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온라인 만화방이 붐빌 시간이다. 유료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에선 지난해 추석 연휴 평균 매출이 9월 주말 평균 매출보다 13% 올랐다. 2016년 2월 설 연휴 땐 평균 주말 매출보다 11% 늘었다. 보통 만화를 볼 때는 한 시리즈를 완독하면서 결제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그동안 보고 싶었던 만화를 몰아 보는 ‘정주행’이 가장 많은 시기라는 뜻이기도 하다.
시리즈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를 다시 본다는 뜻의 정주행 문화는 짧게 스쳐갔던 온라인 만화들에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다. 고전이 된 웹툰은 몰아 보기와 다시 보기를 반복하면서 처음 볼 때 놓쳤던 장면을 발견하거나 새로운 의미를 찾기도 한다. 연휴 5일을 바쳐 완독해도 아깝지 않은 정주행용 웹툰 3편을 골라봤다.
■ 다른 우주로의 초대 <덴마>
2010년 1월부터 연재를 시작한 양영순 작가 <덴마>는 에스에프물이 날아갈 수 있는 좌표의 극한을 보여주는 만화다. 소년만화 그림체로, 우주 택배회사에 몸을 담보로 잡히고 일하는 주인공 덴마와 초능력자 동료들, 슬플 때도 웃는 표정밖에는 짓지 못하는 이브, 우주 아이돌 민지, 해적선장 등 우주 생명체들의 비정하고 어두운 세계를 그려낸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누아르 만화라고도 할 수 있다. 네이버 웹툰에서 577화를 연재 중이지만 첫회와 최근 편이 이어지는 정교한 줄거리와 구성 덕분에 정주행하면 할수록 새로운 행성이 눈에 들어오는 만화이기도 하다.
다른 선택: <신의 탑> <레드 스톰> <덴마>가 넓은 세계를 미세하게 쪼개는 이야기라면 <신의 탑>은 좁은 공간을 넓히는 이야기다. 소녀 라헬을 구하기 위해 한층 한층 탑을 오르는 소년의 이야기는 곧 300회를 맞는다. <레드 스톰>도 <신의 탑>처럼 소년이 적들과 맞서 싸우면서 점점 강한 전사가 되어간다는 소년 무협만화의 전형적인 뼈대를 갖고 있다. 여기에 넓은 세계, 복잡한 정치, 공들인 작화로 <레드 스톰>의 전쟁터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 역사로 들어간 <김철수씨 이야기>
태어나자마자 쓰레기장에 버려진 뒤 온갖 일을 겪으며 잡초처럼 자라는 주인공 김철수의 운명은 어쩐지 만화와도 비슷하다. 2011년 다음 웹툰에서 시작한 이 만화는 10회 만에 조회수 부족으로 자진 하차한 뒤 작가가 소셜 펀딩을 받아 개인블로그에 연재해왔다. 지금은 레진코믹스에서 168화째를 연재하고 있다. 1980년 광주항쟁, 1987년 6월항쟁 등을 거쳐 인간혐오자가 되어가는 주인공의 모습, 자살·폭력·고문 등을 통해 인간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온 이 웹툰이 이토록 오래 호흡하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지금은 절대악과 인간 멸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한국 현대사에 밀착했던 초반부를 읽어야 김철수씨가 갖는 의미가 분명할 것이다.
다른 선택: <조선왕조실톡> 진짜 역사만화를 보고 싶다면 <조선왕조실톡>이다. 조선시대 인물들이 카톡을 한다는 설정으로 역사 이야기를 엮어내는 이 만화가 벌써 168회. 첫회 세종대왕으로 시작해 다시 태종 적 이야기로 돌아갔다가 지금은 조선 후기를 향해 가고 있는 이 만화는 일직선으로만 향하지 않고 여러 에피소드를 곱씹으며 천천히 역사 여행 중이다.
■ 소소하게 애틋하게 <어쿠스틱 라이프>
2010년 스무살 여자의 새해 결심 이야기로 시작한 <어쿠스틱 라이프>의 주인공들은 이제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았다. 다음 웹툰 댓글난엔 지금도 주인공들이 독자와 함께 자연스레 나이 먹어 가는 이 일상툰의 첫회를 찾아가 댓글을 다는 독자들이 꾸준하게 존재한다. 일기장 같은 역할을 하는 만화는 그림체와 소재도 조금씩 변했지만 공감을 부르는 주제의식은 그대로다.
다른 선택: <마음의 소리> <어쿠스틱 라이프>가 주로 여성 독자들의 공감을 받는 일상툰이라면 코믹 웹툰 <마음의 소리>엔 남자들의 공감이 높다. 작가의 학창 시절과 군대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올해로 10주년을 맞도록 단 한번도 쉬지 않고 연재됐다. 유행어나 짤방(재미있는 사진) 제조기로 불렸던 만큼 1054회를 정주행한다면 10년 동안의 유행어와 개그 경향까지 볼 수 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