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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아름답다 이런 여자 이런 영화

등록 2016-02-16 19:31수정 2016-02-16 20:44

사진 각 배급사 제공
사진 각 배급사 제공
‘여성영화’ 연달아 개봉
여자, 그리고 성소수자들의 이야기가 잇따라 펼쳐진다.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은 처음이야.” 영화 <캐롤> 속 두 여주인공이 첫날밤을 보낼 때 캐롤이 활짝 미소지으며 한 말마따나 드물게 보는 장관이다. 4일 여자들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캐롤>, 11일 여성주의 영화 <드레스 메이커>가 개봉한 데 이어, 17일엔 세계 최초로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릴리 엘베의 일대기를 바탕으로 한 <대니쉬 걸>이 상영에 들어간다. <캐롤>은 개봉 12일만에 23만 관객을 넘었다. 남자 주인공들에게 쏠려있던 스크린에 여성적 주체의 세계를 그려내는 영화들이 잇따라 쏟아지는 이례적 현상을 두고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캐롤’ ‘대니쉬 걸’ ‘드레스메이커’
남성중심의 영화 판도 전복 꾀해
동성애·성전환 수술 등 성소수자
사회 인식 개선도 제작에 힘보태
주 관객은 선입견 적은 2030 여성

■ 남자없이 완벽한 공동체 이들 영화는 남성 중심의 이성애적 세계관을 벗어나 여성적 정체성을 중심으로 새로운 성소수자의 서사를 펼친다. 영화평론가 심영섭은 “주류 영화 안에서 여성동성애에 대한 탐미와 매혹을 그렇게 감각적으로 그려낸 영화는 <캐롤>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캐롤>이든 <대니쉬걸>이든 여성성에 대한 완벽한 예찬을 표현한 영화들”이라고 덧붙였다.

<대니쉬걸>은 1920년대 덴마크에서 활동했던 화가 부부 에이나르 베게너와 게르다 베게너가 주인공이다. 에이나르는 부인 게르다의 초상화 모델을 서기 위해 여자처럼 차려 입었다가 자기 안에서 여지껏 알지 못했던 강렬한 쾌감이 눈뜨는 것을 느낀다. 그 쾌감은 곧 단순히 여자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여성성을 갖추고 싶다는 갈망으로 커진다. 게르다는 처음엔 혼란스러워 하지만 곧 남편, 아니 한 인간이 여자로 살고 싶은 욕망을 존중하고 지지한다. <캐롤>에서 남자 파트너들이 상대 여성의 욕망을 힘으로 제압하려고 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

여주인공이 이성애자인 <드레스 메이커>도 영화의 중심은 딸(케이트 윈슬렛)과 엄마(주디 데이비스)다. 모녀의 집은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는 공동체로 그려진다. 심영섭은 “최근 여성영화에선 여자 주인공들이 남성의 서사에 억눌리던 데서 벗어나 독자적이고 조화로운 공동체를 이룬다”며 “언니와 동생들로 이루어진 가족 공동체를 그린 일본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등 다른 나라 영화에서도 이런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 레드카펫에서 시작된 변화 성적소수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미국에서도 제작까지 진통을 겪었다. <대니쉬걸>은 10년이 넘는 준비기간을 거쳐서야 만들어질 수 있었고 <캐롤>은 감독과 배우가 모두 바뀌기도 했다. 씨지브이 아트하우스 어지연 팀장은 “미국에서도 이런 영화들에 유명 배우들이 합류하고, <캐롤>과 <대니쉬걸>의 주인공들이 각각 아카데미 여우·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동성결혼 합법화나 여배우들이 잇따라 스크린에서 양성평등을 말하는 등의 사회적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바라봤다.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보이후드>의 패트리샤 아퀘트가 수상소감에서 “평등 출연료”를 요구하는 등 최근 헐리우드 여배우들이 기존 젠더 질서에 도전하는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잦았다.

<매드 맥스> <스타워즈 에피소드7> 등 여자주인공이 나오는 대형 블록버스터들이 잇따라 성공을 거둔 것도 여성 주체 영화 제작 붐에 영향을 끼쳤다. 이런 분위기 속에 최근 국제영화제에서 ‘여성 영화’나 ‘여성 감독’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졌다. <드레스 메이커>를 배급하는 리틀빅픽처스 박가현 대리는 “선댄스 영화제에서 호평받은 <이>, 국내 배급이 결정된 <무스탕>, 베를린 영화제에서 선보인 <굿 와이프>등이 비슷한 계열의 기대작”이라고 꼽았다.

■ 여자에게 반한 여자들 성소수자 혹은 여성주의에 훨씬 보수적인 우리나라에선 어떨까? “<캐롤>을 수입한 더쿱 박동현 과장은 “2014년 <캐롤>을 수입 계약할 당시,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비롯한 뛰어난 성적 소수자 영화들이 국내에서 꾸준히 상영될 예정이라는 것을 알면서 어떤 흐름이 형성될 것이라는 예감으로 수입을 결정했다”고 했다.

성적소수자를 아우르는 여성주의 계열의 영화를 큰 선입견 없이 받아들이는 국내 관객들은 단연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 여자 관객들이다. 씨지브이 아트하우스 이원재 프로그래머는 “여성관객들이 주도적으로 영화를 소비하는데다가 특히 <캐롤> 같은 영화는 여성 1인 관객 혹은 동성 관객들이 함께 와서 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씨지브이 리서치센터 집계에 따르면 <캐롤> 관객중 여자 관객이 70.81%, 그중에서도 20대 여자 비율은 52.5%다. 보통 다른 영화에선 이십대 여성이 20~30% 정도를 차지한다.

이원재 프로그래머는 “이들 세대는 이태원을 중심으로 한 퀴어 문화를 힙스터들의 문화 정도로 받아들이는 등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이 없고 예쁘거나 새로우면 선호하는 경향”이라고 분석했다. 여자가 여자에게 반하는 ‘걸크러쉬’ 등의 문화도 이런 토양을 배경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이런 현상은 흥행을 이유로 남성 ‘투톱’을 내세우며 여성의 목소리를 아예 배제하는 듯한 한국 영화의 최근 경향에 심대한 의문을 던진다. 성정체성에 대한 고정 관념이 적고 문화적으로 새로운 것에 민감한 세대들은 다양한 성정체성 영화들을 본다는 점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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