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25일 서울 씨지브이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오후 2시부터 열리는 영화 관련 상품들을 판매하는 아카데미 기획전 플리마켓에 입장하기 위해 아침 9시부터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영화 수입·배급사, 디자인사, 블루레이 제작사 13곳이 참여해 아카데미 후보작들의 영화 포스터와 예술상품 등을 판매하는 이 행사엔 4시간 동안 700명이 다녀갔다. 지난해 연말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와 사당동 아트나인에서 열린 장터도 비슷했다. 영화사 그린나래미디어 임진희 대리는 “보통 100명 정도를 넘지 않았는데 갑자기 장터마다 최소 500명은 넘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했다.
씨지브이 아트하우스 극장팀 안현주 대리는 “2014년에도 비슷한 행사를 했는데 그때만 해도 포스터, 엽서, 전단지, 디브이디, 원작도서가 전부였다. 이번엔 머그컵과 배지는 기본이고 향초, 마스킹 테이프, 휴대폰 케이스 등 영화 이미지들을 활용한 상품 종류가 아주 다채로워졌다”고 했다. 2014년 영화 <타짜> 개봉 당시 주인공들의 얼굴을 새긴 화투를 나눠줬던 일 등이 종종 입에 오르내리지만 영화 시장에서 본격 굿즈가 성장한 계기로는 지난해 2월 개봉한 <캐롤>이 꼽힌다. 영화를 소재로 한 엽서, 디브이디, 머그컵 등이 모두 큰 인기를 얻었다. “캐롤은 뭘 해도 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영화에 대한 ‘팬심’이 2차 상품으로 연결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특별시사회에서 영화를 보면 주곤 했던 사은품을 돈 주고 사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어지면서 영화 굿즈 개발자의 손도 바빠졌다. 엽서, 전단지, 포스터, 에코백, 연필 등 5종 세트는 기본이고 요즘엔 마스킹 테이프가 유행이다. <빌리 엘리어트> <라우더 댄 밤즈> 등 최근 재개봉한 영화들의 이미지를 테이프로 만든 이 홍보제품들은 아기자기한 문구를 좋아하는 20대 여성들을 겨냥한 것이다.
뭐니뭐니해도 영화 굿즈의 시작은 영화 그 자체다. 지난여름 <터널>은 구조를 기다리는 영화 속 주인공에게 건네주고 싶은 생수, 비상식량, 손전등, 밴드 테이프 등 물건을 모은 ‘생존 키트’를 나눠줘 눈길을 끌었다. <스플릿>은 주인공 영훈이 좋아하는 간식거리를 모아 ‘영훈이팩’이라며 주고, <럭키>는 영화를 보러 가는 관객들에게 주인공이 밟고 미끄러졌던 비누를 나눠주기도 했다. 영화 <빅쇼트>는 돈을 보관하는 머니 클립과 2달러씩을 주기도 했다. 그보다 앞서 영화 <사냥>에선 영화 속 인물들이 들고 다니는 긴 총 모양으로 만든 볼펜을 나눠줬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루시드 드림>에선 자각몽을 소재로 한 영화답게 수면 안대를 제작했다. 이 안대 겉면엔 고수의 눈이 그려져 있다. 29일 개봉하는 <원라인>은 제작보고회 때 영화 속 가상의 회사 ‘원라인 컴퍼니’에 다니는 민 대리, 송 차장 등 주인공들의 이름이 새겨진 가짜 명함을 나눠줬다.
영화 <인셉션>에서 팽이가 돌아가며 주인공을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키듯 영화 굿즈는 관객들을 영화 속으로 되돌리는 ‘토템’ 같은 물건이다. 재개봉 영화들은 영화에 새로운 이미지를 입히기 위해 홍보물 제작에 좀더 공을 들인다. 영화 속 아름다운 이미지를 활용한 <빌리 엘리어트>의 노트, 마스킹 테이프 등은 영화 굿즈 히트 상품으로 꼽힌다. <카페 소사이어티>는 재개봉하면서 영화를 보고 나면 술 한잔이 생각날 관객들을 위해 위스키잔을 줬다. 해외에서 제작된 외화 홍보용품까지 포함하면 영화 굿즈의 세계는 좀더 넓어진다. <퍼스널 쇼퍼>는 파우치에 열쇠고리와 에세이북을 담아서 나눠줬고, 얼마 전 개봉한 <로건>은 이벤트를 통해 군번줄 모양의 열쇠고리와 울버린의 무기인 클로를 나눠주며 영화 굿즈 수집가들을 홀리고 있다. 굿즈에서 슈퍼 히어로를 빼놓을 순 없다. 씨지브이에선 영화 속 이미지를 활용한 포토티켓 코너를 운영하는데 지난해 가장 많이 선택한 영화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다. <데드풀>은 마스크와 푹 덮어쓰는 모자, 겉옷 등 코스프레를 부르는 제품들을 함께 내놓았다. <폭스캐처> 티셔츠는 우리나라 배우들도 종종 입고 다니는 모습이 발견되면서 화제가 됐다.
적게는 10만, 많게는 1000만을 노리는 영화 시장에서 소수 관객을 대상으로 한 홍보물이 하는 역할은 적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은 영화를 기대하고, 오래 기억하게 하는 역할을 하면서 영화의 수명을 늘린다. 영화 굿즈 제작 회사 ‘토토의 수집품’ 유진아 실장은 “지금은 굿즈를 트렌드에 민감한 10~20대를 겨냥해 만든다. 굿즈는 영화 예고편 역할을 한다. 이것이 영화와 맞아떨어지고 재밌다 싶으면 관객들이 사진을 찍어 에스엔에스에 올리는 1인미디어 역할을 한다”고 전했다. 유 실장은 또 “요즘 예술영화들은 소장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굿즈에 영화 제목이나 개봉이란 말을 아예 안 넣고 만들기도 한다. <캐롤> 같은 영화는 지금까지도 관련 굿즈의 인기가 높다”고 전했다. 어떤 굿즈는 영화보다 오래간다.
남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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