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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오래 산 부부도 사실은 서로를 잘 모른다

등록 2016-04-26 19:40

‘철원기행’과 ‘45년 후’

갑작스런 이혼선언에 당혹해하고…
“내가 말했지”라며 낯선 이야기를
영화 ‘철원기행’. 사진 타이거시네마 제공
영화 ‘철원기행’. 사진 타이거시네마 제공
오래된 부부를 조명한 영화 두 편이 찾아왔다. 시간을 잊은 듯한 한적한 생활에 시각을 되새김질하는 듯 발생한 사건이 영화 <철원기행>과 <45년 후>가 소재로 삼은 것들이다. 두 주인공이 후대를 교육하는 선생 일을 그만둔 참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철원기행>은 아버지의 폭탄선언으로 시작한다. 아버지(문창길)가 철원공업고등학교를 퇴임하는 날 오랜만에 가족이 모였다. 퇴임식 뒤 들른 식당에서 아버지는 말한다. “이혼하기로 했다.” 당사자인 어머니(이영란)는 금시초문이다. 눈이 쌓이는 길, 분통이 터진 발길에 한복 치맛자락이 밟히고 미끄러진다. “뭐 이런 한복을 입어가지고….” 눈은 계속 내리고 결국 차량 통행이 불가능해진다. 큰아들과 며느리, 춘천의 학교 교감으로 있는 어머니와 같이 사는 둘째 아들은 아버지 사택에 꼼짝없이 같이 지내게 됐다. 잠옷을 사 입고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기념사진’ 같은 표정들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영화 '45년 후'. 사진 판씨네마 제공
영화 '45년 후'. 사진 판씨네마 제공
<45년 후> 제목의 45년은 결혼기간이다. 케이트(샬럿 램플링)와 제프(톰 코트니)는 일주일 뒤면 결혼 45주년 기념 파티를 한다. 제프가 40주년 때 혈관 수술을 받는 바람에 어중간한 45주년을 기념하게 되었다. 토요일 파티를 앞둔 월요일 제프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남편이 결혼 전 만났던 여성의 주검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남편은 피우지 않던 담배를 피우고 다락방에 올라가 옛날 사진을 찾는다. 마을 산책도 하지 않던 남편은 주검이 있는 스위스의 산을 오르겠다고도 한다.

그렇게 오래 살았지만 서로를 잘 모른다. <45년 후>에서 남편은 “내가 말했지”라며 모르는 이야기를 꺼낸다. 남편은 스위스 산악지대에서 같이 지내려면 보호자 행세를 해야 했기에 참나무 반지를 만들어서 손가락에 끼웠노라고 이야기한다. “그걸 그렇게 생생하게 기억하다니.” 결혼반지를 그대로 끼고 목욕을 하면서 아내는 불안하다. 남편은 옛날 열혈 좌파의 면모를 되찾으며 이상한 활기에 가득 찬다. 편지로 인해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철원기행>에서 가족은 아버지가 그 말을 꺼낸 연유를 듣기가 어렵다. 들으려는 여유가 없다. 큰아들은 아내가 당장 네일숍을 내는 데, 둘째 아들은 결혼하는 데 여자 집에 밀릴까 돈이 필요해서 언제 말을 꺼낼까 전전긍긍이다. 어머니는 악담에 독설가다. 바늘 같은 말을 골라서 하지만 남의 말은 듣지 않는다. 남편이 이혼 이야기를 꺼낸 것도 아내가 “말 좀 해보라”고 빈정대던 찰나였다. 아버지는 가족들도 모르게 퇴직 뒤를 준비해놓았다. 고독한 그 자리에 가족은 없다.

<철원기행>은 2014년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되고 부산영화제 뉴커런츠상을 수상했고, <45년 후>는 베를린영화제에서 남녀주연상을 받았다. <철원기행>은 21일 개봉, <45년 후>는 5월5일 개봉.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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