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의 한국 여름영화 <부산행> <인천상륙작전> <덕혜옹주> <터널> 포스터. 각 영화사 제공
“승자는 더위다.”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았다. 21일의 폭염, 11일의 폭염지속일, 28일의 열대야, 14일의 열대야 지속일. 입추가 지났는데도 가시지 않는 더위, 1994년 이래 가장 더운 올 여름, 극장 관객 수 역시 최고를 기록했다.
7월20일부터 순차로 개봉한 이른바 ‘한국영화 빅4’ <부산행> <인천상륙작전> <덕혜옹주> <터널>은 모두 400만을 넘기며 어떤 여름보다도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 <부산행>(7월20일 개봉)은 8월21일까지 1122만명, <인천상륙작전>(7월27일 개봉)은 676만명, <덕혜옹주>(8월3일 개봉)는 484만명, <터널>(8월10일 개봉)은 508만명을 동원했다. ‘빅4’의 관객수는 2790만명에 이른다. 아직까지 관객 수가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어 3천만까지도 예상된다. <암살> <베테랑> 등 ‘쌍 천만’ 영화가 지난해 여름(7월22일~8월23일) 불러들인 관객 수 2063만명이나, 한국영화가 최대 관객(1억2729만명)을 모은 2013년 개봉작 4편(<설국열차> <더 테러 라이브> <감기> <숨바꼭질>)의 여름(7월24일~8월25일) 성적 2098만명을 웃돈다. 다만 <명량>이 1600만명을 끌어들이고 <해적> <군도> <해무>가 가세했던 2014년 여름(7월23일~8월24일) 관객(2833만명)보다는 적다.
외화는 8월21일 기준 <제이슨 본> 279만명, <마이펫의 이중생활> 224만명, <수어사이드 스쿼드> 188만명, <나우 유 씨 미2> 310만명 등으로 집계됐다. 올 상반기 관객이 0.5% 감소하며 ‘보릿고개’를 겪은 영화계가 이번 여름의 선전으로 올해 관람 연인원 기록을 넘어서는 대반전을 이룰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 더우니 극장 갈까? 김형호 영화시장 분석가는 더울 때 영화관을 찾는 사람이 많았다고 이야기한다. 6월과 7월 기온과 관객 수의 상관 관계를 분석해보니, 32도 이상일 때는 109만명, 25도 이하일 때는 60만명으로 극단적으로 갈렸다. 온도가 29도 이상이거나 월평균보다 4도 높고 불쾌지수까지 75를 넘는 평일에는 영화관객이 직전 주보다 급증했다.
빅데이터 분석업체 다음소프트가 올 6월1일부터 8월15일까지 블로그(2866만건)와 트위터(7억1740만건)를 분석한 결과 ‘에어컨’과 ‘영화관’은 큰 상관관계를 보였다. ‘영화관’ 언급량과 ‘기온’ 역시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일평균 기온이 26도 이상일 때 ‘영화관’을 언급한 횟수는 평균 502회였다.
■ 20대가 키워드로·반전 없는 흥행 이용철 영화평론가는 올해 ‘빅4’가 “여성, 고연령층, 사회비판, 장르 등 여러 요소들이 다르게 포진해 관객들을 고루 모을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시지브이 집계 결과 <덕혜옹주>는 여성 비율이 66%로 가장 높고(<인천상륙작전> 56.3%, <터널> 59.2%, <부산행> 59.0%), <인천상륙작전>은 40대의 비율이 30.5%(<덕혜옹주> 27.2%, <터널> 23.9%, <부산행> 23.8%)다. <비슷한 키워드 영화들이 경쟁을 벌였던 2014년이나 2015년에 비해 고루 관객을 나눠가졌다.
그러므로 올 여름 시장은 ‘쉬운 선택을 한 시장’이기도 하다. 김형호 분석가는 “4대 배급사가 내놓은 영화 4편에 관객들이 반전 없이 반응했다”고 말했다.
다만 20대가 주도한 시장이라는 점은 특이점으로 꼽힌다. 이전 30~40대가 주도하던 것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부산행>의 경우 중장년층의 취향과 거리가 있는 ‘좀비물’인데도 20대 관객의 주도로 ‘천만’을 기록했다. 김 분석가는 주머니가 가벼워진 20대가 ‘상대적으로 싼 여가거리’를 찾아나섰기 때문일 것으로 분석했다. 빅4 영화의 20대 비율은 <부산행> <인천상륙작전> <덕혜옹주> <터널> 각각 40.7%, 36.3%, 40.9%, 42.1%였다.
■ 가을에 한 편 더 터질 수도 작품성보다 오락성에 승부를 거는 여름시장에서 ‘만족도’는 높지 않은 편이다. 김형호 분석가는 “관객들의 만족도가 낮아서, 갈증을 느끼는 관객들이 가을에 괜찮은 영화가 나오면 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엔 여름 영화 <베테랑>과 <암살>이 1년을 통털어 가장 높은 수준의 만족도를 기록했지만, 올해에는 상대적으로 그에 못 미친다는 것이다. 비슷하게 외화에서도 아직 잠재 관객들이 남아 있다. 여름 외화 개봉작들이 기대에 못 미치면서 외화 선호 관객들이 아직 외화를 주시하고 있다는 얘기다.
구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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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에도 1위는 여름 영화
여름시장이 최고 성수기로 등극한 것은 10여년 된 일이다. 2006년 <괴물>을 시작으로 근 10년간 개봉 영화 1위를 기록한 것은 2008년 <과속스캔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름 개봉작이다. 1천만 관객을 기록한 영화 중 여름 이외 개봉작은 2012년 <광해>(9월13일 개봉)가 유일하다.
2000년대 초반에는 최고 흥행작에 추석 시즌(2002년 <가문의 영광>), 연말(2003년 <실미도>, 2005년 <왕의 남자>) 등이 섞여 있었다. 1990년대 외화들이 선전하던 시기에는 여름 개봉 영화들이 1위를 기록하기도 했는데, 가장 더웠던 여름으로 기억되는 1994년도 그렇다. 그해 최고 흥행작은 7월9일 개봉한 <라이온 킹>(7월9일), 2위는 8월13일 개봉한 <트루 라이즈>다. 1993년 6월 개봉한 <클리프 행어>가 7월 <쥬라기 공원>보다 앞섰고, 1995년 6월 개봉한 <다이하드3>, 2월 개봉한 <레옹>이 1, 2위를 차지한 것을 보면 ‘더운 여름’이 주는 효과도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