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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로빈 윌리엄스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말

등록 2015-08-11 20:58

로빈 윌리엄스.
로빈 윌리엄스.
유작 ‘블러바드’서 감정 숨긴 연기
진짜 원하는 삶을 살수 있을까
13일 개봉하는 <블러바드>는 지난해 8월11일 세상을 떠난 미국의 배우 로빈 윌리엄스(사진)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촬영한 작품이다. 램프의 요정(<알라딘>)부터 가정부(<미세스 다웃파이어>), 남들보다 빨리 늙는 소년(<잭>), 인간의 모습을 한 로봇(<바이센테니얼 맨>) 등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했던 로빈 윌리엄스에게 이 영화는 특히 이색적인 작품이다. 어쩌면 그의 실제 모습에 가장 닿아 있을지도 모르는 영화기도 하다.

26년 동안 은행원으로 일한 놀란(로빈 윌리엄스)은 안정적이며 평온한 삶을 살고 있다. 영화가 시작하고 20분이 지나도록 관객들은 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를 좋아한다는 것, 그가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것말고는 특별히 그에 대해 아는 게 없다. 숨기는 게 아니라 그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괜찮아요? 나 때문에 누가 다치는 건 싫은데.” 이 말은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라 그의 좌우명에 가깝다. 그런데 낯선 대로, 블러바드에서 갑작스레 유턴하던 날 변화가 시작된다.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빈 껍데기가 되어가는 아버지를 만나고 오던 길이었다. 그는 우연히 만난 젊은 남자 레오(로베르토 어과이어)를 차에 태우고 만다.

은행 지점장으로 승진할 수 있다는 말을 들어도, 부인이 함께 크루즈 여행을 떠나자고 해도, 사람좋은 웃음만 짓고 마는 이유는 실제론 그가 원했던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레오가 길에서 남자들에게 몸을 파는 블러바드(대로)는 놀란이 자발적으로 가슴을 두근거리며 찾아가는 유일한 길이다. 12살 여름, 놀란은 자신이 게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거나 밝힐 수가 없어 결혼도 하고 남들처럼 살아왔다. 레오는 놀란이 자유롭게 살았더라면 그랬을지도 모르는 젊을 때의 자신이기도 하고, 처음 만난 사랑이기도 하다.

로빈 윌리엄스가 이 영화를 찍었을 때 나이는 62살이다. 영화 속 주인공은 그의 실제 나이와 비슷한 60살, 비밀을 지키기 위해 입을 굳게 다물고 싶어도, 숨이 헐떡거려 자꾸 입이 벌어지는 나이다. 그냥 레오를 바라보고만 싶다는 소원을 품었을 뿐인데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변태!” 아무도 상처입히고 싶지 않았던 남자 자신이 가장 많은 상처를 입는다.

로빈 윌리엄스 연기의 특징을 페이소스 강한 코믹연기라고 한다. 이 영화에선 그의 코믹 뒤에 있는 페이소스가 정면으로 드러난다. 영화에서 그는 한번도 감정을 격렬하게 드러내지 않는데, 그때문에 관객들은 그가 억누르고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로빈 윌리엄스는 이 영화를 찍고 나서 했던 인터뷰에서 “이것은 로맨스에 관한 영화”라고 했다. 하지만 그가 죽은 뒤 찾아온 이 영화를 보다보면 나이듦, 몰락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죽기 직전까지 그는 알콜중독과 경제적 불안에 시달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일이 있다. “티브이 드라마에 나가지 않으려면 돈을 버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길거리에서 스탠딩 코미디를 하거나 적은 돈을 받고 독립영화에 출연하거나.” 말년의 그는 이 세가지 일을 모두 했다. 또 남들에겐 웃음을 주면서도, 정작 자신은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영화에서 놀란은 “우리는 매일 하루라는 빈종이를 채우며 산다. 그러다 보면 어딘가는 도착한다”는 친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 영화는 로빈 윌리엄스가 마지막까지 열심히 채우던 종이인 셈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마운틴픽처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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