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부전선'.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서부전선’ 24일 개봉
영화 <서부전선>(24일 개봉)은 원래 <웰컴 투 동막골>과 비슷한 영화로 알려졌다. 그런데 막상 시사회를 본 사람들은 <고지전>에 비유한다. 그 외에도 이 영화엔 어디선가 본듯한 장면과 구성이 여럿이다. 천성일 감독은 <7급 공무원>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의 시나리오를 쓸 때도 다른 작품의 성공요소를 가져다 영리하게 조합해왔다. 전쟁영화인지 판타지물인지 휴먼 드라마인지 헷갈리는 <서부전선>을 이해하기 위해선 다른 영화의 흔적들을 아는 것이 필수다.
1953년 한국전쟁 휴전 직전
두 군인의 마지막 임무 이야기
전반부는 판타지 ‘웰컴투…’
후반부는 참혹한 ‘고지전’ 개봉전부터 이념 논란의 중심
좌·우없는 중립 판타지 성공할까 ■ ‘동막골’과 ‘고지전’ 사이 <서부전선>은 1953년 7월 휴전 직전, 교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비밀문서를 전달해야 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국방군 남복(설경구)과 탱크를 북으로 도로 가져가야만 하는 인민군 영광(여진구)의 이야기다. 영화 초반부터 남복과 함께 떠난 부대원들이나 영광이 속한 탱크 부대원들은 모두 죽어버린다. 그러나 눈물이나 절망은 없다. 영광의 눈에 비친 미군 폭격기는 두렵기 짝이 없지만 실감나는 공포는 아니다. 그는 사실 혼자 고립된 순간부터 십대 후반 학도병 정도가 아니라 훨씬 더 어린아이로 퇴행한 인상이다. 철딱서니 없고 어린 병사로 허구의 공간에서 놀 준비를 마쳤다는 뜻이다. 영화가 한국전쟁에 판타지 같은 공간을 들여온 <웰컴 투 동막골>(2005)과 같은 계열에 자리를 잡은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심각한 상황에서 웃음을 잃지 않은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1999)나 전쟁없는 곳으로 도피하는 가브리엘 살바토레 감독 <지중해>(1993)의 영향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전반부 ‘동막골’에서 놀던 영화는 후반부엔 ‘고지전’으로 간다. 영광의 탱크는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줄 수레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절대반지’처럼 그것을 소유한 사람을 위험에 빠트리는 전쟁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남복은 비밀문서를 되찾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며 전쟁은 쓸데없다고, 우리 각자 얼른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하지만 집에 가는 건 쉽지가 않다. 전쟁의 피로와 참혹함을 보여준 영화 <고지전>(2011) 속 인물들도 그토록 집에 가길 원했지만 결국 돌아가지 못했다. 판타지면서 전쟁 영화, 코미디면서 심각한 <서부전선>의 두 얼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천성일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애초부터 가지고 있던 중요한 생각은 어떤 전쟁에도 해피엔딩은 없다는 것과 어찌보면 전쟁만한 코미디도 없다는 상반된 사실이었다”며 “전쟁의 양면을 모두 담으려 했다”고 밝혔다. 전쟁에 대한 고찰은 맞는 소리지만 그 때문에 영화는 웃기지 않을 때면 동막골과 고지전 사이에서 길을 잃고 했던 말을 또 반복하기 일쑤다. “집에 가자, 집에 가자.” ■ ‘포화속으로’와 ‘천안함’ 사이 남복과 영광이 누워 각자 고향집 꿈을 꾸는 대목은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다. 그런데 두 병사의 집은 어디인가. 영화는 줄곧 집에 대한 판타지를 말하지만 한국전쟁 그림자에 덮인 그들의 고향은 실제론 결코 평화롭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영화 자체가 안팎으로 이미 살벌한 대립의 경계선에 놓여 있었다. 시사회를 열기 전 <서부전선> 줄거리가 공개되자 포털사이트에선 영화 평점을 낮추는 ‘별점 테러’가 시작됐다. 우익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북한군을 인간답게 그린다=좌파 전쟁영화=우익들의 집단 행동 필요’라는 도식이 생긴지는 이미 오래다. <포화속으로>(2010)는 퇴행적인 반공영화로 평론가들의 많은 비판을 받았다. 천안함 사건의 진실을 묻는 다큐멘터리 <천안함 프로젝트>(2013)가 상영중단된 일도 있었다. 중립적인 판타지란 존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논란을 의식한 탓인지 <서부전선>은 “1950년 북한의 침공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자막과 함께 영화를 시작한다. 또 남복은 툭하면 영광의 신념을 놀리고 북한을 나무란다. 하지만 요즘 우익커뮤니티의 ‘빨간 딱지 붙이기’ 경향을 볼 때 이 정도론 만족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남북한의 화해 가능성만 말해도 ‘빨갱이 영화’로 낙인찍는다. 아무리 그리워해도 돌아갈 수 있는 순수한 고향집이 없는 영화 속 두 병사의 운명처럼, 전쟁 속 순수한 휴머니즘을 그리겠다는 영화 <서부전선>이 돌아갈 집은 없다. 그러나 한편으론 바로 “좌·우 모두 좋아하지 않을 순진한 전쟁영화”라는 점 때문에 <서부전선>을 높이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영화컬럼니스트 이학후는 “영화를 이념적 프레임으로 재단하는 것에 피로감이 크다. <서부전선>은 어느 한 편에 서지 않고 한국전쟁을 영화적 소재로서 다루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었다”라고 평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두 군인의 마지막 임무 이야기
전반부는 판타지 ‘웰컴투…’
후반부는 참혹한 ‘고지전’ 개봉전부터 이념 논란의 중심
좌·우없는 중립 판타지 성공할까 ■ ‘동막골’과 ‘고지전’ 사이 <서부전선>은 1953년 7월 휴전 직전, 교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비밀문서를 전달해야 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국방군 남복(설경구)과 탱크를 북으로 도로 가져가야만 하는 인민군 영광(여진구)의 이야기다. 영화 초반부터 남복과 함께 떠난 부대원들이나 영광이 속한 탱크 부대원들은 모두 죽어버린다. 그러나 눈물이나 절망은 없다. 영광의 눈에 비친 미군 폭격기는 두렵기 짝이 없지만 실감나는 공포는 아니다. 그는 사실 혼자 고립된 순간부터 십대 후반 학도병 정도가 아니라 훨씬 더 어린아이로 퇴행한 인상이다. 철딱서니 없고 어린 병사로 허구의 공간에서 놀 준비를 마쳤다는 뜻이다. 영화가 한국전쟁에 판타지 같은 공간을 들여온 <웰컴 투 동막골>(2005)과 같은 계열에 자리를 잡은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심각한 상황에서 웃음을 잃지 않은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1999)나 전쟁없는 곳으로 도피하는 가브리엘 살바토레 감독 <지중해>(1993)의 영향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전반부 ‘동막골’에서 놀던 영화는 후반부엔 ‘고지전’으로 간다. 영광의 탱크는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줄 수레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절대반지’처럼 그것을 소유한 사람을 위험에 빠트리는 전쟁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남복은 비밀문서를 되찾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며 전쟁은 쓸데없다고, 우리 각자 얼른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하지만 집에 가는 건 쉽지가 않다. 전쟁의 피로와 참혹함을 보여준 영화 <고지전>(2011) 속 인물들도 그토록 집에 가길 원했지만 결국 돌아가지 못했다. 판타지면서 전쟁 영화, 코미디면서 심각한 <서부전선>의 두 얼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천성일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애초부터 가지고 있던 중요한 생각은 어떤 전쟁에도 해피엔딩은 없다는 것과 어찌보면 전쟁만한 코미디도 없다는 상반된 사실이었다”며 “전쟁의 양면을 모두 담으려 했다”고 밝혔다. 전쟁에 대한 고찰은 맞는 소리지만 그 때문에 영화는 웃기지 않을 때면 동막골과 고지전 사이에서 길을 잃고 했던 말을 또 반복하기 일쑤다. “집에 가자, 집에 가자.” ■ ‘포화속으로’와 ‘천안함’ 사이 남복과 영광이 누워 각자 고향집 꿈을 꾸는 대목은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다. 그런데 두 병사의 집은 어디인가. 영화는 줄곧 집에 대한 판타지를 말하지만 한국전쟁 그림자에 덮인 그들의 고향은 실제론 결코 평화롭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영화 자체가 안팎으로 이미 살벌한 대립의 경계선에 놓여 있었다. 시사회를 열기 전 <서부전선> 줄거리가 공개되자 포털사이트에선 영화 평점을 낮추는 ‘별점 테러’가 시작됐다. 우익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북한군을 인간답게 그린다=좌파 전쟁영화=우익들의 집단 행동 필요’라는 도식이 생긴지는 이미 오래다. <포화속으로>(2010)는 퇴행적인 반공영화로 평론가들의 많은 비판을 받았다. 천안함 사건의 진실을 묻는 다큐멘터리 <천안함 프로젝트>(2013)가 상영중단된 일도 있었다. 중립적인 판타지란 존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논란을 의식한 탓인지 <서부전선>은 “1950년 북한의 침공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자막과 함께 영화를 시작한다. 또 남복은 툭하면 영광의 신념을 놀리고 북한을 나무란다. 하지만 요즘 우익커뮤니티의 ‘빨간 딱지 붙이기’ 경향을 볼 때 이 정도론 만족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남북한의 화해 가능성만 말해도 ‘빨갱이 영화’로 낙인찍는다. 아무리 그리워해도 돌아갈 수 있는 순수한 고향집이 없는 영화 속 두 병사의 운명처럼, 전쟁 속 순수한 휴머니즘을 그리겠다는 영화 <서부전선>이 돌아갈 집은 없다. 그러나 한편으론 바로 “좌·우 모두 좋아하지 않을 순진한 전쟁영화”라는 점 때문에 <서부전선>을 높이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영화컬럼니스트 이학후는 “영화를 이념적 프레임으로 재단하는 것에 피로감이 크다. <서부전선>은 어느 한 편에 서지 않고 한국전쟁을 영화적 소재로서 다루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었다”라고 평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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