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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들을 수 없는 노래, 들리는 딸의 마음

등록 2015-08-25 19:28수정 2015-08-25 20:46

영화 '미라클 벨리에'의 한 장면.
영화 '미라클 벨리에'의 한 장면.
청각 장애인 가족 둔 소녀의 비상
꿈 위해 집떠나는 ‘미라클 벨리에’
청각장애 부모를 둔 건청인 자녀를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라고 한다. “나는 두 개의 언어로 말한다. 내 안에는 두 개의 문화가 살고 있다. 말소리와 대화 소리, 음악 소리가 있는 ‘소리’의 낮. 수화와 소리 없는 대화, 시선만이 오가는 ‘침묵’의 밤.” 농인 부모를 둔 프랑스 공연 예술가 베로니크 풀랭은 코다는 “두 개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묘사한다. 영화 <미라클 벨리에>(감독 에릭 라티고)는 국내에도 번역된 베로니크 풀랭의 자전적 소설 <수화, 소리, 사랑해!>(한울림 펴냄)를 원작으로, 한 코다 소녀와 농인 가족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베로니크 풀랭의 부모는 프랑스에서 수화학교와 수화 사전을 만들었던 사람이다. 불러도 듣지 못하는 부모는 사랑한다는 소리를 속삭여줄 수가 없다. 집에만 오면 침묵에 갇힌다. 그런 부모를 팔짱끼고 멀찍이서 지켜보던 베로니크는 나중엔 농인을 위한 연극협회에서 일하며 농인들을 대상으로 공연하게 된다. 들리지 않는 것은 장애가 아니라 하나의 정체성이자 하나의 문화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부터다. 베로니크의 아빠는 한 다큐멘터리에 나와 “사실은 아이가 청각장애인이길 바랬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영화에서 주인공 코다 소녀의 어머니도 “네가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울었다”고 했다. 농인의 세계에 아이를 가둬두려는 부모의 이기심이라고? 부모들은 들리지 않는 세계에서 자신들의 방식으로 아이를 사랑하고 보살핀다. 들리는 세계와는 다른 종류의 문화일 뿐이다.

영화에서 농장을 운영하며 치즈를 만드는 벨리에 가족은 부지런히 일하고 서로 사랑하며 산다. 가족 중에 유일하게 소리가 들리는 폴라(루안 에머라)는 치즈 판매는 물론, 부모의 섹스 고충을 의사에게 알려주거나 시장 선거에 나간 아빠의 정견 발표까지 대행해야 한다. 벨리에 가족이 손짓발짓으로 분주히 농담하고 수다떨고 화내는 이야기를 모두 음성으로 번역한다면 영화는 얼마나 시끌벅적할까. 그런데 폴라가 학교 합창부 활동을 통해 노래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파리에 가서 노래를 제대로 공부하고 싶어하면서 농장과 가족의 평화는 깨진다. 가족이 절대 들을 수 없는 노래를 한다는 건, 가족이 부르는 노래를 절대 들을 수 없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영화는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 노래 중간에 소리를 지워버리기도 한다. 관객들은 2분 정도 침묵의 노래를 감상하게 되는데 이 시간은 아주 길게 느껴진다.

코다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해도 영화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아이들은 언젠가는 부모가 이해할 수도 들을 수도 없는 노래를 부르는 때가 오기 때문이다. 그때가 오면 부모는 여지껏 자신들이 아이를 보살펴온 건지 아이에게 의존해온 건지 헷갈리게 된다. “사랑하는 부모님 저는 떠나요/오늘부터 두 분의 아이는 없어요/도망치는 게 아니에요 날개를 편 것 뿐/부디 알아주세요 비상하는 거에요” 영화에서 폴라가 부르는 프랑스 샹송가수 미셸 사르두의 노래 <비상>처럼, 영화는 부모와 아이가 눈물과 웃음 속에 천천히 잡은 손을 떼는 과정을 묘사한다.

<미라클 벨리에>가 그리는 두 세계는 침묵의 세계, 소리가 있는 세계만이 아니다. 부모와 아이의 세계, 원래는 하나였지만 반드시 떨어져야 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27일 개봉.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영화사 진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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