸는 소년 루피와 그 친구들이 역경을 견디며 전설 속 보물 ‘원피스’를 찾는 과정을 담은 <원피스>의 기네스 등재는 일본 소년만화의 위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연재 14년을 넘기며 2014년 완결된 <나루토>, 올해로 14년째인 <블리치>까지 일본 만화잡지 <소년 점프>가 연재하는 3대 히트작인 이들 만화를 ‘원·나·블’이라 부른다. 지난 20년 동안 일본 만화판을 평정했고, 한국까지 건너온 원나블은 거대한 소년왕국의 또다른 이름이다. 만화가 이어진 긴 세월만큼이나 독자들은 나이가 들었다. 하지만 아직 많은 성인 독자들이 원나블의 세계에 머물며, 그들만의 소년의 시간을 이어가고 있다.
만화잡지 ‘소년점프’ 연재 3대작
원피스, 18년간 3억2천만부 발행
코믹시리즈 중 최다기록 ‘기네스’
나루토·블리치도 10년 넘게 인기 평범한 주인공이 적에 맞서 성장
소년 독자는 그 속에서 희망 찾아
20살 넘어서도 읽는 사람들 많아
여성으로 독자층 넓힌 것도 비결 ■ ‘소년의 시간’ 20년 1997년 <원피스>의 주인공 루피는 해적 왕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 바다로 떠났다. 99년엔 나뭇잎 마을에 사는 소년 ‘나루토’가 진정한 닌자가 되기 위한 수행의 길로 접어들었다. 2001년 만화 <블리치> 주인공 이치고는 사신을 만나 현실세계와는 다른 영적 세계에 눈을 뜬다. 소년만화를 지배했던 세 주인공들은 <드래곤볼> 손오공의 계승자들이다. 90년대 <드래곤볼>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전형적인 싸움물 정도로 여겨졌던 소년만화가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역동적인 액션 장면, 강한 자들과 싸우면서 성장을 거듭하는 주인공 등 소년만화의 전형이 형성된 것도 <드래곤볼>부터다. 90년대 중반 <드래곤볼> <바람의 검심> 등이 연재를 마치면서 시작된 원나블은 소년만화라는 장르를 산업화한 작품들이다. 연재를 시작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원피스>는 지금도 단행본이 나올 때마다 항상 일본 오리콘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다. 2010년 57권이 300만부로 일본 최고 초판발행부수를 기록했고, 2012년 67권이 초판 405만부로 자기 기록을 경신했다. 만화평론가 서찬휘씨는 “10년 이상 장기 연재되는 작품은 그 작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장르의 것, 문화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며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는 소년만화의 장르적 문법을 완성한 작품들”이라고 평가했다. ■ 소년들은 왜 원나블에 빠져드나 소년들은 왜 원나블을 사랑했을까? <블리치>를 한국어로 번역, 연재하는 만화잡지 <점프> 김영진 편집장은 원나블의 매력으로 성장담과 중2병 같은 대사를 꼽는다. 이들 만화의 주인공은 평범한 정도가 아니라 어딘가 모자라거나 제멋대로인 소년이지만 패기 하나로 여러 적과 충돌하며 자신을 성장시킨다. 만화잡지 <코믹챔프> 이봉석 편집장은 “시리즈물은 초반 20권에서 승패가 결정되는데 특히 <나루토>는 무능하고 바보 같은 주인공이 악한 캐릭터와도 공감, 이해, 동정을 통해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 게 성공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나루토>를 그린 기시모토 마사시는 재능도 없고 아둔한데 근성 하나로 버티는 주인공은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것이라고 했다. 만화를 보는 많은 평범한 소년들도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긍지를 하나 버릴 때마다 우리는 짐승에 다가선다” “싸움이야말로 모든 것”…. <블리치>는 자칫 ‘중2병’처럼 보이기 쉬운 허세 부린 대사들을 동양풍의 멋진 일러스트와 함께 적어두는 것이 특징이다. <블리치> 작가 쿠보 타이토는 한회마다 작가의 말 같기도 하고 극중 인물들의 대사 같기도 한 알 수 없는 시를 덧붙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표지와 시를 모은 단행본을 따로 발행할 정도다. <나루토>와 <원피스>도 각각 명언집을 따로 내고 있다. “꿈이라는 걸로 끝낼 생각은 없지만 야망은 있어”(<나루토>) “힘에 굴복하면 사내로 태어난 의미가 없지”(<원피스>). 원나블을 통해 이런 글을 읽으며 소년들은 ‘원피스 세계관’ ‘나루토 세계관’ 같은 것을 완성하곤 한다. 여자 독자로 지평을 넓힌 것도 원나블을 비롯한 소년만화가 성공하는 데 한몫했다. 이봉석 편집장은 “<원피스>는 남자들의 우정을 바라보는 여성의 시선이 존재할 여지를 주면서 소년만화가 아니라 대중만화가 됐다. 사실 소년만화의 절반은 여자들이다. 소년만화가 멋진 대사를 추구하고 싸움 위주 만화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 끝낼 수 없는 원·나·블 <원피스>의 주인공 루피의 나이는 여전히 19살이다. <나루토> 주인공 나루토와 <블리치>의 주인공 이치고는 연재를 시작할 때보다 2살쯤 더 성장했다. 그러나 만화 밖 시간은 정직하게 흘러간다. 소년만화 독자를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라고 하지만, 원나블 독자들은 지금 스무살이 넘었다. 김영진 편집장은 <블리치> “단행본이 나올 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10대 독자들이 줄고 20대 독자들이 늘어나는 것을 느낀다”며 “지금 주독자층은 대학생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일본 만화잡지 <소년 점프>에선 <나루토>가 완결되자 다시 <나루토 외전> 연재를 시작했다. 그만큼 탄탄한 독자를 확보한 원나블을 대체할 새로운 만화가 없다는 반증 아니겠냐는 것이 만화업계의 평이다. 원나블은 여전히 잘나간다. 국내 수입사들이 정확한 판매량을 공개하고 있지는 않지만 한국에서도 <원피스> <나루토>는 연간 단행본 만화 판매량 10위 안에, <블리치>는 50위 안에 드는 것으로 전해진다. 원나블 동호회 등 관련 커뮤니티도 수십개다. 한 원나블 동호회 회원은 게시판에 “초등학교 때 만화방에서 보던 <원피스>를 이제 단행본으로 사서 본다. 그립기도 하고 익숙한 정서기도 해서 그런 것 같다”고 적었다. 책 <일본 만화산업 들여다보기>에선 “소년만화 독자층이 소년 밖으로 넓어진다는 것은 만화산업이 커갈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했다. 일본 소년만화가 주는 열정과 판타지 맛을 알고 있는 세대가 주도적으로 소비에 나서면서 원나블의 시대는 오래 지속된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 사진 대원씨아이, 대원방송, 서울문화사 제공
원피스, 18년간 3억2천만부 발행
코믹시리즈 중 최다기록 ‘기네스’
나루토·블리치도 10년 넘게 인기 평범한 주인공이 적에 맞서 성장
소년 독자는 그 속에서 희망 찾아
20살 넘어서도 읽는 사람들 많아
여성으로 독자층 넓힌 것도 비결 ■ ‘소년의 시간’ 20년 1997년 <원피스>의 주인공 루피는 해적 왕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 바다로 떠났다. 99년엔 나뭇잎 마을에 사는 소년 ‘나루토’가 진정한 닌자가 되기 위한 수행의 길로 접어들었다. 2001년 만화 <블리치> 주인공 이치고는 사신을 만나 현실세계와는 다른 영적 세계에 눈을 뜬다. 소년만화를 지배했던 세 주인공들은 <드래곤볼> 손오공의 계승자들이다. 90년대 <드래곤볼>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전형적인 싸움물 정도로 여겨졌던 소년만화가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역동적인 액션 장면, 강한 자들과 싸우면서 성장을 거듭하는 주인공 등 소년만화의 전형이 형성된 것도 <드래곤볼>부터다. 90년대 중반 <드래곤볼> <바람의 검심> 등이 연재를 마치면서 시작된 원나블은 소년만화라는 장르를 산업화한 작품들이다. 연재를 시작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원피스>는 지금도 단행본이 나올 때마다 항상 일본 오리콘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다. 2010년 57권이 300만부로 일본 최고 초판발행부수를 기록했고, 2012년 67권이 초판 405만부로 자기 기록을 경신했다. 만화평론가 서찬휘씨는 “10년 이상 장기 연재되는 작품은 그 작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장르의 것, 문화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며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는 소년만화의 장르적 문법을 완성한 작품들”이라고 평가했다. ■ 소년들은 왜 원나블에 빠져드나 소년들은 왜 원나블을 사랑했을까? <블리치>를 한국어로 번역, 연재하는 만화잡지 <점프> 김영진 편집장은 원나블의 매력으로 성장담과 중2병 같은 대사를 꼽는다. 이들 만화의 주인공은 평범한 정도가 아니라 어딘가 모자라거나 제멋대로인 소년이지만 패기 하나로 여러 적과 충돌하며 자신을 성장시킨다. 만화잡지 <코믹챔프> 이봉석 편집장은 “시리즈물은 초반 20권에서 승패가 결정되는데 특히 <나루토>는 무능하고 바보 같은 주인공이 악한 캐릭터와도 공감, 이해, 동정을 통해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 게 성공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나루토>를 그린 기시모토 마사시는 재능도 없고 아둔한데 근성 하나로 버티는 주인공은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것이라고 했다. 만화를 보는 많은 평범한 소년들도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긍지를 하나 버릴 때마다 우리는 짐승에 다가선다” “싸움이야말로 모든 것”…. <블리치>는 자칫 ‘중2병’처럼 보이기 쉬운 허세 부린 대사들을 동양풍의 멋진 일러스트와 함께 적어두는 것이 특징이다. <블리치> 작가 쿠보 타이토는 한회마다 작가의 말 같기도 하고 극중 인물들의 대사 같기도 한 알 수 없는 시를 덧붙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표지와 시를 모은 단행본을 따로 발행할 정도다. <나루토>와 <원피스>도 각각 명언집을 따로 내고 있다. “꿈이라는 걸로 끝낼 생각은 없지만 야망은 있어”(<나루토>) “힘에 굴복하면 사내로 태어난 의미가 없지”(<원피스>). 원나블을 통해 이런 글을 읽으며 소년들은 ‘원피스 세계관’ ‘나루토 세계관’ 같은 것을 완성하곤 한다. 여자 독자로 지평을 넓힌 것도 원나블을 비롯한 소년만화가 성공하는 데 한몫했다. 이봉석 편집장은 “<원피스>는 남자들의 우정을 바라보는 여성의 시선이 존재할 여지를 주면서 소년만화가 아니라 대중만화가 됐다. 사실 소년만화의 절반은 여자들이다. 소년만화가 멋진 대사를 추구하고 싸움 위주 만화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 끝낼 수 없는 원·나·블 <원피스>의 주인공 루피의 나이는 여전히 19살이다. <나루토> 주인공 나루토와 <블리치>의 주인공 이치고는 연재를 시작할 때보다 2살쯤 더 성장했다. 그러나 만화 밖 시간은 정직하게 흘러간다. 소년만화 독자를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라고 하지만, 원나블 독자들은 지금 스무살이 넘었다. 김영진 편집장은 <블리치> “단행본이 나올 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10대 독자들이 줄고 20대 독자들이 늘어나는 것을 느낀다”며 “지금 주독자층은 대학생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일본 만화잡지 <소년 점프>에선 <나루토>가 완결되자 다시 <나루토 외전> 연재를 시작했다. 그만큼 탄탄한 독자를 확보한 원나블을 대체할 새로운 만화가 없다는 반증 아니겠냐는 것이 만화업계의 평이다. 원나블은 여전히 잘나간다. 국내 수입사들이 정확한 판매량을 공개하고 있지는 않지만 한국에서도 <원피스> <나루토>는 연간 단행본 만화 판매량 10위 안에, <블리치>는 50위 안에 드는 것으로 전해진다. 원나블 동호회 등 관련 커뮤니티도 수십개다. 한 원나블 동호회 회원은 게시판에 “초등학교 때 만화방에서 보던 <원피스>를 이제 단행본으로 사서 본다. 그립기도 하고 익숙한 정서기도 해서 그런 것 같다”고 적었다. 책 <일본 만화산업 들여다보기>에선 “소년만화 독자층이 소년 밖으로 넓어진다는 것은 만화산업이 커갈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했다. 일본 소년만화가 주는 열정과 판타지 맛을 알고 있는 세대가 주도적으로 소비에 나서면서 원나블의 시대는 오래 지속된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 사진 대원씨아이, 대원방송, 서울문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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