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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훨씬 더 불온하기를 바랐다”

등록 2016-07-11 15:30수정 2016-07-12 22:06

이경미 감독, <비밀은 없다>의 비밀을 말하다

(※이 기사엔 영화의 결말이 일부 포함되어 있음을 알립니다.)

찬사와 혹평이 엇갈리는 영화 <비밀은 없다>는 최근 몇년 새 나온 한국 영화 중 가장 문제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경미(사진) 감독은 불륜, 살인, 동성애뿐 아니라 부모 자식 사이에 존재하는 불순한 감정 같은 껄끄러운 이야기를 가장 불편한 방식으로 이야기하며 관객을 도발했다.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의 외투 속에 불온하고 은밀한 주제를 숨겨둔 영화의 비밀을 알기 위해 감독을 여러 차례 인터뷰했다. 극장 상영 뒤 관객과의 대화에서 나왔던 질문과 한겨레티브이에 이경미 감독과 함께 출연해 영화 이야기를 나눈 이해영 감독의 질문과 해석도 기사에 반영됐다.

영화 <비밀은 없다>의 한 장면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비밀은 없다>의 한 장면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 <미쓰 홍당무>가 낳은 이야기 감독은 여러 차례 “이 영화는 전작인 <미쓰 홍당무>의 어떤 관계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한 여자가 자신의 사랑을 위해 힘껏 달려가는 코미디물 <미쓰 홍당무>와 딸의 실종을 둘러싼 비밀을 찾아가는 <비밀은 없다>는 분위기는 사뭇 다르지만 딸이 아빠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다는 설정은 비슷하다. “<미쓰 홍당무>를 찍을 때 마지막에서야 전면적으로 등장하는 엄마(방은진) 캐릭터가 멋있다고 생각했다. 혼란 속에서도 최선을 취할 줄 아는, 놀라운 합리성과 이성을 가진 여자 그게 내 이상형”이라는 감독은 정치인의 부인인 연홍(손예진)이 딸 민진(신지훈)을 잃고 나서 자신을 둘러싼 비밀을 직시하게 되는 엄마의 수난기를 만들었다.

그런데 연홍이라는 인물은 ‘엄마’라는 전형으론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인물이다. 처음엔 과하게 히스테리를 부리다가 딸이 죽었다는 사실을 안 뒤엔 오히려 갑자기 수사관처럼 냉정해지는 이상한 캐릭터다. 관객의 몰입을 끊는 ‘악수’라는 평가까지 한쪽에서 나오는 엄마 캐릭터를 감독이 만들어낸 이유는 두 가지다. “관객들이 사건을 따라가기보다는 엄마의 감정을 추리하게 되기를, 또 여자가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 철저하게 고독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저 여자는 뭐냐? 또 저 아빠라는 사람은? 게임하듯 모든 인물에게 의문부호를 붙이고 보면 재미있을 것이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영화 <비밀은 없다>의 한 장면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비밀은 없다>의 한 장면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 그들에게 속지 말라 엄마 말고도 이 영화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여럿이다. 영화 초반 아빠(김주혁)의 경쟁 정치인인 노재순(김의성)이나 스파이 같은 사무국장(김민재)을 의심하다간 길을 잃기 십상이다. 망치를 들고 연홍을 해치려던 사람은 범인이 아닌 걸로 드러나지만, 아빠나 딸의 친구 미옥(김소희), 담임선생님(최유화)은 여전히 의심스럽다.

그러나 이런 설정을 모두 ‘낚시질’이라고 볼 필요는 없다. 진실을 찾아가는 길을 교란하는 인물들은 단순히 미끼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진실의 조력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선거 이야기나 노재순은 맥거핀이 맞지만 다른 장치들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면 지역감정, 도시의 분위기는 연홍이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 맞닥뜨리고 뛰어넘어야 할 장애물이다. 아버지도 미끼는 아니었다. 딸이 사라진 날 밤 그는 어떤 사람을 만나 정치적 미래를 도모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의심을 받는다. 이 장면은 지금은 지역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장차 더 큰 자리를 가지고 싶어하는 그의 욕망을 암시한다. 동시에 딸이 사라진 날 밤에 아빠는 딸을 찾지 않았다는 사실은 영화의 긴장, 동력이 된다. 이 영화는 모든 인물의 욕망이 드러났을 때 어떤 종말을 맞이하느냐를 보여주는 것이고 아버지는 모든 인물의 욕망의 공통분모이기도 하다.”

감독이 원래 촬영한 <비밀은 없다>의 결말은 딸의 친구 미옥이 아빠를 죽이는 것이었다고 한다. 민진이가 살해당했던 방법 그대로 미옥이가 아빠를 ‘한번, 두번, 세번’ 차로 밟고 지나가는 결말을 고민 끝에 편집실에서 덜어냈고, 그 결과 아빠는 죽지 않고 사회적 위치를 거세당한 채 살아가게 됐다.

■피튀기는 멜로드라마 이 참극의 피해자이며 주도자인 소녀들 덕분에 영화의 한 축은 화사하고 아름답다. “나는 이것을 멜로드라마로 생각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닿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겪는지, 그 여정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거칠고 무시무시한 어른의 세계 안에서 솜털같이 보송보송하고 따뜻한 아이들의 세계가 유지됐다는 것이 희망”이라는 감독은 소녀들의 세계를 키스와 찔레꽃과 낯선 음악으로 장식했다. 엄마는, 어른은, 아이가 가장 사랑하던 공간과 악기를 부수면서 비로소 진실과 마주치기 시작한다.

6월23일 개봉한 이 낯선 영화는 여름 성수기를 앞둔 극장가에서 고전해왔다. 공감을 방해하는 화법, 모순과 불균형의 서사로 장르의 관행을 부수는 망치를 들었던 감독도 걱정이 많아질 상황이다. “개봉 전 걱정했던 데 비하면 다양한 해석과 이해가 있었다. 개봉 2주가 넘자마자 멀티플렉스에서 쫓겨날 처지이지만 내가 지금 아주 절망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앞으론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 좀 해봐야겠다.” 감독이 지금 처한 자리가 연홍의 자리다. ‘생각하자, 생각하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생각하자….’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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