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베 얀손의 캐릭터 무민.
핀란드 작가 토베 얀손이
1945년 ‘무민의 대홍수’ 책 펴내
2차 세계대전 상처 투영도
북유럽 설화속 ‘트롤’ 본떠 탄생
연재만화로 만든 영화 13일 개봉
1945년 ‘무민의 대홍수’ 책 펴내
2차 세계대전 상처 투영도
북유럽 설화속 ‘트롤’ 본떠 탄생
연재만화로 만든 영화 13일 개봉
그곳에 다시 돌아가고 싶다. 이슬방울이 반짝반짝 빛나는 다이아몬드 들판이 있고, 외로운 썰매 언덕이 있으며, 파도와 바람이 이상한 손님들을 데려오는 그곳, 트롤 가족들과 친구들이 사는 무민 골짜기 말이다. 그 골짜기에선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났다. 바닷물을 딸기주스로, 개미귀신은 고슴도치로, 버찌는 예쁜 루비로 바꾸는 요술 모자가 날아들기도 했다. 수상쩍은 요정들과 어수선한 사건들로 어린이들을 사로잡았던 무민은 참으로 이상한 동화였다.
외모부터가 그렇다. 핀란드 사람인 토베 얀손 작가는 어린 시절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를 상상하며 화장실 벽에 못생긴 생물을 그렸는데 나중에 이 칸트 그림이 무민 캐릭터가 됐다. 무민은 하얀 하마처럼 생겼지만 알고보면 북유럽 설화 속 도깨비인 트롤이다. 1945년 <무민의 대홍수>라는 책으로 무민이 처음 세상에 나왔다. 2차세계대전의 상처를 벗지 못한 이 동화 속 주인공은 사랑스럽고도 우울했다. “(사람들이 전쟁 중에) 폭격을 두려워하며 집을 떠났듯 무민 가족은 여행을 떠난다. 초기 작품엔 작가의 근심과 슬픔이 새겨져 있었다.”(<비비시 매거진> 2014년 3월)
작가는 당시 사회가 금지했던 자신의 사랑도 무민 이야기를 통해 표현했다. 커다란 여행가방을 들고 무민 골짜기를 찾아온 팅구미와 밥은 작가와 작가의 동성 애인을 상징한다. 가방 속에 감춰진 커다랗고 빨간 ‘왕의 루비’는 그들의 사랑에 대한 은유라는 해석이 있다. 1956년 토베가 평생의 동반자가 될 툴리키 피에틸레를 만나면서, 툴리키의 별명인 투티키라는 캐릭터도 동화 속 무민 골짜기 주민이 된다. 토베와 툴리키는 발트해에 있는 클로브하루섬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30년을 그곳에서 살았다.
무민 이야기가 70주년을 맞이해 다시 새 옷을 입었다. 12일부터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는 ‘무민 70, 시계태엽을 감다’는 주제로 무민전시가 열린다. 작가 토베 얀손이 직접 그린 삽화 약 500여점 중 90여점이 선별되어 전시되는 기획전이다. 무민 시리즈는 1954년 영국 신문 <이브닝 뉴스>에 만화로 연재되면서 세계로 퍼져 나가 1950년대에 이미 60가지 언어로 출판됐으며 지금까지 1000만부 넘게 팔렸다. 13일엔 토베 얀손 연재만화를 영화로 만든 <무민 더 무비>가 한국에서도 개봉한다. 무민과 무민 가족, 무민의 여자친구 스노크메이든, 리틀 미가 리비에라로 간다는 이야기다. 원작인 <무민 온 더 리비에라>는 토베 얀손이 엄마와 함께 프랑스의 리비에라에 갔던 경험에서 쓴 작품이다. 무민 가족은 화려한 휴양지 리비에라로 갔지만 이내 실망하고 돌아오고 만다. 단순히 우리 집이 최고라는 ‘홈 스위트 홈’이 아니다. 외톨이 개, 다람쥐, 이상한 요정들이 무민 골짜기로 온다. 전쟁, 죽음, 동성애를 품은 캐릭터들은 이곳에서 말썽을 부리거나 비밀을 털어놓고 그럭저럭 평화롭게 살아간다. 무민 골짜기는 “(내 희망은) 평화롭게 살고, 감자를 심고 꿈꾸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을 실현하는 곳이다. 부천에서 무민전을 기획한 김현지 큐레이터는 “무민 서사의 힘은 무민 골짜기에서 나온다. 특히 나무를 신성시하고 숲을 숭배하는 핀란드 전통에서 숲에 싸인 무민 골짜기는 생명을 주고 치유하는 곳”이라고 분석한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부천국제만화축제·㈜팝 엔터테인먼트 제공
토베 얀손의 캐릭터 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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