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영화 <곡성>에서 13살 효진(김환희)이가 호통칠 때 뭣이 중한지 잘 모르는 어른들은 움츠러들었다. “아저씨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것 같아요. 왜 일을 저런 식으로 해?” 영화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에선 8살 말순(김하나)이가 툭하면 돌직구를 날린다. 7월 개봉할 영화 <부산행>에서 수안(김수안)은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가는 어른들을 쏘아본다. 요즘 영화에선 아이들이 무섭다. 순진하거나 귀엽기만 했던 아이들의 캐릭터가 무섭게 진화하고 있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사진 각 회사 제공
■ 욕망하고 통치하는 어린이 아이들이 순진무구한 세계를 벗어나 어른들의 삶에 적극적으로 끼어드는 시작은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2014)부터였다. 이 영화에서 10살 소녀 지소(이레)는 집이 망해서 엄마, 동생과 함께 거리에 나앉게 되자 집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선다. 강아지를 훔쳐서 주인에게 돌려주어 사례금을 받겠다며 동생과 작전을 모의하고 실행에 나서는 어린이 캐릭터가 나온 것이다. 티브이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에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프로그램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제작한 삼거리픽쳐스 엄용훈 대표는 “현실 속 어린이들이 능동적인 소비주체로 변화해가고 있고 최근 드라마나 영화에서 어린이의 구체적인 심리나 상황에 주목하는 경향이 많아지면서 아역 자체가 앞으로 성장할 기회가 많은 캐릭터로 떠오르고 있다”고 했다.
다층적이고 현실적인 어린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유로 독립영화스튜디오 무브먼트 진명현 대표는 “최근 <차이나타운> <아가씨> 등 여성들의 욕망을 드러내는 영화를 그린 영화가 많아지면서 그들의 아역이 좀더 개성 강한 역을 맡게 됐다”는 점 또한 꼽았다. 지금 주목받는 어린 연기자는 대부분 여자다. 정신분석가 이승욱 박사는 “대중문화 속 아역의 모습은 어른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언어와 욕망을 아이들에게 투사하는 쪽에 가깝다”고 말했다.
■ 영화와 현실의 중개자 어린이들의 감정과 욕망에 주목하는 영화도 나왔다. 오는 16일 개봉하는 영화 <우리들>은 사랑받고 싶고, 미움받기 싫고, 군림하고 싶은 11살 여자아이 3명의 복잡미묘한 심정을 그렸다. 한국영화사에서 어린 주체들의 자의식의 성장을 다룬 드문 사례로 남을 이 영화는 베를린영화제를 비롯해 여러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다. 영화를 만든 윤가은 감독은 “아이들의 캐릭터를 현실적이고 주체적으로 그려 우리가 이렇게 살아왔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는 자기성찰적 역할을 하게 한다면 새로운 영화가 태어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내다봤다.
영화에서 아역을 택하고 데려오는 방식은 성인 연기자와는 다르다. <아저씨>(2010) <이웃사람>(2012) <바비>(2012) 등에 출연했던 김새론, <피크닉>(2014) <카트>(2014) <해어화>(2015) <부산행>(2016)의 김수안, <소원>(2013)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2014) <오빠생각>(2015)의 이레 등 성인배우보다 더 다양하고 넓은 영화경력을 가진 아역들이 성장하고 있지만, 많은 영화에선 연기경험이 전혀 없는 새로운 어린 주인공을 선호한다.
엄용훈 대표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만들 때 김성호 감독은 드라마에서 연기한 경험이 없는 백지상태의 아역을 찾았다. 아역의 전형성에 갇히지 않는 어린 배우들에게서 새로운 것을 끄집어내기를 원했다”고 했다. 신인들로 영화를 찍은 윤가은 감독도 “아역들은 가능한 한 날것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 새롭다는 느낌을 주는 방법”이라고 했다. 이는 성인 배우들과는 달리 많은 아역들이 성격과 타고난 재능으로 뽑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인 배우들의 삶은 대부분 영화라는 자기장 안에 있지만 아역 배우들은 영화와 현실에 걸쳐진 존재다. 현실 속 어린이의 삶이 영화에서도 그대로 드러날 것이다.” 윤가은 감독의 말이다.
남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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