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시나리오보다 훨씬 밝고 가볍게 나왔다. 천만다행이다.” 16일 개봉하는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이하 <특별수사>, 감독 권종관)에서 주연을 맡은 김명민(사진)은 영화를 보고 나서 몇 번이나 이렇게 말했다. 그는 변호사 사무실 사건 브로커로 일하다가 뜻하지 않게 재벌과 싸움에 나서는 역을 맡았다. 영화의 분위기를 밝게 이끌기 위해 분투했다는 그를 1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번 영화에선 내가 맡은 캐릭터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학습하고 준비할 필요는 없었다. 평소 알고 있던 변호사 지식을 우려먹었다. 그보단 한 사람의 터닝포인트를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김명민은 배역에 몰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땐 5개월 동안 지휘연습을 했고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에선 루게릭병에 걸린 환자를 표현하기 위해 몸무게 20㎏을 뺐다. 이번 영화에선 그런 고된 수련 대신 ‘필재’라는 인물을 모델로 한 소설을 여러 편 써보았단다. “필재는 3번 바뀌는데, 그중 대해제철 며느리 살인 사건에 뛰어들게 되는 마음의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 영화에선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그 인물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갖고 있어야 자연스럽게 표현되리라고 생각했다.” 그가 소설로 배역의 일대기를 적어본 이유다.
<특별수사>는 전과자 아버지를 평생 짐으로 안고 사는 전직 경찰 필재가 대해제철 며느리 살인 사건 누명을 쓴 택시기사 순태(김상호)의 딸 동현(김향기)을 만나면서 사건에 휘말리는 내용이다. 김명민은 “동현을 보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되고, 아버지가 전과자라는 동질감 때문에 돕게 되지만 그렇다고 사람이 바뀐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속물근성과 재수없는 성격은 여전할 것이다. 사건 이후 필재의 삶에 대해 내가 써놓은 소설을 보면 그렇다”며 웃었다.
“이거 침 뱉은 거 아니지?” 사람 못 믿는 성격의 필재는 영화에서 누가 음료수를 줄 때마다 그렇게 묻는다. 즉흥연기는 잘 안 하는 편이지만 느물거리고 어디 가도 쫄지 않는 성격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우연히 던진 애드리브인데 재밌어서 여러 번 써먹었다고 한다.
<특별수사>는 고된 영화였다. “감독님이 컷을 안 해요. 배우가 죽어갈 지경인데도 컷을 안 하데요. ‘그는 배우의 죽음 따위는 안중에 없다. 명장면만이 중요하다’고 여러 번 투덜거렸는데 이제 좀 감독님 귀에 들어갔으려나”라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그의 근성도 못지않다. 지난해 6월12일부터 9월26일까지 이 영화를 촬영하면서 후반부에는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정도전 역을 함께 찍었다. <특별수사>가 개봉하는 16일 즈음에는 배우 변요한과 함께 영화 <원데이>(가제, 감독 조선호)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다. 올해 말엔 박훈정 감독과 <브이아이피>(가제)라는 영화를 찍는다.
“한때 제발 연기를 잘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린 적도 있어요. 이제는 아예 바라지도 않아요. 내 나이대 배우가 어떤 식으로 연기해야 잘하는 건지 답이 없는 것 같아요.” 누가 김명민을 ‘연기본좌’라고 하는가. 그는 아직도 촬영장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점검하기 위해 설치해놓은 모니터를 쳐다보질 못한단다.
남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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