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트 컴버배치. 사진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제공
‘셜록: 유령신부’ 개봉 1주만에 100만 관객 돌파
<셜록: 유령신부>는 여러가지로 독특한 영화다. 우선 이 영화는 영국 <비비시>(BBC)에서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방송한 데 맞춰 한국에서는 지난 2일 극장에서 개봉했다. 우리나라 텔레비전으로 수입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스크린으로 향했다. 개봉 1주 뒤인 9일까지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본 한국 관객이 100만명을 넘을 정도로 셜록 팬들의 환호는 뜨겁다.
내용도 독특하다. 영화에서 주인공 셜록은 다른 추리극에서처럼 단서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21세기 현대와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를 오가면서 자신의 마음속에서 답을 찾아낸다. 셜록이 맡은 사건보다 셜록 머릿속이 더 궁금한 사람들이 영화를 본다. 셜록의 열혈 팬, 셜로키언의 첫번째 조건은 “셜록은 실존 인물”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란다. 태어난 지 16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전세계 팬들의 열렬한 탐구 대상이 되고 있는 건 어떤 이유일까? 대중문화로 끊임없이 재탄생해온 셜록 캐릭터의 매력 때문이라는 풀이가 첫손가락에 꼽힌다. 그렇다면, 그 셜록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코난 도일의 영어 원작까지 탐독했다는 장강명 작가, 치과의사로 일하며 책 <불멸의 탐정 셜록 홈즈>를 쓴 김재성씨, 추리소설 작가이기도 한 도진기 판사 등 한국의 셜로키언들과 함께 셜록은 누구인지 추리했다.
장강명 작가
“법의학에 투신한 프로그래머 같아” 범인 체포보다 물적 증거를 논리적 사슬로 연결하는 데 집착
■ 단서: 범인 체포에 관심없는 탐정 흔히 셜록 홈즈를 ‘탐정의 원형’이라고 하지만 장강명 작가는 “셜록 홈즈는 탐정이 아니라 컴퓨터가 아직 발명되지 않은 바람에 법의학에 투신한 프로그래머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포와로나 미스 마플 같은 애거사 크리스티 작품 속 탐정에 비해 홈즈는 범인의 동기나 성격적 특성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고, 대체로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해서도 무관심하다는 것이 근거다. 셜록 홈즈는 범인을 체포하는 것보다는 물적 증거를 논리적 사슬로 연결하는 작업에 관심을 보인다. 이런 특성 때문에 그를 정신분석가나 법의학자, 기호학자로 해석하는 연구도 있었다. “과도할 정도로 논리를 신봉하고, 특정 주제에 지나치게 집중하고, 자신이 똑똑하다는 사실을 잘 아는 나머지 남들을 얕잡아 보는 성격은 드라마 <빅뱅 이론>에서 천재과학자로 나온 셸던 쿠퍼나 실존 인물이었던 스티브 잡스와 비슷하다”는 것이 장 작가의 해석이다.
셜록의 그런 성격 때문에 현대 독자들이 아직도 그를 사랑하는 것일 수도 있다. 지능이 뛰어나지만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이르는 ‘너드’라는 영어 단어는 원래는 비하의 뜻이 강했지만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스티브 잡스 같은 성공한 프로그래머들을 뜻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김재성 ‘불멸의 탐정’ 저자
“작가의 상처 투사돼 조울증·마약중독” 반사회적 인격장애자처럼 피멍 관찰하려고 시체에 매질까지
■ 추리: 그는 고성능 소시오패스다 서울 대학로에서 공연중인 연극 <셜록 홈즈>는 셜록을 서번트 증후군이라 가정한다. 서번트 증후군이란 사회성이 떨어지고 의사 소통 능력이 낮으며 반복 행동 등을 보이는 뇌 기능 장애지만 특정 분야에선 남들보다 월등히 우수한 능력을 보여준다. 영국 드라마 <셜록>에선 그를 ‘고성능 소시오패스’라고 추리한다. 셜록은 시체에 멍이 드는 정도를 관찰하기 위해 거리낌없이 시체에 매질하며 잔혹한 살인 현장을 보면 눈을 반짝인다. 이쯤 되면 거의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라고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론 뛰어난 관찰력과 추리력 덕에 경찰과 일한다. 그 이중성이 바로 셜록의 매력이다.
도진기 추리소설 작가
“독자들에게 그는 슈퍼히어로” 결투 끝 폭포로 떨어져도 여전히 살아남아 160여년째 불멸
그는 대체 왜 이러한 인간이 됐을까? 김재성씨는 “책 속에 나와 있는 셜록 홈즈의 성격을 종합해 볼 때 그는 조울증 환자고, 마약 중독자고 여성혐오자인데 그것은 바로 셜록 홈즈에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의 상처가 그대로 투사된 것”이라 추리한다. 코난 도일은 알코올 중독과 정신질환을 가진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또 어머니는 코난 도일 가정의 후원자였던 윌러와 수상한 소문에 휩싸이기도 했다. “여자란 동물은 절대 믿어선 안된다”고 셜록 홈즈가 여러 번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코난 도일의 여성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또 코난 도일은 근대 추리소설을 확립한 작가 에드거 앨런 포와 에밀 가보리오의 영향을 받아 그들 소설의 탐정인 뒤팽과 르코크의 장점만을 모아 셜록이라는 탐정을 생각해냈다. 탐정으로서 셜록이 고성능인 이유다.
셜록 팬들의 특이한 점은 정신적 문제투성이인 셜록의 불완전함에 매료된다는 것이다. 영화 <셜록 홈즈: 유령 신부>에서는 코난 도일의 원작 <마지막 인사>에서 다뤘던 여성 참정권 문제가 다시 나온다. 원작에서 셜록은 여성들이 그런 주장을 한다는 것 자체를 혐오했다. 영화에서 전처럼 여자들을 비난하진 못하지만 여자들의 권리를 지지하느니 입을 다무는 쪽을 택한다. 여성을 사랑하고 예의바르며 겸손한 자는 더이상 셜록일 수가 없다. “수사 능력과 지능은 뛰어난데 영혼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독자들이 매력을 느낀다. 또 지금까지 212편 영화에서 76명의 배우가 셜록 홈즈를 연기한 것도 바로 작품마다 사람마다 셜록의 상처와 불완전함을 달리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김재성씨의 해석이다.
■ 확장: 외계인·뱀파이어·슈퍼히어로설 모리어티와 결투 끝에 폭포로 떨어졌지만 셜록은 살아 있었다. 독자들의 성화에 못 이겨 부활했다가 1917년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공식 은퇴했지만 모방 소설이나 다른 장르 작품으로 재창작되면서 100년 동안 끊임없이 출몰했다. 2008년 한 조사에선 영국인 58%가 “셜록은 실제 인물”이라고 답했다. “셜록은 아직도 살아 있다”는 셜록 불멸설도 나온다. ‘이성 기계’로 불렸던 셜록이 가장 코웃음쳤을 이야기지만 작가 코난 도일 자신이 말년에 심령주의에 빠졌던 것을 생각하면 초현실적인 요소를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다. 영화 <셜록 홈즈: 유령신부>에서 그는 빅토리아 시대와 지금 시대를 오가며 사건을 해결한다. 유령 따윈 믿지 않고 이성적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지만 그의 존재 자체가 초현실이다. “만드는 사람이 있으면 해독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지.” 원작에서 셜록 자신이 말했듯 셜록을 해독하는 사람들은 그를 불멸의 존재로 해석하고 있다. 도진기 판사는 “어린 시절 셜록을 읽고 자란 독자들에게 어떤 사건이든 해결할 수 있는 그는 슈퍼히어로와도 같은 인물이기 때문에 수명이 다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76명의 셜록들
■ 영국산 신흥 종교 수많은 셜록 홈즈가 있었다. 76번째로 셜록 홈즈 역을 맡은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75번째 셜록이었던 영화 <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 비하면 이름없는 배우일 뿐이었다. 게다가 사람들이 셜록에 대해 그리는 외모와도 거리가 있었다. 소설에 곁들여진 삽화 덕분에 셜록은 흔히 매부리코에 갈색 눈동자, 50대의 나이로 그려졌지만 30대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곧은 코에 붉은 머리와 푸른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에서 셜록 시리즈 첫방송이 나가자마자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세계적인 유명인이 됐다. 그 뒤 스타트렉과 호빗 시리즈에 출연하면서 ‘컴버배치 현상’이라 할 만한 팬덤을 형성했다. 영국 트위터에선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두고 “영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신흥종교”라는 농담도 유행했다.
무명 컴버배치 시리즈 첫 방송 뒤 일약 스타덤에…브렛은 주연 맡고 조울증·건강악화 종방 이듬해 숨져
■ 홈즈와 같은 운명 1984년 미국 그라나다 텔레비전은 <셜록 홈즈의 모험>이라는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셜록 홈즈 역으로 51살의 배우 제러미 브렛을 캐스팅했다. 제러미 브렛은 홈즈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배우가 되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강박적으로 자료를 수집했으며 코난 도일의 딸을 찾아가기까지 했다. 브렛은 영화 <셜록 홈즈의 사생활>에서 홈즈 역을 맡았던 배우 로버트 스티븐스와 오랜 친구 사이였는데 로버트 스티븐스는 브렛이 홈즈 역을 맡는 것을 몹시 반대했다고 한다. “셜록 홈즈 역할이 날 죽이지 않은 게 다행이었네. 그의 내면으로 파고드는 함정에 빠지면 자멸하고 말 걸세.” 로버트 스티븐스의 말이 예언이라도 된 것처럼 제러미 브렛은 1986년 조울증 진단을 받았고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시리즈가 50분짜리 36편과 특별편 5편을 찍으며 막을 내린 이듬해인 1995년 세상을 떠났다.
■ 그리고 당신, 셜로키언 홈즈 모임은 세계적으로 400개가 넘는 것으로 추산되며 일본에만도 30개가 있다. 지금까지도 셜록이 끊임없이 재창작되는 것은 셜로키언 공이 크다. 원래는 미국의 셜록 홈즈 팬은 ‘셜로키언’, 영국 팬은 ‘홈지언’으로 구분해 불렀지만 드라마 <셜록> 성공 뒤 모두 ‘셜로키언’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2014년 7월19일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엔 100명이 넘는 셜록 팬들이 사냥 모자와 망토를 입고 모였다. 이날은 셜록 역을 맡은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생일이었다.
남은주 기자, 참고 서적 <셜록: 크로니클>, <셜록: 케이스북>
장강명 작가
김재성 ‘불멸의 탐정’ 저자
도진기 추리소설 작가
76명의 셜록들
제레미 브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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