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버디 무비가 도착했다. 16일 개봉하는 <비정규직 특수요원>이다. 대작은 아니지만 ‘남성 버디 영화’ 공식을 미러링하는 의미있는 영화다. 버디 무비에 여성을 배치한 것만으로도 영화는 흥미로운 웃음을 자아낸다. 비정규직을 전전해온 장영실(강예원)은 국가정보국에 ‘댓글 알바’로 취직해 있다. 감원 명령이 내려온 순간, 보이스피싱에 걸려 거액의 업무비를 탕진한 박 차장(조재윤)이 돈을 찾기 위해 장영실을 보이스피싱 회사에 위장취업시킨다. 그곳에는 다혈질 경찰 나정안(한채아)이 먼저 위장취업해 있다. 헌재가 탄핵을 인용한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두 배우를 만났다.
■ 상황을 휘어잡는 코미디 “캐릭터가 잘 안 잡혀서 그림을 그려보았어요.” ‘도예, 꽃꽂이 등 재미없는 게 다 취미’라는 강예원은 그림도 그린다. “곱슬머리에 커다란 안경을 쓴 여자를 그리자, 속으로 움츠려들고 표현도 못하는 장영실이 떠올랐다.” 머리카락이 상하도록 ‘파마’를 하고 어두운 톤으로 화장을 했다. 갈색 안경을 뉴욕 빈티지숍에서 찾고 어중간한 길이의 바지를 골라 입었다. “장영실은 촌스러운 사람이 아니라, 멋부리고 싶은데 그게 제대로 안 되는 사람”이라서다.
‘무색무취’ 장영실은 알고보면 ‘능력자’다. 축산관리사에 중장비운전 등 22개 자격증은 영화에서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바탕이 된다. 자격증이 많은 것은 비정규직을 전전해서인데, 이렇게 비정규직을 능력자의 기본 요건으로 소환한 것이 흥미롭다. “영화가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영화를 찍고, 좀더 안정적이고 불안하지 않게 사는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했으면 좋겠다.”
장영실이 차장의 혼잣말을 듣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처음으로 폭소를 터트린다. 윽박지르는 차장에게 우물쭈물거리다 대답하는 순간의 타이밍은 코미디의 급소를 찌르는 느낌이다. “장영실이 되고 보니까 (대본에 없는데) 거기 내려온 블라인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더라.” 장영실의 웃음기 없는 우울함은 웃음의 포인트를 짚어낸다.
■ ‘조선절세미녀’보다는 한채아에 가까운 8일 기자간담회 뒤 한채아는 취재진에 ‘시간을 내주십사’ 부탁했다. “소속사 입장에서는 영화 개봉을 앞두고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은데, 그분과 좋은 만남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아이돌도 아니고, 연애 이야기를 숨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소속사는 공식 부인한 차세찌와의 열애설을, 용기 있게 고백했다.
나정안은 손이 먼저 나가고 욕을 입에 달고 다니는 지능범죄수사대 형사다. 나정안은 드라마 <각시탈> <장사의 신-객주>의 ‘조선절세미녀’로 살 때보다 한채아에 더 가까운 듯하다. “원래 평소에 메이크업도 안 하고 버스도 타고 다닌다. 나정안이 필요할 때만 구두를 신었다가 운동화로 갈아신는데, 내가 평소에 하던 버릇을 제안해서 만든 설정이다.”
‘남자 감독이 쓴’ 나정안의 대사는 그의 눈을 거치면서 좀더 현실적으로 변했다. “‘웃긴 수박씨 발라먹는…’ 이런 식으로 원래 긴 욕이 많았다. 상의 끝에 진짜 할 수 있는 욕, 들어도 기분 안 나쁜 욕을 쓰기로 했다. 그걸 연습을 해서 찰지게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극중 양 실장을 유혹하기 위한 나정안의 뻣뻣한 섹시 댄스는, 여성성이 전혀 드러나지 않기에 웃음을 자아낸다. 도가 넘치는 ‘섹시함’은 거부했다. 의자에 묶인 채 ‘미쳤어’ 노래에 맞춰서 춤을 추듯 발버둥치는 장면이 있는데 “너무 상황에 안 맞아서 이야기를 했다.” 결국 편집되어 빠졌다.
■ 다양한 여자영화 나왔으면 강예원은 “보통 남자가 파트너가 되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파트너가 채아씨라고 생각했다. 의식적으로 ‘오늘부터 나는 채아를 좋아해’라고 주입했다”고 말했다. 영화 속 둘은 진심을 발견한 뒤 소녀처럼 우정을 나눈다. “여자가 의리가 강하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비겁하지 않은 것 같다.”(강예원)
따로 인터뷰를 했지만 강예원과 한채아는 “여자영화가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일단 그런 영화를 성공시키는 게 급선무다. 이번 영화도 예산이 적고 부족한 게 많지만 최선을 다했다.”(강예원) “여배우라기보다 내가 설 자리가 없다. 영화가 잘 돼서 다양한 장르의 여자 영화가 나오면 좋겠다.”(한채아)
글·사진 구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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