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치온더비치>를 만든 정가영 감독. 전 남친에게 자자고 조르는 여자를 직접 연기했다. 씨네21 오계옥 기자
추운 겨울의 한낮 아파트 단지, 가영(정가영)은 전 남자친구 정훈(김최용준)의 집에 무턱대고 찾아간다. 정훈은 전화를 받지 않지만 집 문은 열어준다. 도착하자마자 맥주를 찾던 가영은 정훈에게 자자고 조른다. 여자친구가 있는 정훈은 거절한다. 여자친구가 집으로 찾아오겠다는 전화를 걸어오자, 정훈은 가영을 쫓아낸다. 가영은 “이건 아닌 것 같아”라며 집으로 다시 쳐들어온다. 정훈은 감기에 걸린 척하며 여자친구에게 오지 말라고 한다.
8일 개봉하는 <비치온더비치>는 1990년생 정가영 감독이 주연도 한 영화다. ‘전도된 도발’을 보여주는 영화의 감독을 만났다. 자전적 요소가 얼마일지 궁금하다. 정 감독은 대학교를 두 개 때려친 점은 극 중 가영과 똑같지만 “거절하면 조르지 않을 것 같다”는 점에서는 다르다고 했다. “반씩 들어간 것 같아요. 극 중 가영이 좀더 두려움이 없어요. 좀더 순간순간을 살아가고요.”
<비치온더비치>는 홍상수 영화의 주제를 그대로 가져와 20대 여성의 입장에서 재현한다. 정훈은 “막말로 나하고 잘될 생각도 없잖아”라며 미련을 드러내고 가영은 옛날 이야기를 꺼내며 ‘다시 잘해볼 생각이 있다’는 미끼를 던져본다. 짧은 연주를 삽입하거나, 장면 나누기 방식, ‘하여간에’ ‘그랬다 글쎄’ 등의 입말을 사용한 장 제목, 흑백 영화로 찍은 화면 등으로도 홍상수 영화에 대한 친밀성을 드러낸다. 영화 속 대사를 통해 “홍상수 영화를 천만 관객 영화로 만드는 방법” 등을 거론하기도 한다. 우디 앨런, 리처드 싱클레이터 등 대사가 유독 많은 영화를 좋아하는 정 감독은 지상파 짝짓기 리얼리티쇼였던 <짝>도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챙겨보았단다. “짝을 찾는 과정에서 간절함이 살아 있다”는 이유다.
<비치온더비치>는 홍상수 영화의 주제인 ‘잘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를 20대 입장에서 재현한다. 로카픽처스 제공
<비치온더비치> 역시 화려한 장면 없이 대화가 영화를 끌고 간다. 가영과 정훈이 주변 친구가 겪은 황당한 사건 등에 관해 얘기를 나누는 최장 10분에 이르는 대화 컷은 두 배우의 자연스러운 연기에 의존한다. “리딩을 많이 했고 2~3번에 오케이를 냈다. 애드리브는 거의 없었다.” 시나리오 쓰는 것까지 두 달에 속전속결로 장편을 완성했다. 촬영감독의 집을 빌려 4일간 촬영했다. 제작비는 300만원(후반 작업은 영화진흥위원회 지원). “단편 10여 편을 찍고 장편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찍을 수 있는 규모 안에서 구상했다.” 이 단순한 조건이 만들어낸 것이 제한된 공간, 대사가 이끌어가는 연애 이야기다.
영화는 ‘끝내는 로맨틱하다’는 점에서 홍상수 영화와 다르다. 둘의 관계가 진전될 때 흘러나오는 안재욱의 ‘너의 곁에서’는 그런 로맨틱함의 절정이다.
정 감독은 10여 편의 단편영화에서도 20대의 경험을 살려 성에 관한 남녀의 무의식을 파고들었다. <혀의 미래>에선 첫키스를 앞둔 남녀가 키스를 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해서 알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양 가정사를 털어놓다가 난감해한다. <8월의 그리숨었수>는 <8월의 크리스마스>의 다림(심은하)과 정원(한석규) 대화 신에 자막을 넣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한석규가 그 목소리 그대로 외국어를 하는 것 같은데, 대사 파일을 거꾸로 돌려서라고 한다. 단편영화들은 유튜브에서 ‘가영정’을 검색하면 볼 수 있다.
구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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