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종종 살해 협박도…여성의 위험한 삶 알리려 계속 연기”

등록 2015-10-05 20:38수정 2015-10-05 20:47

마리나 골바하리.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 제공
마리나 골바하리.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 제공
‘아프간 대표 여배우’ 마리나 골바하리
11살때 첫 발 디딘 부산영화제, 이번엔 개막식 사회자로
1일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배우 송강호와 함께 사회를 봤던 아프간 여배우 마리나 골바하리(23)는 2003년에도 부산의 레드카펫을 밟은 적이 있다. 영화 <천상의 소녀>가 부산영화제에 초청됐을 때 영화를 만든 세디그 바르막 감독과 내한했던 11살 소녀가 이번엔 사회자로 다시 온 것이다.

2003년 영화 ‘천상의 소녀’ 출연
아프간 여성억압 현실 보여줘
최고 여배우 반열 섰지만 위험 여전
“일하는 여성들 멈추지 말기를”

개막식 다음날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12년만에 한국에 온 마리나 골바하리를 만났다. 2주 전 결혼한 마리나는 아프간 어로 이야기하고 남편 누렐라 아지즈(27)가 영어로 통역했다.

그가 배우가 된 것은 세디그 바르막 감독과의 특별한 인연 때문이라고 했다. 2001년 탈레반 정권이 무너진 직후 아프간의 많은 어린이들처럼 마리나도 공원에 나가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껌이나 신문을 팔다가 영화를 준비하는 세디그 감독의 눈에 띄었다. 감독은 구걸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마리나는 “무언가를 팔고 돈을 받으려고 했다”고 단호하게 덧붙였다. 7남매 중 넷째 딸로 태어난 마리나는 “그 시절 어떤 심정이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날마다 어떻게 하면 가족을 지킬 수 있을까, 우리 가족이 죽지 않으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거리를 헤맸다”고 답했다. 영화에서 여자들의 바깥 활동을 엄격하게 금지했던 탈레반 정권 시대에 가족을 위해 남장을 하고 일하다 위험에 처하는 ‘천상의 소녀’ 오사마는 현실에선 마리나 자신이었다.

“나중에 감독님에게 왜 나를 캐스팅했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어요. 감독님은 네 눈 속에 내가 하려고 하는 모든 이야기가 들어있었다고 말했죠.”

첫 영화 출연료로 받은 14달러로 가족에게 진흙집을 지어줄 수 있었다. 저소득층을 위한 학교에서 읽고 쓰는 공부를 마칠 수도 있었다. 탈레반 정권 시절에는 여자가 학교를 다니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고 요즘에도 여자가 일할 곳을 찾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2003년 한 인터뷰에서 세디그 감독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여배우가 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선 자살을 의미한다”고 말한 일이 있다. 마리나도 큰 위험을 느꼈다. 종교적 원리주의자들로부터 살해 위협을 담은 협박편지를 받기도 했다. 4년 동안 밖에 나갈 때면 눈만 빼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가리는 부르카를 뒤집어 쓰고 다녀야 했다.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봐서였다. 그러나 마리나는 수줍게 웃으며 “배우가 된다는 것은 큰 기쁨이다. 영화 속에서 사는 삶은 행복하고 즐겁다. 지금까지 12편의 영화에 출연했는데 캐릭터를 최대한 진실하게 보여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기껏해야 1년에 5편 정도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나라에서 마리나는 최고 여배우중 하나다. 아프가니스탄의 한 제작사에서 티브이 시리즈를 만들고 있는 그의 남편 누렐라 아지즈는 “과거 탈레반 정권 시절에는 영화를 비롯한 일체의 예술활동을 금지했다. 지금은 몇몇 작은 프로덕션들이 있긴 하지만 투자를 받기 어려워 규모를 갖춘 대중영화는 거의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전했다.

아프가니스탄 상황을 전하는 마리나의 음성은 어두웠다. 지금도 집으로 협박 전화들이 걸려온다고 했다. 그동안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꾸준히 작품활동을 해온 세디그 감독은 계속 살해 위협에 쫓기다 7개월 전 프랑스로 가족과 함께 망명했다. 마리나도 몇번 이주할 결심을 했고 실제로 아프가니스탄을 떠났다가 가족들 때문에 다시 돌아온 일도 있었다고 한다. 아직도 사회적으로 최약자인 여성들의 처지는 폭력과 종교적 극단주의가 지배하던 시절보다 그리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리나는 표현의 자유와 여성 인권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처음에는 남편과 의논하며 신중히 단어를 골랐다. 그러나 결국 “나와 남편도 언젠가는 아프가니스탄을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슬프게 결론을 내렸다.

마리나는 자신이 여배우로 계속 사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 아프가니스탄에 살고 있으며, 거기선 여자가 힘들게 일할 뿐 아니라 의사든 엔지니어든 여배우든 일하는 여자들은 늘 위험한 처지에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최대한 알리기 위해서다. 또 그럼에도 현장에서 일하는 여자들에게 일하기를 멈추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나도 그러려고 한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시그널’ 10년 만에 돌아온다…내년 시즌2 방송 1.

‘시그널’ 10년 만에 돌아온다…내년 시즌2 방송

스승 잘 만난 제자, 제자 덕 보는 스승…손민수·임윤찬 7월 한무대 2.

스승 잘 만난 제자, 제자 덕 보는 스승…손민수·임윤찬 7월 한무대

괴물이 되어서야 묻는다, 지금 내 모습을 사랑해 줄 수는 없냐고 3.

괴물이 되어서야 묻는다, 지금 내 모습을 사랑해 줄 수는 없냐고

노안이 오면 책을 읽으세요 4.

노안이 오면 책을 읽으세요

63살 데미 무어의 세월을 질투하다 5.

63살 데미 무어의 세월을 질투하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