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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고시원 살인사건, 아줌마가 나섰다

등록 2016-08-15 15:01수정 2016-08-19 16:07

시스템 바깥의 제대로 된 상업영화, 광화문시네마의 세 번째 영화 <범죄의 여왕>
<범죄의 여왕>은 고시원을 배경으로 사건 해결을 위해 활약하는 ‘아줌마’(박지영)의 이야기다. 콘텐츠판다 제공
<범죄의 여왕>은 고시원을 배경으로 사건 해결을 위해 활약하는 ‘아줌마’(박지영)의 이야기다. 콘텐츠판다 제공
<범죄의 여왕>은 흥미로운 설정으로 시작된다. “엄마 수도세가 120만원이 나왔어.” 서울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아들 익수(김대현)한테 전화가 걸려온다. 미장원을 운영하는 미경(박지영)은 손톱을 물어뜯은 뒤 결심한다. “올라가봐야겠어.” 고시 1차에 붙은 뒤 2차 준비를 하고 있는 아들은 시험을 5일 남겨두고 있다. “그냥 돈 내고 가.” 시험 준비에 방해될까봐 짜증을 내는 아들에게 미경은 말한다. “이틀이면 다 끝나. 빤스도 두 장밖에 안 가져왔어.” 관리사무소와 고시원 사람들은 한결같이 수상해 보인다. ‘물 새는 곳’을 찾아 고시원을 탐문하던 미경은 ‘촉’이 발동한다. “아무래도 살인사건이 일어난 것 같아.” 이렇게 무리수 두지 않는 스릴러 코미디가 탄생했다.

이요섭 감독은 보통의 영화에서 ‘모성애’를 중심으로 표현되는 ‘엄마’에 생생한 성격을 부여했다. “어머니가 디즈니 캐릭터 무늬의 접시를 모으는 걸 봤다. 환갑이 넘었지만 엄마도 여자였다. 그리고 엄마가 여자인 순간 멋있다.” 그런 생각에서 영화 속 ‘엄마’와 관리사무소의 젊은 남자 직원 개태(조복래) 사이에 아슬아슬한 연애 분위기도 만들어진다.

엄마 역에 박지영을 선택한 것은 적절했다. 꽤 오래전이긴 하지만 원빈과의 로맨스가 있던 드라마도 연상된다(<꼭지>, 2000년). 순제작비 4억원짜리 영화지만 캐스팅은 순조로웠다. 시나리오와 캐릭터의 힘 덕분이다. 박지영은 매니저가 프린트한 대본을 갖다주기 전에 이미 파일로 읽고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명량> <쎄시봉>에 출연하며 충무로의 블루칩이 된 조복래는 ‘개태’ 역을 꼭 맡고 싶어했다. <풍문으로 들었소>의 ‘독선생’ 허정도(403호 남자) 역시 출연을 흔쾌히 승낙했다. <마담 뺑덕>의 이솜은 방에서 게임만 하는 공무원 시험 준비생 진숙 역에 특별출연했다.

영화는 고시원을 통해 한국의 굴절된 풍경을 풍자한다. ‘고시삼자동락설’(고시에 떨어지면 친구와 애인도 다 떨어져나간다)이 판치는 속에, ‘반포’(반쯤 포기한 고시생) ‘십시’(2차 시험만 10번 떨어진 고시생으로 ‘십시일반’ 돌봐야 한다)들은 좀비처럼 시험 공부를 하고 있다. 감독이 요약한 풍경은 이렇다. “법을 집행하기 위해 공부하는 이들이 사는 곳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음에도 무심하다. 이타적인 일을 하려고 준비하는 사람들의 고시원이 가장 이기적인 공간이다.”

<범죄의 여왕>은 2012년의 <1999, 면회>(김태곤 감독), 2013년의 <족구왕>(우문기 감독)에 이은 광화문시네마의 세 번째 작품이다. 김태곤 감독은 최근 <굿바이, 싱글>로 210만 관객을 동원하기도 했다. 영화 뒤에 ‘쿠키 영상’을 삽입하는 것을 전통으로 삼는데, <범죄의 여왕>의 끝에선 전고운 감독의 <소공녀>를 예고했다. 이들은 ‘크기’가 중심이 된 시스템 밖에서 새로운 상업영화의 모델을 만들고 있다. “영화 성공해서 감독판도 개봉하라고 하는데, 이게 제가 만들고 싶던 그대로예요.” 이요섭 감독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범죄의 여왕>은 전국 200여개 관에서 25일 개봉한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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