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고… 아프고… 어여쁘구나.” 영화 <도리화가>에서 스승 신재효(류승룡)는 경회루 낙성연에서 소리하는 제자 진채선(배수지·사진)을 바라보며 이렇게 중얼거린다. 25일 개봉하는 <도리화가>에서 배수지(수지)의 연기도 이 세 마디 말로 요약될 수 있겠다.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가슴속에 뜨거운 뭔가가 생겼어요. 연습생 시절 혼자 남아서 울고 악에 받치던 시간이 겹치기도 했고요. 연기라는 게 기억에 있는 걸 끄집어낼 때도 있고 상상해야 할 때도 있는데 이번 작품은 기억에 의존해서 했어요.”
19일 기자들과 만난 배수지가 처음 꺼낸 말이다. 진채선이 어여뻤던 건 피를 토하고 똥물을 마시며 소리를 얻기 위해서 노력했기 때문일 터이다.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수지도 스스로를 어여삐 여길 만큼 노력하는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다.
<도리화가>는 소리학당을 열고 판소리 여섯마당을 정립한 동리 신재효와 그의 제자 진채선, 진채선을 실제 가르친 김세종(송새벽) 등 조선시대 실제 인물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수지는 여자는 판소리를 할 수 없던 시대에 금기를 깨고 조선의 첫 여자 명창이 된 진채선을 맡아 1년 동안 국악인 박애리 명창에게 판소리를 배워 직접 불렀다. “저는 기술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감정을 전달하려고 노력했어요. 정말 열심히 했고, 찍는 동안 행복했기 때문에 후회 없어요. 관객들이 어떻게 볼지, 사실 그렇게 떨거나 걱정하지 않아요. 다만 제 감정이 잘 전달됐으면 좋겠어요.” 18일 시사에서 영화를 처음 봤다는 수지의 소감이다.
전라도 광주 출신인 수지는 “영화 속 남도 사투리가 잘 안 살아날 때면 고향집 가족들과 통화하고 바로 촬영 들어가는 방법을 썼다”며 웃었다.
<도리화가>는 수지의 이미지에 상당부분 기대고 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기생집에 맡겨진 진채선은 <심청가>로 판소리의 매력에 눈뜨고 <춘향가>를 하면서 스승을 흠모하게 된다. 어쩌면 한 많은 예인일지도, 어쩌면 관능적인 인물일지도 모르는 진채선을 수지는 판소릴 배울 때나 스승의 뒷모습을 쳐다볼 때나 한없이 눈을 반짝거리는 순진하고 순수한 캐릭터로 연기했다. 해맑은 제자와 복잡한 스승, 영화는 두 캐릭터의 은근한 감정을 따라 흘러간다.
수지는 19살 첫 영화 <건축학개론>으로 ‘국민 첫사랑’이라 불리게 됐다. 그 때문에 두번째 영화를 정하는데 오래 걸렸지만 이 영화는 안 하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촬영장에서 류승룡 선배를 처음 만나던 날 ‘이 작품을 고르다니 똑똑하다’고 하셔서 놀랐어요. 영화를 할 땐 거의 앞뒤를 재보지 않거든요.”
대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는 고집을 피우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아이돌 출신 배우에 대한 선입견이 있기 때문에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자꾸 욕심을 부리게 된다”는 수지는 <도리화가>에서 감독을 설득해 없어질 뻔한 장면을 살려내기도 했다. 단오 무대 직전 신재효에게 ‘소리가 하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저도 이제 배우 색깔이 짙어지지 않을까요.” 스스로에 대한 기대를 솔직하게 말하는 수지는 <도리화가>개봉에 이어 2016년엔 <한국방송>새 수목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로 안방극장을 찾을 예정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