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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아버님, 제 태생은 그저 역모이옵니까

등록 2015-09-08 19:02

영화 '사도'의 한 장면. 사진 쇼박스 제공
영화 '사도'의 한 장면. 사진 쇼박스 제공
이준익 감독 신작 사극영화 ‘사도’


영조 38년(1762년) 7월4일, 세자 이선은 영조의 명에 따라 창경궁 휘령전에서 뒤주로 들어갔다. “아버님 살려주옵소서.” 세자는 뒤주 속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애원했으나 영조는 직접 뒤주 뚜껑을 닫고 큰 못을 박았다. 처음엔 뒤주에 있는 구멍으로 신하들이 물과 미음을 바치기도 했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영조가 직접 내려와 구멍을 막았다. 8일 뒤인 21일, 세자는 그 속에서 운명했다. 여기까지는 실제 있었던 사건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다.

사도세자 뒤주에 갇혀 죽는 이유
팩션 아닌 조선왕조실록 기초삼아
영조-세자 부자갈등으로 다뤄
송강호·유아인 열연으로 ‘긴장감’

차라리 사약을 내리는 게 낫지 않았을까. 아버지가 아들을 굶겨 죽인 잔인한 사화를 두고 뒷사람들은 해석과 의견이 분분했다. 드라마 <정조암살 미스터리 8일>(2007)이나 영화 <역린>(2015)에서 사도세자는 궁을 장악한 노론에 맞서다가 정쟁에서 희생당한 인물로 그려진다. 얼마 전 방송했던 한국방송 단막극 <붉은 달>(2015)에서는 사도세자의 광증과 악행에 초점을 맞췄다. 기록 속 사도세자부터가 모순의 인물이다. 어려서부터 비범하리만큼 총명했으며 열다섯살때부터 대리청정을 시작했다. 문무를 두루 겸비해 효종임금을 닮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궁으로 기녀와 여승을 불러들이고 울화가 터질 땐 함부로 칼을 휘둘러 내관, 중관, 노속 100여 명을 죽였던 사람이다.

이준익 감독이 그려낸 사도세자의 이야기, 영화 <사도>는 팩션의 길을 가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을 기본으로 <한중록>의 대목들을 재현하며 사도세자에 대한 동정론과 규탄 사이 중론을 따랐다. 단지 주인공들의 복식이나 소품, 풍속의 고증만으로 만족하거나 역사적 사실 사이로 수많은 상상을 보태는 요즘 사극 유행과 거리가 있다. 감독의 전작인 <왕의 남자> <황산벌> <평양성>과도 사뭇 다른 태도다. 사도세자는 왜 죽어야 했을까에 대한 <사도>의 답은 왕의 마음이 이미 세자를 떠났으므로 세손의 승계를 위해 세자가 제거되었다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즉위한 정조가 “소자가 아니면 아버님은 죽지 않았을 겁니다”라며 흐느낀 것은 이런 뜻이다.

영화 '사도'. 사진 쇼박스 제공
영화 '사도'. 사진 쇼박스 제공
그러면 누구나 다 아는 역사적 사실에 보태진 것은 무엇인가? 영화는 송강호(왼쪽)가 맡은 아버지와 유아인(오른쪽)이 맡은 아들의 팽팽한 긴장관계를 캐릭터의 원동력으로 삼는다. 3일 언론시사회가 끝나고 가진 간담회에서 사도세자 역을 맡은 유아인은 “왕의 길을 걸어야 하는 운명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던졌기 때문에 비극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고 사도세자의 캐릭터를 설명했다. 이준익 감독은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고, 부엌살림은 모녀간에도 나눌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어떤 사회적 역할이 부여되면 그것과 상충하는 부분이 가족 안에서 발생한다는 뜻인데, ‘영조’와 ‘사도’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가족관계의 원형을 표현하고 싶었던 생각을 말했다.

영조(송강호)와 세자의 갈등은 1749년 세자 나이 15살 때 아버지를 대신해 대리청정을 수행하면서 겉으로 드러났다. 영화에선 그전부터 아들에게 실망하고, 나무라는 아버지의 모습을 비춘다. 무수리 출신으로 정쟁갈등을 틈타 가까스로 왕이 된 영조의 눈엔 태어나면서부터 왕의 자리가 보장된 아들의 안일한 태도는 성에 안 차기만 했다. “내가 네 나이땐 공부에 항상 주렸는데….” 자신밖에 보이지 않는 부모의 단골 대사다. 영조는 스스로도 왕과 아비의 자리를 왔다갔다 했다. 자신이 권력 욕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신하들을 기선제압하기 위해서 영조는 대리청정이 시작되기 전에도 5번이나 아들에게 왕위를 넘겨준다고 선언하는 양위 파동을 벌였다. 그때마다 아들은 석고대죄를 하느라 돌바닥에 머리를 찧다가 혼절하기도 했다.

아비를 죽여야 자식이 산다. 오이디푸스 신화의 참뜻은 아버지를 죽인 아들은 비극을 맞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은 아버지를 죽여야 비로소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는 운명이라는 것이다. 사도세자는 스물여섯 살이 돼서야 처음으로 영조의 곁을 떠나 종기를 치료하기 위해 혼자 온양에 갔다. 부친을 벗어나는 일이 그토록 어려웠다. 영화가 시작할 때 사도는 토굴에서 벌떡 일어나 칼을 빼든다. “더는 저 늙은이와 한 하늘 아래 살 수 없다.” 굿할 때 내는 주문 소리와 함께 내달리는 사도의 모습은 장중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자신과 아들, 아버지의 부자삼대 운명을 깨닫곤 아무것도 끊어내지 못한다.

“너는 존재 자체가 역모야.” 살아있을 땐 대놓고 자식을 벼랑으로 내몰던 아버지는 세자가 죽고 난 뒤 ‘사도’라는 시호를 내렸다. “너를 생각하며 슬퍼하노라.” 아들을 죽인 임금이 조선에서 영조 하나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토록 아들을 사랑하고 미워한 모순된 임금은 흔치 않다. 영조의 콤플렉스, 임금의 처지를 모르는 사람들에겐 가족의 문제로만 설명하는 영화의 서사가 흡족하지 않을 수가 있겠다. 아들의 마음만큼 아버지의 태도는 절절히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사도>는 아들들의 영화다. 16일 개봉.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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