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무어의 <다음 침공은 어디?>는 성조기를 들고 각 나라를 ‘침공’하여 미국에는 없는 복지 제도를 빼앗아오는 다큐멘터리다. 판시네마 제공
마이클 무어가 순해졌다.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인 것 같다. 오는 8일 개봉하는 그의 신작 다큐엔 <다음 침공은 어디?>(Where to Invade Next?)라는 ‘공격적인 제목’이 붙었지만, 실제 뜻은 이렇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나라들을 침공했지만 이겨본 적이 없다. 군인들은 휴식을 취하고 나를 파견하는 것은 어떨까?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빼앗아 돌아오겠다며, 무어는 성조기를 들고 각 나라를 향해 ‘진군’한다.
그가 가져오고자 하는 것은 이탈리아의 휴가제도, 프랑스의 학교 급식, 핀란드의 교육, 슬로베니아의 대학입학등록금, 독일의 기업 복지와 노사관계, 포르투갈의 마약 단속 제도, 노르웨이의 감옥 제도, 이슬람 국가이지만 여성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한 튀니지의 제도, 아이슬란드의 양성평등 등이다.
프랑스의 초등학교 식당에서 마이클 무어는 학생들의 식탁에 앉아 급식을 받는다. 카레소스와 생크림을 올린 가리비를 전채로 하여 쿠스쿠스, 치즈, 후식 등이 나오는 코스 요리다. 아이들은 정수기의 물을 수시로 먹는데, 학교에는 음료수 자판기가 아예 없다. 일부러 콜라를 식탁 위에 올려본다. 아이들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다. “햄버거는 어때요?” 급식 요리사는 버거를 단 한 번도 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수업료 비싼 강남의 국제학교 정도에 해당하는 학교 아닐까? 코스 요리가 나오는 식당은 가장 가난한 지역의 공립학교다.
마이클 무어가 <다음 침공은 어디?>에서 자판기가 없는 학교에 콜라를 들고 와서 아이들에게 나눠 먹자고 제안하고 있다. <다음 침공은 어디?>는 세계 각국의 복지 제도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판시네마 제공
“숙제가 없어요”(학생), “아이들이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언제 행복하겠어요”(교사)라고 말하는 핀란드도 놀라움을 주기는 마찬가지다. 포르투갈은 마약을 해도 전혀 단속하지 않는다. 단속을 하지 않은 이후 마약 복용자가 오히려 줄어들었다. 노르웨이의 수감자는 제한된 지역 안에서 일반인과 똑같은 삶을 산다. 살인자도 부엌에서 칼을 사용할 수 있다.
“저희가 정복했으니 이 제도를 가져가겠습니다”라며 ‘항복’을 받아내는 형식도 재미있지만 취재 인터뷰에서도 유머를 잊지 않는다. 슬로베니아에 알파벳 중 더블유(W)가 없다는 것을 알자 “조지 더블유 부시 이후로 그렇게 된 건가요?”라고 능청스럽게 묻는다.
웃으면서 보기 시작했다가 웃을 수 없게 끝나는 게 그의 다큐멘터리의 특성이다. <다음 침공은 어디?>는 그간 만들어온 영화의 ‘해설편’이랄 수 있다.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 총기 소지 문제, <화씨 911>을 통해 조지 부시 정부 외교 정책의 허상, <식코>에서 의료 제도 문제, <자본주의: 어 러브 스토리>에서 금융 위기 등 각종 문제를 다뤄오면서 궁금했을 사회적 ‘대안’에 대한 탐구다.
단점이 없지 않다. 다큐멘터리의 엄정성보다는 웃음을 부르는 풍자에 치중하고, 극단적인 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아이슬란드 최초의 여성 대통령 이후 세계에서 수많은 여성 지도자가 탄생했다면서 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성 대통령의 탄생이 남녀 평등에 별다른 긍정적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한국인들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영화가 제기하는 모든 문제를 총체적으로 안고 있는 미국과 닮은 나라, 한국에 주는 울림은 크다.
영화의 결론은 ‘미국적’이다. 재소자 복지나 노동절 등이 모두 미국에서 시작되었다는 깨달음이다. 다른 나라를 침공할 필요가 없었다는 말이다. 미국보다 앞서 도입한 건강보험제도가 미국식 영리보험을 들여오려는 시도에 위협당하고, 학교 무상 급식을 거부하는 도지사가 목소리를 높이는 한국은 어떨까? 이곳이야말로 진지하게 ‘다음 침공’을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영화는 부른다.
구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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