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비에스> 시사 프로그램 <60분>의 프로듀서 메리 메이프스의 실화를 다룬 <트루스>에서 메이프스를 연기한 케이트 블랑쳇과 앵커 댄 래더를 연기한 로버트 레드퍼드. 영화사 오원 제공
“2004년 9월9일 아침 나는 웃으면서 깨어났다. 그날 조지 부시의 병역에 관한 <60분>이 방영된 참이었다. (…) 하지만 그날 저녁 모든 것이 변했다. 그달의 마지막에는 나는 일을 관두고 조사받는 처지에 놓였고, 그해의 마지막에는 <시비에스> 뉴스에서의 경력이 끝났다.” 영화 <트루스>는 위의 문장으로 시작하는 메리 메이프스의 책 <진실과 의무: 언론, 대통령 그리고 권력의 특권>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방송 프로듀서 25년 경력을 끝장낸 사건을 따라간다. <시비에스>(CBS)의 시사프로그램 <60분>의 간판 앵커 댄 래더가 이 사건 후, 대통령에 재선된 조지 부시의 취임식 전에 퇴직했기 때문에 이 사건은 ‘래더 게이트’로 불리기도 한다.
메리 메이프스(케이트 블랑쳇)는 <60분>의 베테랑 프로듀서다. 그는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포로수용소에서의 미군의 포로 학대 사진을 공개해, 전세계에 충격을 던져준 <60분> 프로젝트를 막 마친 참이다(이후 <시비에스>는 이 방송으로 피버디 상을 수상한다). 다음 시즌 프로젝트는 부시의 병역 특혜를 폭로하는 것이었다. 뉴스 본부에서도 서둘러서 조사를 하라고 독려했다. 부시는 재임기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으나 그 자신의 병역에 대해서는 의문 투성이였다. 당시 부시의 대선 경쟁자인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존 케리는 베트남전쟁에 참여했고 훈장을 여러 개나 받았기에 여러모로 비교되고 있었다.
부시는 베트남 전쟁 당시 텍사스 주방위군 공군 조종사로 입대했다. 공군에는 텍사스의 유력한 집안의 자제들이 다 모여 있었다. 메이프스 팀의 질문은 세 가지였다. 베트남 전쟁을 피하려 했을까. 누가 부시를 방위군에 넣어줬을까. 병역을 제대로 이행했을까. 부시는 입대 때 해외 복무를 원하느냐는 설문에서 ‘아니다’에 체크했다. 부시를 공군에 들어가도록 도움을 주었다고 연설하는 텍사스주 의원이 나타났다. 병역 중 1년간은 근무기록이 없었다. 그의 나태한 근무를 증거할 만한 ‘메모’를 한 퇴역군인이 들고 왔다.
미국 <시비에스> 시사 프로그램 <60분>의 프로듀서 메리 메이프스의 실화를 다룬 <트루스>에서 ‘부시 병역 특혜 추적’ 팀이 모니터를 보고 있다. 영화사 오원 제공
‘대통령의 병역 의혹’ 편이 방영된 뒤 보수진영의 블로거가 퇴역군인이 들고 온 메모가 컴퓨터 ‘워드프로세서’로 작성되었다는 의문을 제기했다. 경영진은 방어적인 태도로 시종일관한다. 퇴역 군인을 공개하며 그의 잘못으로 몰아가기를 원하더니 이후 결국 사과방송을 낸다. 그리고 메이프스 팀은 이 프로그램이 ‘공정하게’ 취재되었는지에 관한 내부조사를 받게 된다.
영화는 당시 ‘시비에스에 대한 거액의 세금 감면’ 여부가 걸린 법안 통과에 목을 매는 시비에스 경연진의 이해관계를 이 내부 감찰의 진정한 배후로 지목한다. 그러면서 영화는 ‘대통령 병역 특혜 사건’이 ‘문서 조작 사건’으로 변질되어가는 상황, 메이프스에게 가해지는 네티즌들의 악플, 연성화되어가는 뉴스 등을 비춘다. 마치 ‘한국 사회’를 보는 듯한 기시감을 안긴다.
이번에 미 공화당의 대선 후보가 된 트럼프에 비하면 부시는 양반인지도 모른다. 트럼프는 반항적인 성격을 고치려는 부모의 뜻에 따라 뉴욕군사학교(고교 과정)에 입학했지만, 대학시절 4차례의 병역 연기를 통해 베트남 전쟁을 피했다. 트럼프의 병역 기피 의혹에 대한 미국 언론의 심층보도가 이어지지 않는 배경에 <트루스>의 현실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디악> <스파이더맨3>의 각본을 쓴 제임스 밴더빌트의 감독 데뷔작이다. 25일 개봉.
구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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