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기리 조(오른쪽)와 아오이 유가 주연을 맡은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오버 더 펜스>. 씨네룩스 제공
일본 소설가 사토 야스시는 자신이 나고 자란 홋카이도 하코다테시를 배경으로 3편의 소설을 썼다. 오 미보 감독과 구마키리 가즈요시 감독이 이미 각각 영화로 만든 <그곳에서만 빛난다>(2014), <카이탄 시의 풍경>(2010)에 이은 ‘하코다테 3부작’의 마지막 작품,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 <오버 더 펜스>가 16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오버 더 펜스>는 사토 야스시가 1990년 41살의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마지막 단편집이 된 <황금의 옷>에 실린 단편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영화 속 하코다테는 늘 조용하고 놀이공원조차 비어 있다. 사람들은 오로지 술집에서만 활기를 찾는 듯했다. 새들이 교미할 때 내는 기묘한 몸짓과 소리를 내며 수시로 구애의 몸짓을 펼치는 다무라 사토시(아오이 유)는 아내와 헤어진 뒤 이곳 하코다테로 내려와 직업학교 목공과에서 목수 일을 배우는 시라이와 요시오(오다기리 조)가 침잠해가는 도시에서 만난 유일하게 펄떡이는 존재다. 아니, 늘 웃고는 있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누구와도 가까이 하려 하지 않는 시라이와부터가 영화 속 도시처럼 텅 비어버린 사람이다.
1989년 사토 야스시는 이 소설을 썼을 무렵부터 이미 하코다테에서 일본의 쇠락과 무기력을 예감한 걸까. 이미 이 작은 도시는 <카이탄 시의 풍경>에선 조선소가 문을 닫으면서 빈손으로 돌아서야 하는 노동자들과 <그곳에서만 빛난다>에서 상처입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그려졌다. <오버 더 펜스>에선 전 술집주인, 전직 영업사원, 고졸, 이혼남 등 주변부 인생이 모여 삶을 지속할 궁리를 하는 곳이면서 눈부신 경제 발전의 꿈이 사라진 뒤 무기력과 공허에 시달리는 일본 사회를 상징하는 곳으로 묘사된다.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은 제작기에 “<카이탄 시의 풍경>은 구마키리 감독의 그림자 같은 부분이 전면에 나와 있는 느낌이 있고, <그곳에서만 빛난다> 역시 오 미보 감독의 필터를 통해 보여진다고 생각한다. 나는 하코다테라는 필터를 걸러서 이야기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3부작 중에서도 가장 보편적인 세계관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사토 야스시 소설을 원작으로 한 ‘하코다테 3부작’의 마지막 작품, <오버 더 펜스>는 무기력에 시달리는 일본 사회와 그곳에서 삶을 지속하려는 사람들을 그려낸다. 씨네룩스 제공
시라이와 요시오가 영문도 모르고 망가진 사회를 감당하며 인내해야 하는 지금의 일본인들을 은유하는 인물이라고 한다면, 파괴와 혼돈을 일삼는 다무라 사토시도 그렇다. 영화는 사토시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갑자기 화내고 기뻐하며, 남들을 사랑하고 공격하는 ‘비정상적인’ 여자가 됐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흰머리수리 독수리를 따라 하고 동물원의 새들을 놓아주고 싶어하는 그를 통해서 답답한 새장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욕망과 충동을 펼쳐보일 뿐이다. 깨진 유리창, 철창이 열렸어도 나오지 않는 새들, 하늘에서 갑자기 쏟아져 내리는 깃털 같은 장면을 통해 영화는 이것이 남녀의 사랑 이야기면서 우리의 마음이 이러한 처지에 이르게 된 상황에 대한 은유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담장을 넘기는 공이라는 뜻의 ‘오버 더 펜스’는 시라이와 요시오가 바라는 마지막 승부수다. 수컷 새들은 구애할 때 자신의 몸짓보다 더 큰 반경을 그리길 좋아한다. 이 영화에선 무력한 개인이 정해진 틀 안에서 벗어나려는 방편이기도 하다.
남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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