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피겨스>에서 흑인 여성들이 일하는 서쪽 전산원. 제일 왼쪽 안경 쓴 이가 타라지 헨슨(캐서린 존슨 역), 가운데 팔짱 낀 이가 옥타비아 스펜서(도로시 본 역), 책상에 앉은 이가 저넬 모네이(메리 잭슨 역).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백인이 재즈를 구했고(<라라랜드>) 흑인이 나사(미 항공우주국·NASA)를 구했다(<히든 피겨스>).” 지난달 26일 있었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사회를 맡았던 지미 키멀의 말이다. 정확히 말하면 ‘흑인 여성’이다. <히든 피겨스>는 지난해 영화계를 관통한 ‘흑인’과 ‘여성’을 키워드로 가져온 영화다. 감상 뒤 여성이라면 더욱이 흑인이라면 제대로 ‘혈기’로 가득 차게 된다. 영화 <펜스>로 아카데미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비올라 데이비스의 “죽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한때 큰 꿈을 꿨던, 그렇지만 이루지는 못한 사람들을 생각한다”는 말처럼 고난의 역사가 주는 뭉클함이다.
영화 끝에 실존 인물과 배우를 함께 보여주는 대로 중요 등장인물 셋은 모두 실존 인물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이 영화의 세 배우 타라지 헨슨(캐서린 존슨 역), 옥타비아 스펜서(도로시 본 역), 저넬 모네이(메리 잭슨 역)가 휠체어를 탄 ‘캐서린 존슨’과 함께 나와 감동을 자아냈다.
1960년대 철저한 흑백/남녀 계급 분리는 ‘과학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사의 랭글리 센터가 있던 버지니아주 햄프턴에는 과학자들의 계산을 보좌하는 ‘인간 컴퓨터’ 계산원이 있었다. 주로 여성들이 계산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산원은 백인 여성이 있는 동쪽과 흑인 여성이 있는 서쪽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캐서린, 도로시, 메리는 서쪽의 계산원이다.
캐서린은 어린 시절부터 영특한 수학적 재능을 가지고 월반을 거듭한 수학 천재다. 미사일의 궤적을 계산할 계산원이 필요하자 차출되어 간다. 우주 임무 그룹에는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남성들이 가득하다. 그곳에서 캐서린은 커피도 따로 마셔야 하고, 유색인종 화장실로 먼 길을 뛰어가야 한다.
메리는 엔지니어팀으로 차출되어 나가고 능력을 인정받아 정식으로 공부를 하라는 권유를 받는다. 수업을 받을 수 있는 곳에서는 흑인을 받아주지 않고 메리는 법원에 청원서를 제출한다. 서쪽 전산원의 책임자인 도로시는 능력 있는 상관이지만 승진의 기회는 오지 않는다. 아이비엠 컴퓨터가 들어오고, 이것이 미래에 계산원을 대신할 것임을 간파한 도로시는 흑인 출입금지의 도서관으로 가서 프로그래밍 언어 책을 훔친다.
센터장(케빈 코스트너)은 캐서린이 ‘투명인간’인 듯 그녀 앞에서 러시아(소련)에 로켓 경쟁에서 뒤졌다는 일장 훈시를 하고 “오늘부터 야근이니 ‘아내’에게 못 들어간다고 전화하라”는 말을 한다. ‘남성연대’와 ‘흑백차별’을 동시에 목도하는 장면이다. 공학자의 꿈을 꾸라는 말에 메리가 “백인 남성이었다면 벌써 공학자가 되어 있겠죠”라고 답하거나, 왜 ‘나는 주임이 안 되느냐’는 도로시의 말에 백인 전산원 주임이 “그러려니 해야죠”라고 말하는 장면 등은 관객을 제대로 ‘선동’한다.
칼텍의 과학 괴짜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 <빅뱅이론>의 짐 파슨스(셸던 쿠퍼 역)가 캐서린을 ‘곁눈질’하며 차별하는 상사 역을 맡았고, <문라이트>의 마약상 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은 마허샬라 알리가 캐서린을 사랑하는 퇴역군인으로 나온다. 23일 개봉.
구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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