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플릿>에 출연한 배우 유지태가 4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사진을 찍고 있다.
9일 개봉하는 영화 <스플릿>(감독 최국희)은 볼링이라는 특이한 소재를 들고 왔다. ‘퍼펙트 게임’ 기록을 가진 전 국가대표 철종(유지태)은 교통사고를 당한 뒤 인생의 막장에 있다. 낮에는 가짜 휘발유를 팔고 밤에는 희진(이정현)이 주선하는 ‘내기 볼링’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역시 전직 볼링선수인 두꺼비(정성화)는 희진의 아버지가 남긴 유산인 볼링장을 빼앗으려고 한다. 철종은 어느 날 볼링장에서, 아무렇게나 폼을 잡고 공을 던지는데 그게 그대로 스트라이크로 꽂히는 영훈(이다윗)을 만난다. 영훈은 지적 장애를 가진 소년이다. 철종은 영훈과 팀을 결성해 ‘내기 볼링’의 최강자가 된다. <스플릿> 첫 장면부터 끝 장면까지 거의 전 장면을 소화한 배우 유지태를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 속 유지태는 이전과 꽤나 달라 보인다. 더부룩한 파마머리에 아무렇게나 바지를 꿰입고 나온다. 교통사고로 다리에 보조기도 끼고 있다. 철종의 입에서는 반이 욕인 대사가 내뱉어진다. “웃음소리도 다르다. 이전에 정확한 발음, 신경을 많이 쓰면서 연기를 했다면 이번에는, 이게 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놀면서’ 하려고 했다.” 꼼꼼한 연기 분석을 주로 하던 그가 논다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레퍼런스 삼기도 했던 영화 <킹핀>의 우디 해럴슨을 보면 즐기면서 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있더라.”
그는 단편영화 여러 편을 연출한 감독답게 영화 예를 많이 들었다. “단편영화 <낮술>에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가 들어가 있다. <스모크> 2편인 <블루 인 더 페이스>에서도 즉흥연기가 빛을 발한다. 대극장의 연기와 소극장의 연기가 다르듯이, 모든 것이 꼼꼼한 영화와 빠른 전개의 영화 현장 연기 역시 다르다.” 현장의 분위기에 자신을 맞춰갔다는 말이다. “어떻게 하면 소통을 잘해나갈 것인가는 배우로서의 숙제다. 영화마다 드라마마다 감독들의 성향이 다르다. 제 경험이란 것도 감독에게 조력하는 정도로 활용하는 것이기에, 코멘트도 조심스럽게 하는 편이다.”
하다 보니 철종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철종을 “썰렁한 농담을 하고 남들이 속을 짐작할 수 없는 사람”으로 설정했다. “자유롭게 사는 사람 같다고 느꼈는데 안을 들여다보면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사람을 보여주려고 했다.”
‘역에 대한 몰두’는 다른 면에서 드러난다. 영화를 시작할 때는 볼링장에 한 번밖에 가본 적이 없었지만 촬영을 끝낼 때쯤에는 애버리지 180 정도의 점수를 얻는 실력이 되었다. “국가대표 1차 선발 기준이 190이라고 하더라. 스트라이크를 7번 해서 선수들이 만끽하는 짜릿함도 맛보았다.”
두꺼비는 “저능아에 다리병신”이라고 철종과 영훈 팀을 부르고 “인생 조진 새끼들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며 철종의 자존심을 건드린다. 사회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영화에 출연한 유지태는 스태프의 인건비를 잘 챙기는 감독으로도 이름이 나 있다. 지난 10월26일에는 검찰에 의해 기소된 이용관 전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의 1심 선고공판에 참석하기도 했다. 배우로서는 쉽지 않은 행보다. 하지만 그에 대한 말은 아꼈다.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려는 거죠”라고만 했다. 그의 인생 좌우명은 ‘신중하게 말하고 지키며 살자’라고 한다. “논란·분란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번에 내려가서도 그냥 있다 왔다. (배우가 나타났으니) 이야기가 되기는 할 테니까.”
글·사진 구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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