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녀와 키스했다’의 한 장면.
동성애자의 ‘커밍인’ 로맨틱코미디
‘난 그녀와 키스했다’ 23일 개봉
‘난 그녀와 키스했다’ 23일 개봉
아무리 프랑스라고 하더라도 이 농담이 사실일리 없다. 영화 <난 그녀와 키스했다>에서 동성애인과 결혼을 앞둔 제레미는 어느날 처음 만난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여지껏 게이 커뮤니티에서 안정적인 삶을 살아오던 주인공이 단 한번의 원나잇으로 인생을 바꿔야 하는지를 두고 고민한다는 설정은 그렇다치더라도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게이가 아닌 그에게 실망해 싸늘하게 등을 돌린다는 이야기는 허황되게 들려야 마땅하다.
요즘 온라인에선 ‘미러링(거울) 놀이’가 한창이다. 어릴 때 누가 내게 욕을 하면 재빨리 ‘반사’라고 외치던 것처럼 여성 혐오와 조롱 발언을 남성 혐오·조롱 발언으로 바꿔 말하는 놀이다. 여성이 주어가 된 기사에는 으레 ‘김치년’ ‘된장녀’ 같은 댓글들이 달리곤 하는데 여자들은 여기에 또 댓글을 달아 ‘김치놈’ ‘된장남’은 물론 성기의 크기나 신체적 특징을 두고 하는 조롱도 서슴치 않는다. 이미 익숙해진 여성 혐오 발언 자리에 남성 혐오 발언이 들어앉을 때 심리적 충격과 문화적 효과에 남자들은 경악했다. 영화는 마치 미러링 놀이처럼 동성애와 이성애의 자리를 서로 바꿔버린다.
“너도 부르주아 속물처럼 따분해지겠구나.” 커밍아웃할 땐 언제고 이제와서 여자가 좋아졌다고 하는 아들에게 제레미의 어머니는 이렇게 한탄한다. 이성애자인 제레미의 누이동생은 “‘부모님은 항상 우리 제레미는 달라, 제레미는 자유로워’하며 제레미 편만 들더니 꼴좋다”고 조롱한다. 특히 동성애자가 커밍아웃하면 가족의 슬픔과 주변의 배척을 감당해야 하는 광경에 익숙한 한국관객들에게는 거대한 농담이다. “게이니까 똑똑하고 성공한 부자겠지 하고 너를 노리는 거야.” 친구의 말처럼 실제로 약간의 ‘게이 판타지’가 있긴 하다. 그런데 영화는 화려한 ‘말발’과 낭만적인 분위기로 누군가의 사소한 판타지를 있을 법한 이야기로 바꾸어낸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가 원래 그렇듯 말이다.
영화는 또하나의 <러브 액추얼리>처럼 보인다. 다시 말하면 로맨틱 코미디물의 모든 클리셰에 충실한 영화다. 처음엔 현실적인 제약에 걸려 자신의 마음조차 알지 못하던 주인공이 결국엔 사랑을 찾는다는 뻔한 결말을 알면서도 관객들은 로맨틱 코미디물을 본다. 결말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뻔한 낭만이 주는 쾌락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난 그녀와 키스했다>는 동성애자를 주인공으로 한 덕분에 로맨틱 코미디물의 문법에 충실하면 할수록 로맨틱 코미디물을 비트는 것 같은 효과를 내며 예기치 않은 웃음을 준다. 영화를 공동으로 연출한 막심 고바레·노에미 사글리오 감독은 “동성애는 출발점일 뿐, ‘다름’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양성애자든 세상에는 사람들 숫자만큼 많은 종류의 사랑이 있다는 메시지를 향해 영화는 쉬지 않고 조잘거리며 달려간다. 가끔 자기들끼리 면박을 주기도 한다. “사이코처럼 들려. 수위조절 좀 해!” 23일 개봉.
글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앳나인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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