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극장가에 새로운 주인공이 나타났다.
영화 <곡성>에서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인간도 귀신도 아닌 존재로 변해버린 데 이어 7월 개봉하는 <부산행>에선 좀비로 변해버린 사람들이 인간을 덮친다.
나홍진 감독의 <곡성>과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은 한국 영화에 지금껏 없었던 존재를 불러낸 것 외에도 닮은 구석이 많다.
무엇보다 하나는 오컬트·스릴러로, 다른 하나는 좀비·재난 영화로 둘 다 한국 상업영화로서는 드문 장르에 도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 좀비 그리고 부성애
엄밀히 말하면 <곡성>의 그 존재는 좀비는 아니다. 좀비는 이미 죽어버린 주검이 누군가의 지배를 받아 움직이는 존재들을 말하는데 이 영화에선 대부분이 아직 죽지 않은 채 다른 사람들을 공격한다. 다만 <곡성>도 후반부에선 죽은 존재를 다시 살려내 좀비물의 설정을 들여왔다.
이에 비해 <부산행>은 처음부터 “물리면 감염된다”는 좀비물의 공식에 충실한 영화다. 감염은 즉각적으로 이뤄지는데, 좀비와 인간이 같은 부산행 고속열차를 탄다는 설정에 따른 영화의 속도감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종교적 기운에 싸인 <곡성>과 액션영화의 문법을 보여주는 <부산행>은 전혀 다른 느낌의 흐름을 타지만, 두 영화 모두 아버지와 딸의 사랑이 굵은 줄기가 된다. <곡성>에서 종구(곽도원)가 딸에 대한 애정을 놓을 수 없는 이유를 보여주는 장면이 <부산행>에도 등장한다. 한국형 좀비들에게 가족의 사랑은 어떤 저주보다도 강하다.
■ 결정적 조력자, 최귀화
배우 최귀화는 <곡성>과 <부산행>에 모두 출연해 주인공을 돕는다. 두 영화 모두 비중이 크진 않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은 그의 존재를 잊기가 어렵다. 드라마 <미생>에서 가난한 껍질 속에 단단한 속내를 감추고 있는 박 대리 역으로 단 1회 출연했지만 두고두고 화제에 올랐던 것과 비슷하다. <곡성>에서 그는 평범한 동네 정육점 주인으로 등장한다. <부산행>에서도 대체 언제부터 그가 열차를 탔는지 아무도 기억 못할 만큼 하찮은 존재다. <곡성>에서 그는 주인공을 돕겠다고 정육점에서 쓰는 연장을 챙겨 따라 나선다. <부산행>에선 가난한 노숙자로 등장하지만 가진 것 없는 사람이 재산과 인맥을 자랑하는 대기업 상무보다 더 인간됨을 보여주는 역이기도 하다.
개인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재난 속에서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들 중 하나가 그 해답일 수 있음을 두 최귀화는 보여준다.
■ 몸짓과 음악을 만든 사람들
<곡성>에서 박춘배(길창규)가 머리에 쟁기를 꽂은 채 비틀거릴 때의 동작은 현대무용가 박재인이 고안한 것이다. 박재인은 죽은 것과 다름없는 존재로 보이도록 배우들을 여러 달 훈련시켰다. 박재인은 “<곡성>에서 빙의된 사람들이나 죽은 뒤 부활한 사람들의 동작은 일본 무용 부토에서 죽음을 다룬 춤을 참고했다”고 한다. 여태껏 한국 영화엔 좀비 같은 몸짓을 구현한 경우는 없었다. 팔과 다리가 뒤틀린 채 사람만 공격해야 하는 좀비의 동작은 <부산행>에서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역시 박재인이 안무를 맡았다. 그는 “<부산행>은 <데이즈 투 다이> 같은 비디오게임이나 <공각기동대> 같은 영화에서 동작들을 참고해 공간에 따른 변화와 속도감 있는 행동을 살리도록 신경썼다”고 말했다.
두 영화 음악 또한 작곡가이면서 연주자인 장영규가 모두 맡았다. 그는 “<곡성>은 앞일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점점 사건에 휘말리는 주인공의 불안감과 의구심에 가득한 마음을 따라가는 음악을 했고, <부산행>은 처음부터 사건과 감정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음악을 의도했다”고 한다.
남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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