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럭키>(감독 이계벽)가 역대 코미디영화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천만 영화 <7번방의 선물>보다 400만 고지를 하루 먼저 넘어섰다. <럭키>에서 기억을 잃은 킬러 형욱(유해진)의 인생을 빌려 사는 재성을 연기한 이준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준은 현재 드라마 <캐리어를 끄는 여자>(문화방송 월화 밤 10시)를 찍고 있다. 그는 “사실상 생방이에요. 금방도 분량을 찍고 왔어요. 오늘 오전 찍은 게 오늘 밤에 방송이 나가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럭키>에서 유해진이 코미디를 한다면, 이준은 ‘사회물’ 담당이다. 재성의 월세는 밀리고 동네 가게에는 외상을 달아놓고 고지서가 쌓여간다. 첫 등장이 밧줄에 목을 매는 장면이다. 수염과 덥수룩한 머리가 클로즈업되어 관객을 놀라게 한다. “거울을 안 보고 연기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도 놀랐다.” 망가진 데는 전략이 있었다. “재성의 역에는 어두운 느낌이 많다. 관객에게 각인되는 중요한 신이 목을 매는 첫 장면과 마지막 액션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주얼에 올인했다.” 5㎏ 정도 살도 뺐다. “근육을 다 없앴다고 생각했는데 가슴 쪽에 근육이 남아 있더라.”
범죄자의 도덕성이 극의 마디마다 걸렸다. “재성은 어쩔 수 없이 범죄자다. 감독님과 이 범죄자의 감정선을 관객들에게 설득하는 방법은 귀엽게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댓글이 호불호가 갈리더라.” 그런 반응에 조금 실망한 듯하다. “제가 잘했는데 못했다고 할 리는 없을 것 같다.” 낙천적이고 무서울 것 없을 것 같은 젊은이 이준은 의외로 “상처를 쉽게 받는다”. 화장실에 자신을 가두고 ‘성찰’의 시간을 갖곤 한단다. “어제도 10분 갇혀 있었다.” 연기에 누구보다 적극적인 건 확실하다. 상처받을 게 분명한데도 댓글을 본다. “스스로 판단하는 건 어려우니까.”
이준은 아이돌 그룹 엠블랙으로 활동을 시작했지만 과감하게 접고 연기로 전향했다. 영화 <배우는 배우다>에서 바닥까지 추락한 배우, 드라마 <갑동이>에서 연쇄살인범,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마마보이 등 영화와 드라마, 힘을 준 연기와 힘 뺀 연기를 오가며 전방위로 활동했다. 연기 기간이 길어지면서 비슷한 배역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캐리어를 끄는 여자>에서는 <풍문으로 들었소>의 연장선에서 캐스팅이 들어왔다. 어떻게 다르게 할까 고민을 했지만 또 너무 다른 건 캐스팅한 쪽의 바람이 아니더라.” 그가 고민 끝에 택한 연기 전환의 전략은 ‘힘의 분할’이다.
재성 역에서는 강약을 줬다. 단역배우 재성이 거짓말이 들통나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므로 일생일대의 연기를 펼쳐야 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도 몰입했다. “너무 깊게 (몰입해서) 연기를 하는 바람에 장면들이 어두워서 거의 다 잘라내야 했다. 그런데 그 몰입이 마음에 든다.”
글·사진 구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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