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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종이와 연필로 그린 내 얘기, 앙굴렘은 ‘틀리지 않았다’ 말해줬다”

등록 2017-02-12 20:20수정 2017-02-12 20:52

[100℃] 앙굴렘국제만화축제 첫 수상 리얼리즘 만화가 앙꼬
프랑스 앙굴렘국제만화축제에서 ‘새로운 발견상’을 수상한 앙꼬(최경진)가 경기도 성남시 작업실 그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프랑스 앙굴렘국제만화축제에서 ‘새로운 발견상’을 수상한 앙꼬(최경진)가 경기도 성남시 작업실 그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중3 여학생 가출 그린 ‘나쁜 친구’로
최고 권위 만화축제에서 ‘새로운 발견상’
웹 연재 없이 책출판 방식 고수해
“친구들이 단종된 잉크 구해줬다”

앙꼬(최경진·34)의 작업실이 있는 경기도 성남시 하대원동의 건물 앞 골목에는 ‘최경진 앙굴렘 새로운 발견상 수상’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세계 최고 권위의 만화축제 앙굴렘국제만화축제에서는 1년간 프랑스에서 세 작품 이하를 출간한 신인에게 ‘새로운 발견상’을 시상한다. 축제는 지난 1월28일(현지시각) 만장일치로 앙꼬의 작품 <나쁜 친구>를 제44회의 주인공으로 뽑았다. 작품은 최고상인 황금야수상 후보에도 올랐다. 2012년 국내 출간된 <나쁜 친구>는 지난해 프랑스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앙꼬의 수상은 앙굴렘축제 전 분야를 통틀어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다. 6일 오후 작업실에서 앙꼬를 만났다.

앙꼬는 손님을 전기장판이 깔린 소파로 안내하고는 탁자 반대편에 외투를 입고 앉았다. 난방이 되지 않는 작업실에는 자전거, 기타 등 <삼십 살>(2013년)을 통해 사연이 알려진 물건들이 가득하다. <삼십 살>은 앙꼬가 <앙꼬의 그림일기> 이후로 스케치북에 그려온 일기 중 추린 것이다. “지금 쓰고 있는 라꾸라꾸 침대를 사기 전까지 집을 옆에 두고 1년 정도 야전침대에서 잤다. 야전침대를 두기 전까지는 사무실에서 노숙을 했다. 바닥이 너무 추울 땐 책상 위에서 잤다.” 부모님의 집은 5분 거리에 있다. 끔찍하게 많이도 그렸다. 어떤 날은 60시간 만화를 그리고 까무러치면, 전기장판에 데는데도 깨지 못하고 깊은 잠을 잤다.

<삼십 살>에는 <나쁜 친구> 취재기도 나온다. “비행 청소년에 관한 이야기여서 아이들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에 청소년 쉼터를 찾았다.”(84쪽) <나쁜 친구>는 앙꼬가 처음으로 자신을 떠나 ‘픽션’의 세계로 들어가보려고 한 만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쁜 친구>는 여전히 앙꼬의 이야기다.

제44회 프랑스 앙굴렘국제만화축제 새로운 발견상 수상작 앙꼬의 <나쁜 친구>. 창비 제공
제44회 프랑스 앙굴렘국제만화축제 새로운 발견상 수상작 앙꼬의 <나쁜 친구>. 창비 제공
10여년간 묵힌 이야기였다. “시나리오도 안 썼던 상태에서 하루아침에 갑자기 시작됐지만 10년이 걸린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야기들이 내 안에서 익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나쁜 친구>는 중학교 3학년 때 만난 ‘나쁜 친구’ 정애에 관한 이야기다. 남자친구에게 이별 통고를 받은 정애와 나(진주)는 무단 조퇴를 한다. 부모님께 맞는 것도 선생님께 맞는 것도 두려웠던 둘은 가출을 결심한다. 유흥업소에 나가는 정애 친구의 소개로 여관방에서 자며 노래방 도우미 출근을 한다. 노래방 도우미 첫날 무서워 도망쳐 나온 뒤 진주는, 일 나가는 정애를 배웅하며 여관에서 아무 일 안 하고 산다. 배웅 장면은 문 안에 선 현재의 ‘나’와 오버랩으로 묘사된다. 만화는 결국 ‘나’가 ‘나쁜 친구’라고 말한다.

<나쁜 친구>는 2007년의 충격적인 단편 ‘열아홉’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수업 중 선생님을 소재로 한 야한 만화를 그리다 걸렸을 때 “나 한 대밖에 안 맞았다”며 기뻐하던 철없던 소녀는 이렇게 말했다. “안 아픈 것은 나 혼자뿐이었다.”

<나쁜 친구>는 웹 연재 없이 전작 출판 형태로 나왔다. 2012년 ‘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수상했지만 대중의 반응은 미미했다. “애초 이 형식이 만화에 대한 몰입을 이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출판 뒤 이렇게 작품을 해도 누가 볼 것인가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정작 앙꼬의 데뷔작은 2003년 ‘딴지일보’에 웹툰 형식으로 연재한 <앙꼬의 그림일기>다. 이후 <앙꼬와 진돌이>를 인터넷 포털 야후에 연재했다. 강풀이 <일쌍다반사>를 시작하던 인터넷 연재 초창기 시절이었다.

빠르게 시대가 변했다. “펜하고 종이 쓰는 사람이 갑자기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문방구 어디나 있던 빠이롯트 잉크가 단종되었다. 친구들이 옛날 문방구를 찾아다니며 30개를 모아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걸로 먹고살 수가 없다.” <나쁜 친구>도 친구들이 사준 종이에 그렸다.

그래서 출판만화가 살아 있는 프랑스가 부럽다. 수상 뒤 앙굴렘 곳곳에서 <나쁜 친구>를 보는 사람들을 목격했다. “앙굴렘 수상 뒤 내가 틀린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위로를 받았다. 웹진의 연재 제안을 받았고 이제 결정 내려야 하는데….”

어쩌면 우리는 앙꼬의 만화를 더 오래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다림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그가 그리는 리얼리즘 만화는 진짜니까. “난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진짭니다!!”(<앙꼬의 그림일기 1>)

글·사진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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