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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독립영화 ‘여성감독 전성시대’

등록 2015-11-24 19:22수정 2015-11-24 21:07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제공
2000년 이전까지 한국에서 여자 영화감독은 단 8명뿐이었다. 신인 감독이 크게 늘었다고는 하지만 최근 10년 동안 전체 한국 영화 개봉 편수에서 여성 감독의 작품이 차지하는 비율은 5%를 넘지 않는다. 영화 연출은 아직도 여성들이 넘기 어려운 높은 벽이었다. 그런데 독립영화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되는 것일까? 41회를 맞는 서울독립영화제 본선경쟁에서 처음으로 여자 감독이 남자 감독의 수를 넘어섰다.

2015 서울독립영화제 본선 경쟁작
여성감독 작품이 절반 이상 차지
다큐뿐 아니라 극영화서도 선전
여성·성소수자 등 주제폭 넓어져
26일부터 내달 4일까지 관람 가능

올해 본선 경쟁작은 51편. 이 중 26편이 여자 감독이 만든 작품들이다. 지난해만 해도 경쟁부문 여자 감독 상영작은 14편으로 남자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독립영화에서 여자 감독의 비율은 매년 꾸준히 늘어왔지만 올해는 특히 신선한 문제의식을 쏟아내는 신인 여자 감독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독립영화 중견과 거장 작품을 주로 상영하는 ‘특별 초청’ 부문에선 아직 여자 감독 작품이 적지만 신진 작가들의 데뷔 창구인 ‘새로운 선택’ 부문엔 남녀가 각각 12편으로 동등한 숫자다. 서울독립영화제 사무국 쪽은 “1000편 가까운 후보작 중에서 성별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영화의 품질만으로 상영작을 선정했는데, 경쟁과 초청 부문을 합쳐 전체 상영작 110편 중 50편이 여자 감독들 작품”이라고 밝혔다.

젊은 여자들이 들어오면서 독립영화 분위기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서울독립영화제 조영각 집행위원장은 “다큐멘터리뿐 아니라 극영화에서도 여자 감독들이 늘면서 사회적인 주제뿐 아니라 일상 문제들이 크게 늘어났다. 독립영화의 주제나 다루는 폭이 넓어지고 있다”며 “여자 감독들이 만든 독립영화는 주인공이 여자나 성적 소수자인 경우가 많고, 사적인 관계에 밀착하는 태도와 쟁점을 세분화하는 문제의식 등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년 여자의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9월9일>(감독 정혜진), 청각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지하철에서 캠코더를 찍으며 사람들을 관찰하는 <문영>(감독 김소연) 등 주인공 여자들의 모습은 다양하다. <로프공의 밤>(감독 송현정)은 로프를 타고 빌딩 외벽 청소를 하는 딸과 정력제를 판매하는 엄마, 두 모녀의 이야기다. 주목받지 못했거나 접근이 어려웠던 여자들의 삶이 주인공이 됐다. 주인공을 바꾸니 영화가 바뀐다. 이영 감독은 <불온한 당신>에서 70대 레즈비언, 일본의 레즈비언 커플, 감독 자신 등 다양한 레즈비언을 주인공 삼았다. 관객은 남자 이성애자가 주인공인 영화에서는 느끼지 못했을 차별의 시선, 그 차별에 깃든 광기를 보게 된다.

관계 밀착형 영화도 여성 독립영화의 특성이다. 본선경쟁에 나온 장편영화 <할머니의 먼 집>(감독 이소현)은 93살 할머니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소식을 듣고 할머니를 찾아간 손녀 이야기다. 조영각 위원장은 “손자가 할아버지를 찍는 것과는 다르다. 어떠한 갈등 없이도 가족관계의 본질을 보여주며 아들이 갑자기 죽자 할머니가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손녀의 마음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고 평했다. 아빠와 딸의 관계를 그린 <아아아>(감독 노영미), 부모님으로부터 시작하는 <아빠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감독 남순아) 등 가족관계를 소재로 한 다른 영화들도 섬세함이 빛난다.

성노동자, 매춘부, 위안부 할머니 등 성노동에서 민감한 쟁점을 드러낸 <레드 마리아 2>(감독 경순),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딜레마를 담은 <야근 대신 뜨개질>(감독 박소현) 등 사회적 이슈에 새로운 시각을 도입하며 쟁점을 세분화한 영화들은 여자 감독의 시선이 아니었으면 태어나지 못했을 영화들이다. <레드 마리아 2>로 특별초청된 경순 감독은 “여성주의가 민주화라는 정치적 과정과 결합했던 역사”를 여성 독립영화의 뿌리로 짚는다. 여자들의 독립영화는 영화에서도 기존 남성 화자 위주의 서술 방식을 바꾸어가고 있다.

이들 독립영화는 26일부터 12월4일까지 씨지브이(CGV) 압구정이나 인디스페이스에서 상영하는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볼 수 있다.


조정의민 프로그램팀장이 선정한 여성 독립영화

김고은 감독 '허'(HER)
김고은 감독 '허'(HER)
■섬세한 심리 묘사 김고은 감독 <허>(HER)는 사랑을 갈구하는 여성이 아니라 여성의 욕망 그 자체를 드러내는 작품이다. <여름의 끝자락>(곽새미·박용재 공동연출)은 친구관계에 집착하는 외로운 주인공의 마음에 관객이 공감하게 되는 영화다.

'아빠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
'아빠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
■ ‘사적 다큐’의 발전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 속에서 보편의 문제의식을 발견해내는 작품들도 있다. <아빠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와 <불온한 당신>은 거대 담론에 파묻히거나 사적 영역에 매몰되지 않고, 개인체험을 통해 더욱 날카로워진 질문을 던진다.

물물교환
물물교환
■ 여성의 눈으로 보는 세상 중견 여성 감독들의 신작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조세영 감독의 <물물교환>은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여성과 고물 줍는 할머니, 현장소장 등의 관계를 통해서 여성의 현실과 발랄한 연대를 보여준다. 경순 감독의 <레드 마리아 2>는 성노동이라는 강도 높은 주제를 통해서 여성의 삶과 몸을 탐구해온 감독의 작업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정 감독의 <도시를 떠돌다>는 세계화의 대안적인 삶을 찾는 영화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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