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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분단과 해직은 그들을 ‘종군감독’으로 만든다

등록 2016-05-03 19:28수정 2016-05-03 20:49

다큐 '자백'. 영화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다큐 '자백'. 영화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전주영화제 달구는 다큐 3편
이번 전주국제영화제 가장 눈에 띄는 흐름은 다큐멘터리의 약진, 그중 저널리즘과도 같은 다큐멘터리의 진출이다. 문화방송에서 해고된 최승호 피디가 만든 <자백>, 교육방송(EBS) <지식채널>을 만들었던 김진혁 피디의 연출작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이 ‘코리아 시네마 스케이프’ 섹션에서 상영됐다. ‘한국경쟁부문’에 선정된 윤재호 감독의 <마담 비(B)>는 종군기자 같은 자세로 현장을 향해 돌진한 다큐멘터리다. 전주에서 화제가 됐던 3개의 작품과 감독들을 만나봤다.

그 ‘자백’은 무효다

“오빠가 간첩활동을 한 게 맞습니까?” “…네.” 영화 <자백>은 2014년 간첩 혐의로 법정에 선 유우성씨 여동생 유가려씨의 떨리는 ‘자백’으로 시작한다. 오빠와 한국에서 살고 싶은 게 꿈이라던 여동생은 왜 오빠는 간첩이라고 증언하게 됐을까? 그들의 자백이 시작되는 곳, 국가정보원 합동신문센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더듬는 영화는 만약 그들이 간첩이라는 증거가 고문과 폭력과 협박으로 받아낸 자백에 의존한 것이라면 결국 많은 간첩 사건들은 조작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이르게 된다.

유우성씨의 사례뿐만 아니라 1975년 ‘재일 한국인 유학생 간첩단’ 사건과 합동신문센터에서 조사를 받다 자살한 한종수씨 이야기까지 담고 있는 영화가 대중적으로 성공하게 된다면, 하나는 무거운 주제를 친절히 안내하는 방송용 다큐의 어법 덕분이고 다른 하나는 뜻하지 않게 조연으로 출연한 김기춘, 원세훈 등 전 정보기관 수장들의 민낯 덕분이다. 우연히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며 전 안기부 차장 김기춘씨와 마주친 감독은 지금은 무죄로 밝혀진 간첩단 사건 수사를 지휘한 이유를 묻는다.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법원에 출두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의 표정은 관객들의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최승호 감독은 “국정원은 간첩조작에 대해 한 번도 진심으로 반성을 한 적이 없다. 그 조직의 기풍은 결국 국민이 바꿔주어야 한다”고 영화를 만든 이유를 말했다.


‘탈북 브로커’ 마담을 따라

다큐 '마담 비'. 영화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다큐 '마담 비'. 영화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마담 비>는 바로 그 직전의 길, 탈북자들이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추적한다. 프랑스에서 영화를 공부한 윤재호 감독은 2013년 극영화 프로젝트 취재를 위해 중국으로 건너갔다가 우연히 탈북을 돕는 여성 브로커, ‘마담 비’를 만난다. ‘마담 비’는 자신도 한국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감독은 산둥 지역에서 중국 서남으로, 그곳에서 라오스와 태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는 탈북자들의 한국행에 동행한다. 경로가 드러나지 않도록 길보다는 사람들을 주로 찍으며 밀입국에 동반한 카메라는 긴박하다. 52일 동안 숨죽이며 정글을 지나고 산을 넘어 일행이 간신히 태국의 난민수용소에 도착했을 때 감독은 불법입국자라는 사실이 알려져 태국에서 추방되기도 했다.

이 다큐멘터리의 가치는 언론으로 치자면 특종이라 했을 만한 탈북 과정을 담아냈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북한에서 인민보안부 감시를 받던 ‘마담 비’는 한국에 오자마자 합동신문센터로 가서 간첩 혐의로 6개월 동안 조사를 받았다. 풀려나긴 했지만 간첩 혐의가 완전히 풀리지 않은 ‘비보호 신분’인 그의 한국 생활은 만만치 않다. 윤재호 감독은 “분단을 물려받고 태어난 세대로서 경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내 것처럼 다가왔다”며 “마담 비의 개인 역사를 통해 우리 역사가 짊어진 아이러니를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7년’ 뒤 다시 부르는 이름들

다큐 ‘7년-그들이 없는 언론’. 영화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다큐 ‘7년-그들이 없는 언론’. 영화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권석재·노종면·우장균·조승호·정유신·현덕수 등 와이티엔(YTN)에서 해고된 기자들과 정영하·강지웅·최승호·박성제·박성호·이용마 등 문화방송(MBC)에서 해고된 언론인들이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의 주인공들이다. 이 가운데 권석재·우장균·정유신 기자만 2014년 대법원 판결로 복직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부터 2015년까지 19명의 언론인이 해고됐고 그 사이 언론인들은 기레기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는 자막으로 시작해 “변화는 언론 밖에서 일어날 수 없다. 지금 저항하지 않으면 새로운 정치세력이 들어올 때 변화를 이뤄내겠다는 생각은 오산일 뿐”이라는 최승호 전 문화방송 피디의 말로 끝나는 영화의 메시지는 간결하다. 그러나 7년의 세월을 담아낸 영화는 간단치 않다. 해직 언론인들에게 바짝 다가선 카메라는 그들의 희망과 기대, 분개가 하나둘 절망과 피로로 사그라들었다가 다시 지치지 않는 분노로 바뀌어 가는 모습을 포착한다.

김진혁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든 이유를 한 마디로 “방송에선 사라져버린 해직 언론인들의 이름을 되찾아주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해직 언론인이 아니라 다른 심장과 개성을 지닌 얼굴들을 구별하게 됐을 때 눈물을 자아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공정방송이 뭔데 저렇게 7~8년을 살 필요가 있을까, 이런 영화를 볼 일이 없는 사람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저 사람들이 겪은 고통을 느끼고 저 사람들이 있었더라면 하는 바람을 갖는 것은 관객들에게 맡긴다”는 것이 감독의 말이다.

전주/글·사진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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