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억 제작비 <인천상륙작전> 언론 공개
리엄 니슨·이정재 등으로 기대 모았으나
구시대적 반공영화에 맥빠진 드라마 혹평
전쟁영웅 만들어내기 위해 역사왜곡 논란도
리엄 니슨·이정재 등으로 기대 모았으나
구시대적 반공영화에 맥빠진 드라마 혹평
전쟁영웅 만들어내기 위해 역사왜곡 논란도
과거에서 온 편지가 도착했다. 20일 언론배급시사를 통해 공개된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한국전쟁의 판세를 뒤바꿔놓은 작전이라는 소재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도, 주제도, 배우들의 연기조차도 반세기 전으로 되돌아간 듯하다. 총제작비 170억원, 할리우드 액션 스타 리엄 니슨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던 영화는 애초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이 우세하다. 시사회가 끝난 뒤 비평가와 영화계 관계자들 사이에 오간 의문들을 정리해본다.
■ 리엄 니슨은 왜 인천에 왔을까? 가장 먼저 나온 질문은 왜 굳이 리엄 니슨에게 맥아더 장군 역을 맡겨야 했느냐는 것이다. 영화가 공개되기 전엔 유대인들을 구하는 독일인(<쉰들러 리스트>), 딸을 구하는 아버지(<테이큰>)로 한국 관객들에게도 익숙한 그에게 한국전쟁의 운명에 결정적 구실을 하는 맥아더 역을 맡긴 것은 신의 한 수처럼 보였다. 그러나 영화 상영시간 111분 중 맥아더가 등장하는 시간은 16분. 그마저도 대부분을 유엔군사령부에 앉아 “이상을 좇아야 영혼이 주름지지 않는다” 같은 말을 읊조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왜 굳이 리엄 니슨이 그 역을 연기해야 했을까 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는다. 그의 배역과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았기에 미 군함이 태풍을 헤치고 인천 앞바다로 올 때 그가 “이 전쟁은 나의 마지막 전쟁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외치는 장면에서 일부 관객들은 실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이 영화를 위해 맥아더 장군을 연구하고 그의 작은 습관까지 완벽하게 표현하려고 했다는 배우의 잘못은 아니다. 감정이입하기 어려운 일방적 영웅으로만 그려진 배우 이정재, 유일하게 비중 있는 여성으로 나오지만 아무런 무게감도 없는 한채선, 특별출연한 김선아, 추성훈, 김영애 등 화려한 카메오들의 잘못도 아니다. 인천과 유엔군사령부 두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를 하나로 엮기엔 설득력이 부족한 서사, 맥아더와 인천이 결부돼 있음을 보여주지 못한 긴박감 떨어지는 편집, 평면적인 캐릭터 등 제작진의 총체적인 작전 실패로 보아야 한다.
■ 왜 작전을 바꿨을까? 맥아더가 영화 속에 하나로 섞여들기 어려웠던 이유는 <인천상륙작전>의 주 내용이 작전 직전 북한군이 점령한 인천을 무대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이재한 감독이 전작 <포화 속으로>에서 그려냈던 전쟁 장면은 이 영화에선 5분가량 등장할 뿐 대부분은 적진에 침투해 기밀정보를 빼돌리려는 국군 정보장교 장학수(이정재)와 대원들의 활동이다. 감독의 장기마저 포기하는 선택을 하면서 영화는 대신 장학수와 인민군 방어사령관 림계진(이범수)의 이념과 액션 대결에 상당 시간을 할애한다.
그러나 영화 <암살>의 세트장을 재현한 듯한 술집에서 벌어지는 첫번째 대결부터 길거리 총격, 병원 탈출, 마지막 대결까지 여러 번을 싸우지만 단 한 번도 긴장감을 일으키진 못한다. 인민군이 국군 정보대를 추격하는 도중 갑자기 목재 운반차가 나타나서 이를 가로막고 총알도 장학수는 피해 가는 식의 영화는 액션물이라고 부르기에도 부족했다. 림계진을 마구잡이로 총질을 해대고 민간인의 목숨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거둬가는 무모한 악당으로 묘사하는 등 남과 북을 선과 악으로 절대화함으로써 1990년대 이후 <간첩 리철진> <웰컴 투 동막골> <공동경비구역 제이에스에이(JSA)> 등에서 조금씩 진전돼온 분단을 바라보는 영화적 시선의 균형감을 다시금 일거에 무너뜨렸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영화평론가 정지욱은 “전쟁, 액션에 이어 가족물과 신파 요소들을 조금씩 넣고 비볐지만 어떤 맛도 내지 못한 엉성한 비빔밥이 됐다”고 평했다.
이런 과거회귀적인 영화의 탄생 배경을 두고도 여러 말이 나온다.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쪽은 “영화 투자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라며 선을 긋고 있지만, 일각에선 오는 광복절 ‘특사’를 희망하고 있는 씨제이그룹 오너의 거취와 연관시키는 시각도 있다. 영화평론가 이용철은 “이 영화는 그동안 씨제이엔터테인먼트가 내놓았던 ‘국뽕’ 영화 중에서도 최악”이라며 “우리 영화산업에서 가장 큰 영화기업이 특정 정권 때문에 시즌마다 이런 영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이 비극”이라고 말했다.
■ 그들은 왜 역사를 편집했을까? 왜 성공한 작전을 그린 <인천상륙작전>은 누구의 마음도 명쾌하게 하지 못했을까? “미국의 압도적인 물량 공세 덕분에 성공한 것만으로 ‘잘못’ 알려진 인천상륙작전의 역사를 바로잡아 한국전쟁 영웅들의 숨은 노력을 밝혀내겠다”는 제작의도를 밝혔던 영화는 무리수를 감행한다. 영화에선 인천을 점령한 인민군의 막강한 화력을 강조하며 불가능한 작전이었다는 주장을 편다. 하지만 당시 인천 주둔 전체 인민군은 2000명, 주요 전투가 벌어진 월미도 지역 등의 전선엔 2개 중대 인원만 있었던 것으로 추산된다. 261척의 함정과 7만5천명의 대원을 끌고 온 국군과 연합군은 안전한 상륙을 위해 작전 3일 전부터 월미도와 인천항에 폭격을 퍼부었으며 민간인 사망자가 다수 발생했다. 국방부 <전사보고서>에도 이 지역은 상륙 전 이미 “앙상하게 변해버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상륙작전 한 달 전부터 영흥도, 덕적도 등에서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는 주장이 있어왔다. 영화에선 이들 전투와 작전은 삭제됐으며, 잘못은 모두 인민군이 저질렀던 일들로 바뀌었다. 인천지역 민간인 학살 문제를 조사해온 월미도원주민귀향대책위원장 한인덕(71)씨, 이희환 <황해문화> 편집위원 등은 “영화에서 민간인 피해는 물론 인천 시가지 상황, 전쟁 전개 등 상당 부분이 왜곡됐다”고 밝혔다. 피해자와 유가족이 엄연히 기억하고 있는 참혹한 역사를 영화가 임의로 조작, 편집했다는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영화 <인천상륙작전>에 맥아더 역으로 출연한 리엄 니슨.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첩보 액션물을 표방한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액션 장면.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인천상륙작전>에서 인민군 인천방어사령관 림계진(이범수)은 마구잡이로 총질을 해대고 민간인 목숨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거둬가는 무모한 악당으로 묘사된다.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실제 첩보부대 활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영웅 이야기를 위해 전쟁의 역사를 극화하면서 역사 왜곡 논란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주인공(가운데·이정재)과 첩보대원들.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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