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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한 생명의 무게를 묻고 싶었다”

등록 2016-08-18 16:17수정 2016-08-18 20:43

<터널> 김성훈 감독 인터뷰
<터널> 촬영 현장에서 모니터를 보고 있는 하정우와 김성훈 감독.
<터널> 촬영 현장에서 모니터를 보고 있는 하정우와 김성훈 감독.

<터널> 개봉 뒤 김성훈 감독은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 언저리에서 지낸다. 인터뷰가 이렇게 몰릴 줄 몰랐다고 한다. 한 카페에서 배우들처럼 시간마다 기자들을 일대일로 만나고 있다. 인터뷰 사이사이 배우들과 제작자들이 모인 채팅방에 오르는 관객 수를 확인한다. “일희일비, 울지는 않고 웃다가 긴장했다가 하고 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수익 몇억원이 아니라 관객 수로 집계를 따지는 게 나름 인간적인 것 같다.”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전작 <끝까지 간다> 관객 수(345만)까지 넘긴 다음날 17일 편안한 마음의 김 감독을 만났다. 여름 시장 <부산행> <인천상륙작전> <덕혜옹주>에 이어 ‘빅4’의 마지막으로 개봉한 <터널>은 17일까지 376만명을 모으며 박스오피스 1위를 이어가고 있다.

(※이 기사는 결말 등 일부 장면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을 알립니다.)

<터널>의 한 장면.
<터널>의 한 장면.

■장관은 그분이실까 많은 관객들은 영화 <터널>의 상황을 보며 2014년의 세월호 참사를 떠올린다. 구조본부가 차려지고 국회의원들은 사진 찍으러 출동하고, 기자는 터널에 갇힌 정수(하정우)에게 전화를 걸어 꼭 필요할 때 사용해야 할 배터리를 낭비시킨다. 공사 지연으로 인한 경제적인 계산을 하는 정부 관료에게 대경(119 구조대장, 오달수)은 “도룡뇽이 아니라, 저 안에 사람이 있다구요”라고 외친다. 정수가 트렁크에서 꺼내입은 트레이닝복은 선명한 노란색이다. 구하기 위해 내려가는 캡슐은 ‘다이빙벨’을 연상시킨다. 언론 시사 후 맨 처음에 나온 질문의 서두도 “감독님, 참 용감하십니다”였다.

감독은 “<터널>은 세월호 참사 전에 나온 원작을 기본으로 한 영화”라고 비유 자체에 선을 긋는다. “노란 트레이닝복은 주변이 회색이라 대조적으로 쓴 색깔이다. 촬영감독이 골랐다. 캡슐 구조는 칠레 광부 구조에 실제로 동원된 것을 참조했다.”

재난 상황에 대한 정치권과 언론의 대응 역시 상식적인 선에서 판단했다고 한다. “얼마 전에 간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상영을 했다. 유머 코드가 통할까 했는데 비슷한 장면에서 관객들이 웃더라. 관객들은 ‘여기도 똑같다’고 하더라. 정치인들이 사진 찍는 것까지.” 남녀로 특정되어 있지 않던 장관에 김해숙을 캐스팅하려고 하자, 제작 회의에서 “그건 위험할 것 같은데요”라는 말이 나왔다. “남성이 너무 많으니까 여성을 캐스팅하고 싶었다. “누구, 나?” 하는 대사를 귀엽게 해줄 사람이 필요”해서 밀고 나갔다. “시나리오 쓰는 상황에서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는데, 제 무의식이 어떤 줄은 모르겠다. 디엔에이에 박혀 있었는지는.”

<터널>의 한 장면.
<터널>의 한 장면.

■왜 한 명이었을까 <터널>은 한 명의 생존기를 다룬다. 완공 직후의 터널이기 때문에 교통량이 적고 사고를 당한 사람은 정수 외에 한 명이 더 있다. ‘인간 한 명에 대한 관찰’이라는 점은 전작 <끝까지 간다>에서도 비슷하다. 건수(이선균)가 교통사고를 낸 뒤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눈 깜빡이지 않고 ‘끝까지 지켜본다’. “의도한 건 아닌데, 그런 유사성이 있더라. 의도적인 상황에 던져놓고 어떻게 지내게 될까, 하는 게 다음을 궁금하게 만드는 요소인 것 같다. 그 인물을 가치 탐구하면서, 관객들이 전혀 모르는 인물에 서서히 동화되어가게 만드는 방식을 좋아하는 것 같다.”

블록버스터에서 ‘한 명’의 생존기는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는 설정이기도 하다. “묻고 싶었던 것이 생명의 무게이기 때문이다.” ‘생명은 우주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상투어를 실험해보았다는 말이다. “‘그렇게 돈을 들여서 구해야 하는가’라는 구조 딜레마에서, 한 명이라는 장치는 생명을 대하는 민낯을 바라보게 한다. 한쪽에 생명을 놓으면 다른 쪽으로 기울지 않아야 하는데, 많은 이들이 이것저것을 놓아보면서 그쪽으로 기울어간다.”

<터널> 촬영 현장에서 모니터를 보고 있는 하정우와 김성훈 감독.
<터널> 촬영 현장에서 모니터를 보고 있는 하정우와 김성훈 감독.

■그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나 정수는 하염없이 낙천적인 사람이다. 강아지에게 물을 나눠먹이며 유머러스하게 윽박지른다. 심각한 상황인데 웃음 나오는 요소가 곳곳이다. 무너지는 틈을 막기 위해서 차 앞 의자의 머리받이를 빼내는데, 머리받이 연결부위가 빼도 빼도 나온다. 대경은 첫 통화를 하며 펼친 설계도는 대원이 전화기를 치우면서 말려버리고 만다. 많은 이들이 “그 상황에서 나오는 웃음이 불편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한 명이 들어간 작은 공간에서 분투하는 이야기인데, 유머는 그 무겁고 짓눌리는 상황을 2시간 넘게 끌고 가는 방법이다. 유머는 쇠고기의 마블링처럼, 퍽퍽한 고기를 목넘김이 좋게 만든다.”

■작업반장을 왜 죽였나 정수의 아내 세현(배두나)은 정수를 구조하기 위한 현장에서 식사준비를 돕는다. 달걀후라이를 나눠주는데, 큰비에 천막이 무너지면서 최반장(정석용)의 달걀후라이가 바닥에 떨어진다. 최반장은 “먹을 수 있다”며 바닥에 떨어진 후라이를 주워서 먹는다. <터널>은 ‘공감’에 대해서 사려깊게 다룬다. 세현은 밥 뚜껑을 열었다가 바로 덮고 만다. 구조대장 대경(오달수)은 자신의 오줌을 먹어본다. 정수(하정우)는 물을 나눠달라는 미나(남지현)에게 “그럼 드려야죠”라고 말한다. 그런데 끝까지 ‘생명의 귀중함’을 믿고 그의 생존을 지지하던 최반장은 어이없는 죽음을 당하고 만다. <끝까지 간다>에서 ‘정의’를 이야기하던 형사의 죽음과 비슷한 상황이다. 가장 잔인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나도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세현이 공사 재개를 위한 동의서에 사인을 하기 위해서는, 그에 준하는 상황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감독은 원작 소설과는 다르게 영화의 결론을 내렸다. “소설 결론을 보고 많이 울었는데, 그렇게 영화로는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영화 내내 아파할 자신이 없었다. 영화는 가짜긴 하나 배우도 울고 관객도 마음 아픈 것은 감당이 안 됐다. 어떤 상황에 있든, 영화를 보는 이들이 보고 나서 위로를 받았으면 한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사진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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