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가씨'. 사진 각 배급사 제공
두 여성의 사랑·연대의 힘 그려
여자들의 전투력이 심상찮다. 6월1일 개봉하는 한국 영화 <아가씨>부터 7월 개봉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고스트버스터즈>까지 영화 속 여자 주인공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싸움에 나섰다.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가 원작 소설인 세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와 가장 다른 점은 여자들이 싸움을 주도한다는 점이다. 소설에서 아가씨와 하녀는 서로를 이용해야 하는 처지다. 백작은 아가씨와 결혼한 뒤 재산을 가로채려는 음모를 꾸미고 조력자로 하녀를 선택한다. 저택에 갇혀 살아온 아가씨는 자유를 얻기 위해 하녀가 필요하다. 영화도 설정은 비슷하지만 재산과 자유를 얻기 위한 싸움을 주도하는 쪽은 여자들이다. 백작은 두 여자의 앞날을 좌우하고 있다고 믿고, 외숙부는 두 여자의 신체와 정신을 통제하려 들지만 사랑과 연대의 힘을 갖춘 여자들은 태생적으로 승리자들이다. 동성애 묘사가 남성적 시선이라는 논란이 있었지만, 영화의 의도는 남자들의 가학적 성애에 비한다면 여자들의 사랑은 얼마나 자기 완결적인지를 그리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드레스 펄럭이며 좀비와 전투
지난 25일 개봉한 영화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에선 여자들이 화려한 드레스 자락을 펄럭이며 무술을 한다. 베닛가의 다섯 딸이 칼을 리전시 드레스에 숨기고 무도회장으로 나서는 장면은 압도적이다. 이 시대 상류층은 동양으로 자녀들을 유학 보냈는데, 베닛가의 딸들은 소림사에서 무술 유학을 했다는 설정이다. 원작의 엘리자베스와 다시의 투닥거리는 말다툼은 에로틱한 결투로 변한다. 좀비물로 전환된 이야기 전개를 주도하는 건 여성들이다. 좀비와의 전투에서 전설적인 검객도 여성으로,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나온 리나 히디가 연기한다.
작가 세스 그레이엄스미스는 2009년 제인 오스틴의 19세기 고전 <오만과 편견>을 좀비물로 새롭게 쓰면서 여성들을 좀비 사냥꾼으로 만들었다. 스미스는 “결혼은 끊임없이 생명력을 빨아먹으면서도 당장은 죽지는 않는 영원한 저주와 비슷하다”고 패러디 이유를 설명한 바 있다.
유령 사냥꾼을 여성으로 바꿔
1984년과 1989년 1·2편에 이어 30년의 세월을 건너온 <고스트버스터즈3>도 7월 개봉한다. 전편의 네 남자 유령 사냥꾼은 이번에 영화 <스파이>의 코미디언 멀리사 매카시를 비롯한 4명의 여성으로 바뀌었다.
성역할을 바꿔 새 의미를 찾는 영화적 시도는 어느덧 익숙해진 전략이다. 하지만 영화의 의미가 확장되는 과정은 결국 관객과 사회 분위기에 달렸다는 점을 생각할 때,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이후 여성들의 목소리가 확산되는 지금 이런 영화들이 잇달아 찾아온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영국 여성참정권 운동 담아내
2일 시작되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개막작으로 영국 여성참정권 운동을 그린 <서프러제트>를 상영한다. 20세기 초 여자들은 정서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정치적 판단이 어렵다는 편견에 갇혀 있던 시절, 투표권을 요구하던 여자들은 집에서 쫓겨나거나 투옥되기도 했다. 7살 때부터 세탁공장 노동자로 일해온 모드 와츠(케리 멀리건)는 다른 여성들의 용감한 선택에 영향을 받아 서프러제트(여성참정권 운동가)가 된다. 배우 헬레나 보넘 카터가 남편이 운영하는 약국을 투쟁가들의 은신처로 활용하며 싸우는 중산층 여자를, 메릴 스트립이 참정권 운동가 에멀라인 팽크허스트를 연기한다.
“우리가 창문을 깨고 물건을 태운 건 그래야 남자들이 알아듣기 때문이죠.” 영화 <서프러제트>에선 여성운동이 전투성을 띠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는 실제 에멀라인 팽크허스트가 쓴 책의 제목이다.
남은주 구둘래 기자 mifoco@hani.co.kr
영화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사진 각 배급사 제공
영화 '고스트버스터즈3'. 사진 각 배급사 제공
영화 '서프러제트'. 사진 각 배급사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