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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여성의 눈으로, 아니 새로운 눈으로

등록 2017-03-07 09:48수정 2017-03-07 10:42

피로한 관계 파고든 서정의 깊이
‘싱글라이더’ 이주영 감독

여자가 기록한 할머니 이야기
‘눈길’ 이나정 감독

소모품 전락 약자 ‘관찰 스릴러’
‘해빙’ 이수연 감독
<싱글라이더> 이주영 감독. 남은주 기자
<싱글라이더> 이주영 감독. 남은주 기자

<싱글라이더> 이주영, <눈길> 이나정, <해빙> 이수연 등 여자 감독 3명의 영화가 비슷한 시기 개봉했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이들 영화에서 공통의 언어를 꼽고 그것을 여성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맞지 않는다. 그러나 남자 감독이 다수인 영화에서 세 감독이 각기 찾아낸 새로운 어법들은 분명 있다. 역사, 스릴러, 드라마 등 각자의 장르를 더 새롭게 만들 그들의 작업세계를 살펴봤다.

■ ‘서정의 깊이’ 이주영 감독 영화 <싱글라이더> 개봉 전 “반전이 결정적인 영화가 나온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러나 영화는 반전 스릴러보다는 피로한 한국 사회에서 달아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안내 책자며 로드무비에 가까웠다. 이주영 감독은 “편집의 기교로 뭔가를 가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 인간이 어떻게 비극적인 운명을 맞는지 전부 보여주고 싶었다”며 자신의 영화를 반전으로 보는 것에 반대했다.

<싱글라이더>에서 증권사 지점장으로 일하는 재훈(이병헌)은 확신에 찬 인물이다. 고객들에게 투자를 권할 때나 아내 수진(공효진)과 아들을 호주로 유학 보낼 때도 효율성을 정확히 잴 줄 알았다. 그러나 부실채권 문제가 터지고 시드니로 가서 아내와 아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면서 확신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는 감독의 마음과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한창 회사를 다닐 땐 풍족하고 안정적으로 사는 것에 대한 열망이 컸다. 의도치 않게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서 너무 힘들었다. 소속감이 없어지고 상처받은 느낌? 그때부터 신변을 정리하는 게 습관이 됐다.”

광고감독으로 일했던 그는 2009년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사에 진학해 영화로 길을 바꿨다. “돌이키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어.” 영화에서 재훈은 탄식한다. “이 영화를 보는 당신과 우리는 후회하지 맙시다.” <싱글라이더>를 통해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는 감독은 영화감독으로 직업을 바꾸면서 즐겁지 않은 일은 모두 치워버리고, 여행을 다니는 것이 취미이자 목표인 사람이 됐다. <싱글라이더>는 그가 2013년 한예종 졸업생 장편시나리오 개발 공모전에 제출했던 것을 이창동 감독의 지도를 받아 완성한 작품이다.

이병헌이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출연을 결정하고 하정우가 제작을 맡은데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의 2번째 국내 제작 영화이기도 하다. 이병헌이 끌고 가는 줄거리와 별개로, 영화의 분위기를 지배하는 것은 공효진이 연기하는 부인의 서정이다. 이주영 감독이 아니었으면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남자 스태프들에게 여주인공 마음을 이해시키는 게 가장 힘들었다”는 감독은 “영화가 개봉된 뒤 재훈이 지나(안소희)에게 끝까지 존댓말을 하는 모습을 낯설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에도 놀랐다. 그러고 보니 한국 사회에서 아저씨들이 나이 어린 사람에게 갖는 태도와는 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같이 있어도 따로 사는 것과 다름없는 가족들의 세계를 넘어 그가 가장 이상적으로 그린 관계는 “소녀와 아저씨, 강아지가 친애의 정을 맺는 풍경이었다”고도 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눈길> 이나정 감독. 엣나인필름 제공
<눈길> 이나정 감독. 엣나인필름 제공
■ ‘여자가 기록한 할머니들 이야기’ 이나정 감독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이 비극을 영화화하고 싶었다.” 류보라 작가가 극본을 들고 왔을 때 이나정 감독도 고개를 끄덕였다. <눈길>의 이 감독은 한국방송 드라마국 피디다. 한예리가 나오는 단막극 <연우의 여름>을 류보라 작가와 함께했다. <눈길>은 일제강점기 한 마을에 살던 열다섯살의 두 소녀 종분(김향기)과 영애(김새론)가 정신대로 끌려가는 이야기다. 영화는 2015년 광복 70주년 특집극으로 삼일절에 방송된 바 있다. “부장님이 많은 이들에게 이 비극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영화로 제작하면 영화제에도 갈 수 있고 극장에도 걸 수 있다고 해서 드라마와 영화가 동시에 진행되었다.” 영화는 상하이 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받고, 캐나다 밴프 월드 미디어 페스티벌 같은 미디어축제에도 갔다 왔으며, 제67회 이탈리아상에서 드라마·영화 부문 최고의 상 등을 수상했다.

1일 개봉 전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이 감독은 자료를 정리한 노트를 갖고 왔다. 노트에는 꼼꼼하게 타이핑하고 형광펜으로 강조한 글과 사진이 가득하다. “모르던 이야기라 자료 조사를 많이 했다.” 그는 노트에서 “공식적으로 조직된 대규모 강간 체제”라는 말을 가리켰다. 아시아 전역에서 정신대로 차출되었는데 80%가 한국인이었다. 그중 80%가 14~18살이었다. 그중 31%가 만주로 갔다. 종분과 영애가 열다섯살에 차출되어 만주로 가는 설정 등은 이런 자료를 참조하여 만들어졌다. “만주로 가는 기차가 역마다 서며 차출된 소녀들을 실었다. 그리고 멈출 때마다 일본군이 소녀들을 겁탈했다.” 무엇보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회고록이 얼개가 되었다. “권번(기생집)에 놀러 갔다가 잡혀간 할머니가 있었다. 노래 잘하는 할머니였는데 ‘덜 까불었으면 안 끌려갔을 텐데…’라고 말씀하시더라.” 할머니는 창가를 잘 부르는 아야코의 모델이 되었다. 무엇보다 그 시대 소녀들이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것이 궁금했다. “그런 와중에도 뛰어놀고 싶어서 만주에서도 이런저런 놀이를 했다고 하더라. 쉴 때마다 김치를 담갔다는 기록도 있고, 하얀 옷을 그렇게 빨더라는 기록도 보이고.”

영화는 소재를 ‘스펙터클’로 다루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아동 성폭력’을 소재로 할 경우 지켜야 할 준칙을 그대로 따랐다. “방에 함께 있는 장면은 컷을 나눠서 찍었다. 일본 군복 역시 어린 소녀들에게는 위협적으로 느낄 수 있다. 군인 컷을 찍고 소녀 컷을 따로 찍어서 붙였다. 성 관련 소품들도 촬영할 때만 잠깐 만지도록 유의했다.” 실루엣을 사용하는 식으로 국가적 폭력이 개인의 폭력으로 비칠 수 있는 장면도 없다. “담담하게 표현했다고 하지만 나는 여전히 너무 끔찍하다. 군인이 나가면 걸레질을 하고, 이름 써 있는 종이를 받고, 아침마다 물품을 받고, 얼마나 끔찍한가.”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해빙> 이수연 감독. 롯데시네마엔터테인먼트 제공
<해빙> 이수연 감독. 롯데시네마엔터테인먼트 제공
■ ‘관찰하는 스릴러’ 이수연 감독 이수연 감독은 <4인용 식탁>에서 모성이나 가족주의의 이미지에 차가운 공포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로부터 13년 뒤, 스릴러 <해빙>에선 평범한 변두리 동네의 섬뜩한 속내를 들춘다. 속도를 강조하는 한국 사회라는 열차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 추락이 가장 큰 공포라는 것이 두 영화 모두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이다.

“이 영화의 주제는 전락이다. 두 번의 경제위기 이후 중산층이 추락하고 계층 이동이 불가능한 시대에 느끼는 중년 남자의 불안을 다루고 싶었다.” 2월24일 기자간담회 때 이렇게 말했던 감독은 간담회가 끝난 뒤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예를 들면 <살인의 추억>은 민간인 희생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던 시절의 연쇄살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건 그 뒤 두 번의 경제위기 이후 한국 사회를 조망하는 것으로 읽어주길 바란다. 2015년 서초동 한 가장이 실직한 뒤 두 딸에게 몇년 동안 그 사실을 숨기다가 주식 투자까지 실패하자 가족들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경제적 몰락이 왜 그렇게까지 불안하고 수치스러운가. 먼저 우리 사회의 가치적 몰락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해빙>은 동탄 신도시로 바뀐 화성을 떠오르게 하는 가상의 신도시 화정에서 일어나는 여자들의 실종과 살인 사건을 다룬다. 내과의사 승훈은 자신이 강남에서 운영하던 병원이 망하자 이곳 정육점 2층에 세들어 살며 선배의 병원에서 일한다. 어느날 정육점 할아버지 정 노인(신구)이 그에게 수면내시경을 받다가 가수면 상태에서 토막 살인의 경험에 대해 털어놓는 듯한 말을 하면서 그의 일상은 공포로 물든다. 그를 찾아왔던 전처(윤세아)도 실종된다. 이 영화가 여자들의 공포를 자극한 <살인의 추억>이나 <추격자>의 후속편과도 같다면 앞의 두 편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내가 여자기 때문에 여자를 다르게 그려야 한다는 강박을 갖지는 않았다. 여자들이 희생되는 것, 그게 팩트다. 합리적으로 가능한 이야기를 해야지 희생자를 무조건적으로 독립적인 여성으로 그릴 순 없었다.” <해빙>은 스릴러면서도 몇가지 차이점이 있다. 승훈의 시각에서 보는 범죄 이야기가 지나간 다음엔 취조실 장면을 기점으로 다시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필리핀 혼혈 소년을 굳이 끝까지 쫓아가면서 이 드라마는 범죄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한다. 또 미연 등 병원 간호사들은 이 사건의 주요한 목격자이자 수시로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캐릭터다.

“어떤 기능만 하고 소모되는 것이 주로 여자들 캐릭터다. 미연은 분명한 자신의 욕망을 갖고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존재로 그리고 싶었다.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사랑한 것은 정육점의 손자, 필리핀 소년이다. 범죄라는 동물의 세계에서 암컷과 새끼는 약자다. 그럼에도 범죄의 희생양으로만 그려지지 않고 가장 큰 희망과 건강성을 갖는 캐릭터로 만들고 싶었다.” 이 살인극에서 감독의 관심은 다른 국적의 어린 소년에게 있었던 것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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