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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아수라’ 김성수 감독 “무조건 리얼하게, 폭력의 폭력성 고발하고 싶어서”

등록 2016-10-03 15:11수정 2016-10-05 09:59

문제적 감독 인터뷰①
“우리시대의 어둠 투영된 도시 그리려 했다”
<아수라>가 김성수의 ‘인생영화’가 된 이유
“관객 불쾌하게 했더라도 파문 던져 뿌듯해”
유혈 낭자한 거리, 분단 상황에 대한 돌직구, 노인의 성과 죽음…. 스크린은 강렬했다. 자신의 영화 세계가 확고한 감독들이 이 가을 유난히 강렬한 직설의 언어로 돌아왔다. 표현과 주제의식 모두 문제작이라 부를 만한 작품을 내놓은 김성수(<아수라>), 김기덕(<그물>), 이재용(<죽여주는 여자>) 감독을 인터뷰했다. 3~5일에 걸쳐 매일 한명씩 차례로 내보낸다.

<아수라> 촬영현장의 정우성과 김성수 감독(오른쪽).  사나이픽처스 제공
<아수라> 촬영현장의 정우성과 김성수 감독(오른쪽). 사나이픽처스 제공

김성수 감독을 서울 종로구 팔판동 카페에서 만난 지난 9월30일 첫 질문은 “왜 <아수라>가 인생영화냐”였다.

김 감독이 자신의 ‘인생영화’라고 부른 <아수라>는 리얼한 폭력 묘사로 인해 찬반의 중심에 있다. “아니죠. 모두 다 싫어하죠.” 감독은 ‘호오가 분명하다’는 객관적인 표현에 대해서도 ‘다 안다’는 듯 이렇게 답했다. 영화가 나온 뒤의 반응이 감독에게는 새롭지 않다. 시나리오를 쓰고 나서 주위에 돌려보니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쓴 시나리오 중에 최악”, “시나리오는 잘 썼는데 이런 영화는 만들어질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딱 한 사람 사나이픽처스의 한재덕 대표가 “해보자”고 나섰다. “한 가지 방법을 알려드리죠. 캐스팅을 최고로 하십시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정우성은 “나중에 시나리오를 보고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지” 했다지만 감독은 그를 미리 주인공으로 낙점해놓았다. 감독이 함께 하고 싶었던 황정민도 자신의 배역에 욕심을 냈다. 곽도원도 “이전에는 극악스러운 모습에서 끝나지만 여기서는 민낯이 드러나서 참혹하게 무릎 꿇게 된다”는 설득에 마지막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내왔다. 주지훈과 정만식까지 한국의 연기파 배우들이 긴 설득 끝에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극의 분위기를 두고 이모개 촬영감독, 허명행 무술감독과 여러 번 회의를 했다. 모두 동의하고 들어간 것이 ‘리얼함’이다. “액션 영화는 폭력성을 거세하고 스펙터클을 강조한다. 그래서 칼에 찔려도 관객들은 낄낄거리게 된다. 주인공의 감정은 있지만 악당의 표정이나 인성은 묘사되지 않는다. 현실에서는 강자가 약자한테 일방적으로 당한다. 영화에서 우리가 납득할 만한 폭력이라고 하더라도 현실에서 폭력은 소름이 돋는다. 선과 악과 싸우는 쾌감이 아니라 폭력의 ‘폭력성’을 지적하고 고발하자, 폭력성을 전달하자, 편안하게 보게 하지 말고 피가 관객들에게 튀는 느낌이 전달되도록 하자.” 김 감독은 스태프들과 이런 결심을 했다고 말한다.

리얼함을 그리는 것은 영화의 관습을 벗어나는 작업이었다. 현장에서 일도 더 많아졌다. 영화 앞부분 작대기(김원해)를 때리는 장면. 보통이라면 때리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맞는 사람 뒤로 가거나 멀리서 잡는다. <아수라>에서는 카메라가 바짝 다가가서 정우성이 때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정우성의 팔을 그대로 닮은 팔을 만들고 김원해를 향해 직접 때리도록 했다. 소리도 그렇다. 사운드슈퍼바이저 김창섭은 소리를 다시 만들었다. 시원한 소리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만했으면 싶어서 고개를 돌리는 소리다. 현장이 동의가 되자, 이제는 김성수 감독이 “너무 불편해하지 않을까요”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그러면 스태프들이“콘셉트가 그러니까, 흔들리면 안 돼요”라고 했단다. 한재덕 대표도 “더 하시라”고 말해주었다. 기술시사 뒤 긴 폭력 장면을 짧게 잘라냈다가 다시 붙였다.

영화에선 배우들이 부딪히고 거짓말하며 서로가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김 감독은 촬영 전 배우들을 데리고 동선을 여러 번 리허설했다. “장례식장에서 박성배 시장(황정민)과 한도경(정우성)이 대면하는 장면 외에는 인물들이 쉼없이 움직인다.” 이런 식이다. “상대방에게 다가갔다가 등을 돌리면서 빛으로 들어가고,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때에 어둠 속으로 들어가서 눈이 안 보이게 했다가 말이 끝나면 눈동자가 보인다.” 영화의 마지막 장례식 장면에서는 아예 하루를 비워놓고 동선만을 연구했다. 마지막 장면인 장례식은 촬영에서도 마지막으로 찍었다. “그쯤 되니 배우들이 자신의 역에 빙의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이때 이렇게 하면’ 하고 리액션을 물으면 배우들이 ‘아마 이렇게 할 것이다’라며 제안을 해주었다.”

헌팅을 하며 ‘좁은 곳’을 찾아다녔다. 한도경은 작대기를 찾아 좁거나 사방이 막힌 곳을 쫓아다니고 사무실을 차려도 가장 좁은 골목 안에 있다. “세상의 끝이기 때문에 음습하고 비좁고 알 수 없고 굽어들어가는 길들을 찾았다. 창밖 풍경은 안 보이고, 창은 닫혀 있고 마지막 장면 장례식장은 아예 창이 없는 곳이다. 관객들이 폐소공포증·번열증(열이 나고 답답한 증세)을 느끼고 하고 싶었다.”

<아수라>는 등장인물의 동선을 섬세하게 연구한 장면이 빛난다. 마지막 싸움을 벌이는 장례식장에서는 움직임을 짜기 위해 하루 온종일을 비웠다. 사나이픽처스 제공
<아수라>는 등장인물의 동선을 섬세하게 연구한 장면이 빛난다. 마지막 싸움을 벌이는 장례식장에서는 움직임을 짜기 위해 하루 온종일을 비웠다. 사나이픽처스 제공
안남시에선 홍콩 느와르의 도시나, 멕시코 후아레즈 같은 무법도시가 연상된다. 감독은 안남시를 무국적의 가상도시로 만들고 싶었다. “시장에 들어가더라도 한국말이 아니라 외국어 대화를 넣어 낯설어지도록 했다. 음악도 터키 음악, 인도 음악을 썼다.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 사이 외국인, 노인, 부모가 맞벌이인 것 같은 아이들이 지나간다. 세상의 끝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여주려고 했다.” 대신 30억원어치의 마약 발견 같은 이질적으로 보이는 사건엔 ‘한국적 요소’가 관여한다. “한국에 유통한다기보다는 ‘캐리어’ 역할을 한다. 초기의 시나리오에는 마약 운반을 하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박성배가 ‘마진을 뗀다, 하지만 한국에는 한방울도 흘리지 않는다, 한국은 마약 청정국이니까’ 이런 대사를 한다. 그런데 마약청정국이라는 한국 역시 마약 청정국은 아니다.”

김성수 감독은 <무사>(2001년) 이후 오랜만에 연출한 <감기>(2013년)가 실패한 뒤 “하고 싶은 영화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자기가 정말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영화가 ‘범죄 액션 스릴러’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여지도 여기에 있었다. “보통의 액션 영화에는 착한 사람이 나쁜 사람에게 착한 폭력을 사용해 맞서서 나쁜 폭력에 승리하는 영화다. 그런데 그 응원, 몰입, 쾌감이 영화에서만 이뤄진다. 현실에서는 형사, 기자가 악당에 맞서면 백수되고 고생한다. 대공황 시대 시작된 필름 느와르는 2차대전 이후 미국의 그런 암울한 시대를 보여주었다. 이번에 우리시대의 어둠이 투영된 도시를 그려내야 되겠다 생각했다.”

청소년관람불가 영화로는 개봉일 흥행 기록을 세우고 현재 200만에 가까운 관객(2일까지 180만)을 모았다. “영화가 사람들한테 어떻게 다가갈지 모르겠다. 설령 관객을 불쾌하게 했더라도 영화 인식에 대한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면 됐다. 이 나이 먹도록 자신의 시나리오로 사람들 기쁘게 하기도, 시큰둥하게 하기도 한다는 것이 뿌듯하다. 기회가 왔을 때 사람들 귀에 달콤한 이야기를 속삭일 수도 있었지만,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아수라>가 내 인생영화인 이유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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