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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여든살 감독의 신자유주의 고발, 칸은 환호했다

등록 2016-05-23 10:23수정 2016-05-23 22:32

22일(현지시각) 밤 폐막한 제69회 칸영화제에서 <아이, 다니엘 블레이크>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켄 로치 감독이 왼손으로 트로피를 쥔 채 오른 주먹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칸/EPA 연합뉴스
22일(현지시각) 밤 폐막한 제69회 칸영화제에서 <아이, 다니엘 블레이크>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켄 로치 감독이 왼손으로 트로피를 쥔 채 오른 주먹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칸/EPA 연합뉴스
켄 로치 감독, 두번째 황금종려상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통해
영국 복지서 소외당한 노동자 다뤄
“신자유주의에 의한 긴축재정 위험”
수상소감에 2000여명 박수로 반겨

심사위원대상엔 ‘단지 세상의 끝’
박찬욱 감독 ‘아가씨’ 수상 불발
“이 영화는 힘있는 자들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연대를 표현하려는 것이다.”

여든살 사회파 거장의 수상 소감은 그의 영화만큼이나 에두름이 없었다. 22일(현지시각) 폐막한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은 영국의 노장 감독 켄 로치에게 돌아갔다. 영국 복지제도에서 소외된 노동계층의 이야기를 다룬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그는 생애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칸 뤼미에르 극장 시상식 무대에 선 그는 잠시 눈시울을 붉혔다. 2000여 관객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로 노장의 수상을 반겼다. 곧 그의 단호한 수상 소감이 객석에 울렸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는 우리를 파국으로 몰고 갔던 신자유주의에 의해 추동된 긴축정책이라는 위험한 프로젝트에 사로잡혀 있다. 이는 수십억명을 크나큰 고난에 빠지게 했고 그리스에서 스페인에 이르는 수백만명을 생존투쟁으로 몰고 갔다. 반면, 극소수에게만 막대한 부를 가져다줬다.” 그가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다른 세계 또한 가능하고 필요하다고 외쳐야 한다”고 변화를 역설하며 연설을 끝맺는 순간, 다시 박수가 쏟아졌다.

영화 인생 49년, ‘노동계급의 시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사회주의자, 19번 칸에 초청받고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받은 거장에 대한 존경과 공감이 극장을 채웠다. 2006년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나선 젊은이들을 그린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지 10년 만이다. 고령을 고려하면 마지막 작품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이 작품에서도 약자와 함께하며 승자독식 세계를 비판적으로 통찰하는 시선은 전혀 녹슬지 않았다.

켄 로치 감독의 '아이, 다니엘 블레이크'. 칸/EPA 연합뉴스
켄 로치 감독의 '아이, 다니엘 블레이크'. 칸/EPA 연합뉴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영국 복지제도의 그늘 속에 사는 한 나이든 노동자와 싱글맘 등의 이야기를 통해 신자유주의 체제와 약자들에게 고통을 강요하는 긴축정책, 복지 축소, 관료주의 문제를 폭넓게 짚는다. 평생 목수로 일해온 다니엘 블레이크(데이브 존스)는 심장발작 우려가 있으니 더이상 일하지 말라는 의사의 권유를 받고 은퇴하려 한다. 그는 실업급여를 받으려 애쓰지만, 관료주의적 영국 복지시스템을 향해 노동능력 상실을 증명하기란 쉽지 않다. 다니엘은 노동센터에서 두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싱글맘 케이티(헤일리 스콰이어스)를 만나 돕는다. 당장 빵이 없는 사람과 곧 가진 빵이 다 떨어지게 될 사람들이 빵조각을 나누며 허기를 채운다. 영화는 지독한 무기력이나 현실에 대한 건조한 고발로 빠지지 않으면서, 사람들의 온기와 재치있는 농담으로 기운을 북돋우며 막판까지 관객을 이끈다. “나는 소비자도, 서비스 노동자도 아닙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사람이며, 시민입니다”라는 대사처럼 이 영화는 무엇보다 ‘어려운 이들의 연대’에서 절망을 딛는 희망의 근거를 찾는다.

1962년 티브이 드라마 연출자로 데뷔한 이래 로치는 줄곧 노동계급, 빈민, 노숙자 등의 처지를 현실적으로 묘사하는 길을 걸어왔는데, 이 작품에선 나이듦과 더불어 한층 깊고 원숙해진 세계관과 만듦새로 심사위원들을 사로잡았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밑바닥 처지의 다니엘이, 자기보다 훨씬 더 열악한 처지의 싱글맘 가족을 도우며 난국을 극복해 나가는 모습이 감동과 울림, 교훈적 메시지 등을 두루 선사한다”며 “올해 칸이 선호하는 ‘소중한 가치’와 맞아떨어진 측면이 크다”고 수상 이유를 짚었다.

2등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은 그자비에 돌란 감독의 <단지 세상의 끝>이, 감독상은 <퍼스널 쇼퍼>의 올리비에 아사야스와 <바칼로레아>의 크리스티안 문지우가 공동수상했다. 심사위원상은 영국 감독 앤드리아 아널드의 <아메리칸 허니>가 받았다. 남우주연상은 프랑스·이란 영화인 <세일즈맨>의 샤하브 호세이니, 여우주연상은 필리핀 영화 <마 로사>의 재클린 호세에게 돌아갔다.

<아가씨>로 경쟁 부문에 진출한 박찬욱 감독은 앞선 두 차례 초청에서 심사위원대상과 심사위원상을 받아 이번에 황금종려상 수상에 대한 기대가 높았으나 결국 불발에 그쳤다.

칸/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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