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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여기서 만화보고 갈래?

등록 2017-01-23 11:00수정 2017-01-23 11:19

다시 온 ‘만화방 시대’
‘웹툰시대’ 다시 생겨나는 ‘만화카페’들
신촌·강남 등 주변에 만화카페 성업

퀴퀴함 대신 쾌적한 분위기에 ‘굴방’
라면은 기본…커피·맥주·가래떡구이
부모들, 자녀와 함께 만화책 데이트

중고책값 오르고 프랜차이즈도 늘어
독립형 만화방들 매출급감 위기 겪어

어느 일요일 아침 ㄱ씨는 문득 종이만화가 보고 싶었다. 그 생각이 들자 휴대폰 화면으로 보는 웹툰은 만화도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뒤가 궁금하면 후두둑 넘겨볼 수 있는 편리함, 한권 한권 쌓여가는 뿌듯함, 뒹굴거리며 보다가 잠드는 나태함, 먼저 읽기 시작한 시리즈를 다른 사람이 빠르게 따라붙을 때의 긴박감까지 느껴보고 싶었다. 주변 만화대여점을 검색해보았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서 찾을 수 없자 만화방을 검색해보았다. 없었다. 동네마다 하나씩 있던 그 많던 만화방은 다 사라져버렸단 말인가. 하지만 곧 답을 찾을 수 있었으니….

‘웹툰시대’, 종이만화에 대한 갈구를 껴안은 ‘만화카페’들이 2~3년 사이 우후죽순처럼 불어나고 있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밀집해 있는 신촌, 강남, 홍대 주변에서는 10여개의 만화카페를 찾을 수 있다. 만화카페 프랜차이즈 사업도 3~4개 업체가 난립할 정도로 성업 중이다. 건물 지하나 2층, 번화가의 골목 뒤 등에 둥지를 틀고 있는 점은 옛날의 만화방과 비슷하다. 하지만 퀴퀴한 냄새가 없는데다 플러스 알파가 있다. 운영하는 사람의 개성이 묻어나는 ‘복합공간’으로 방문하는 곳마다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이번 설에는 혼자라도 서러워만 말고 만화카페로 달려가볼 수도 있겠다.

만화카페 ‘즐거운 작당’의 메뉴 ‘스팸버터라이스’. 만화 <심야식당>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즐거운 작당’ 제공
만화카페 ‘즐거운 작당’의 메뉴 ‘스팸버터라이스’. 만화 <심야식당>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즐거운 작당’ 제공
■ 만화, 라면 그리고… 서울 대학로의 ‘연극보다(가) 만화’를 들어가면 신발장에서 키를 받아(신발장으로 수용인원을 제한한다) 카운터에 내면 번호표를 준다. 만화방처럼 만화카페도 시간당 요금제다. 만화를 고를 수 있는 시간 10분을 따로 주고, 시간당 요금은 2400원이다. 평일 종일권은 1만원, 휴일 종일권은 1만5천원이다. 카톡으로 예약을 할 수도 있다. 가게의 한쪽 벽면은 편하게 누워 볼 수 있는 굴방이 2층으로 마련되어 있다. 한쪽 편으로는 ‘정자세 정독’이나 컴퓨터 작업을 할 수 있는 테이블이 있고, 소파도 있다.

만화방에선 캔 음료수와 라면이 다였다면, 만화카페는 ‘맛있는 커피’가 기본이다. 간단하게 조리할 수 있는 먹거리들도 제공된다. 여기에 또 만화카페의 특색이 살아난다. ‘연극보다(가) 만화’에서는 컵라면과 치즈가래떡구이, 나초, 크로크무슈, 컵밥 등을 판다. 생맥주도 있다. 서울 서교동의 ‘즐거운 작당’에서는 만화 <심야식당>에서 모티브를 얻은 고양이맘마, 스팸버터라이스, 명란버터라이스 등을 판다. 라면도 컵라면이 아니라 끓여준다.

‘망원만방’의 분점인 서울 용산구 해방촌의 신흥만방에서는 ‘느린 만두’가 명물이다. ‘(이태원의 유명한 만두집인) 쟈니덤플링보다 만두도 더 크다’는 이용후기도 있다. 신촌의 피망과 토마토에서는 짜장면을 시켜 먹을 수 있다. 쥐포도 판다. ‘연남동 만화’에서는 맥주를 팔고 한 병당 한 시간 공짜다.

■ 마니악하거나 웹툰팬이거나 만화카페의 시작은 2014년 4월 서교동의 ‘즐거운 작당’이다. 대표인 김민정씨가 “학생 때 만화를 워낙 좋아해 즐겨 만화방을 가곤 했는데, 퇴근하고 나서 만화책을 접근하기에는 쾌적하지 않은 공간이었다. 서재이자 놀이터로 만들어보자고 만들었다”고 한다. 만화방이나 만화대여점 등이 사라져가던 즈음이라 “사업적으로 확신은 없었다. 취향이 있으신 분들이 오면 유지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굴방의 원조이기도 하다.

만화·그래픽 노블까지 3만5천권을 갖춰 만화카페 중에서는 라이브러리의 규모가 가장 크다. “나오는 신간은 대부분 산다. 공간의 한계 때문에 선택과 집중은 필요한데 무협소설, 성인만화보다는 그래픽노블, 일반 코믹스에 집중하고 있다.”

찾아오는 손님도 가게의 성격이 된다. “가끔씩 정리하다 보면 이런 책도 보셨네, 싶은 만화 마니아들이 많다. 3년 가까이 운영했지만 손을 타서 닳는 것 외에 책을 다들 깨끗하게 본다. 도난도 5건 정도밖에 없었다.” 손님들이 가장 많이 보는 만화책은 <슬램덩크>와 <원피스>다. “책이 닳아서 3번 정도 구입했다. 아마 어디서나 비슷할 것 같다.”

꼭 만화가 아니더라도 찾아오는 손님들도 있다. “만화 보시던 분이 어떤 때는 컴퓨터 들고 와서 작업을 하세요. 어디보다도 조용하다고 하시면서요.” 커피 한잔 시켜놓고 오래 앉아 있으면 눈치 보이는 커피숍에 비해 시간당 계산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고객들이 ‘당당하게’ 점유하는 게 강점이다.

출판사를 다니다가 2014년 말 ‘연극보다(가) 만화’를 시작한 박천복 사장 역시 만화에 대한 추억이 많다. “일요일마다 아내와 함께 집 가까이의 만화방을 가는 게 일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아내 제안인데, ‘우리 집에 손님을 초대한 것’ 같은 콘셉트”로 카페형 만화방을 구상했다. 워낙 만화 마니아여서 만화책을 구할 때 중고업자에게 리스트를 건넸다. ‘연극보다(가) 만화’의 특징은 “대학로 주변이다 보니까 젊은 사람들이 많고 웹툰 원작의 만화를 많이 본다”고 한다. 고객을 끄는 원천은 역시 콘텐츠라 믿는다. “호기심에서 온 사람을 재방문하게 하려면 볼만한 만화책을 갖춰야 한다.”

만화카페 ‘즐거운 작당’ 서재 밑으로 또 하나의 비밀 공간이 있다. ‘즐거운 작당’ 제공
만화카페 ‘즐거운 작당’ 서재 밑으로 또 하나의 비밀 공간이 있다. ‘즐거운 작당’ 제공
■ 프랜차이즈의 습격 아이엠에프(1997년) 이후 우후죽순처럼 늘어나 전국 2만여개에 달하던 만화방은 현재 1천여개 수준이다. 음식을 팔 경우 휴게 음식점, 술까지 파는 경우 일반 음식점, 대여까지 하는 경우 도서대여업 허가를 받기 때문에 ‘만화방’에 대한 통계는 확인 불가능하다. 다만 중고만화유통업체 애니팝 정상준 대표는 “황성 작가의 만화책은 전국 만화방에서 다 들여놓는다고 봐야 하는데 한 800권 정도 신작으로 입고된다”며 운영중인 전국 만화방 규모를 예상했다. 이런 만화방들도 새로운 기획을 찾아 변화하고 있다. 1천여개에 달하는 만화방이 있던 부산에도 지난해부터 만화카페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연극보다(가) 만화’의 벌집형 굴방. 방 형태가 프랜차이즈에서 활용되기도 했다. ‘연극보다(가) 만화’ 제공
‘연극보다(가) 만화’의 벌집형 굴방. 방 형태가 프랜차이즈에서 활용되기도 했다. ‘연극보다(가) 만화’ 제공
이런 지각변동의 선두에는 놀숲, 벌툰, 카툰공감 등 프랜차이즈 만화카페 업체가 있다. ‘프리미엄 카툰 앤 북카페’를 표방하는 놀숲은 2015년 11월 말 경기도 안산에 1호점을 낸 것을 시작으로 1년 만에 경기도 동탄에 100호점을 오픈하고 현재 130호점까지 확장했다. 400평 이상 규모를 가진 업장들도 많은데, 예전의 ‘찜질방’이 등장하며 노렸던 ‘복합적인 오락’을 제공한다. 리포트를 쓰는 학생, 잠이 부족한 청년, 데이트를 온 연인 등 ‘만화’와 딱히 관련 없이도 즐길 수 있는 ‘복합 공간’을 표방한다. 메뉴에서도 브런치나 피자나 파스타 등 본격 요리도 선보이고 있다. 20세기 말 ‘불건전함’의 딱지가 붙기도 했던 만화방의 이미지 또한 쇄신하려고 한다. 놀숲 쪽은 “맥주를 팔지 않고 미성년자 관람불가 만화도 갖춰놓지 않아 부모들이 키즈카페로 활용하기도 한다. 청소년을 데려다놓고 몇 시간 뒤 오는 식으로 이용하시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연극보다(가) 만화’는 만화카페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만화 콘텐츠’에 충실하다. ‘연극보다(가) 만화’ 제공
‘연극보다(가) 만화’는 만화카페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만화 콘텐츠’에 충실하다. ‘연극보다(가) 만화’ 제공
■ 빵집 프랜차이즈처럼? 프랜차이즈가 기존 만화방 상권 주변에 포진해 들어가면서 아이디어를 갖고 승부수를 던졌던 초기 만화카페 운영자들은 시름이 깊다. ‘즐거운 작당’ 김민정 대표는 “1분 거리에 만화카페가 3곳이 더 생겼다. 조개구이집, 찜닭집, 연어 무한 리필집 같은 존재가 된 게 아닐까”라고 말한다. 프랜차이즈의 인테리어가 이들 초기 만화카페를 본뜬 경우가 많아 ‘저작권’에 대한 문제도 제기된다.

‘연극보다(가) 만화’의 박 사장은 “주변의 만화카페도 그렇다 하고, 매출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나름의 개성으로 꾸려지던 만화카페 시장이 천편일률적인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프랜차이즈 만화카페는 소셜코머스 등을 통해 할인쿠폰을 뿌려 시장가격을 흔들기도 한다. 여러 면에서 빵집 프랜차이즈가 동네빵집을 위협하던 사례와 흡사하다.

박 사장은 중고만화의 가격 상승세 또한 예사롭지 않다고 했다. “만화를 구비할 즈음 1000원이었는데 지금은 2500~3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2년 사이 2~3배가 뛴 셈이다. 만화책 시장은 중고책을 기본으로 한다. 중고책은 한정돼 있는데 프랜차이즈는 개업해야 하니 가격이 뛰고 있다.”

애니팝 정 대표는 “만화카페 창업 붐은 지난해 여름이 고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3월 학기 시작과 함께 비수기가 되면, 콘텐츠를 갖추지 못한 프랜차이즈는 폐업 위기에 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사장은 “중고책을 가지고 개업하는 시장이라, 하나가 망하면 하나가 들어서는 구조다. 기존 독립형 만화카페나 만화방이 망하고 프랜차이즈가 들어서지 않을까”라고 우려했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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