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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통쾌하거나 공감하거나…당신이 여자라면

등록 2017-06-30 07:59수정 2017-06-30 08:33

여성 관점 서술 돋보이는 만화들

다혈질 주인공 눈길 ‘딜라일라 더크…’
성 역할 반전 재미 더한 모험물
아스퍼거 증후군 다룬 ‘제가 좀…’
‘정상’이라는 프레임의 횡포 비판
성폭력 사례 구성한 ‘그냥 좋게…’
상처받은 이들에게 위로 전해
<딜라일라 더크와 터키 중위>의 한 쪽.
<딜라일라 더크와 터키 중위>의 한 쪽.
“(배의) 우현을 모르면 어떡해.” “전 갑판을 정리했다고요!” “그래, 완전히 정리해버리셨지. 은혜를 갚고 싶다고 했지? 내 인생을 더 꼬이게 하지 마.”

토니 클리프의 ‘딜라일라 더크’ 시리즈에 나오는 딜라일라 더크와 에르데모글루 셀림의 대화다. 배의 우현을 모르는 이는 남자인 셀림이고 그를 닦달하는 이는 여자인 더크다. 원작을 재탄생(리부트)시킨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와 <원더우먼>에서 성역할 반전이나 여성의 호쾌한 액션에 쾌감을 느꼈다면 이 시리즈 만화에도 열광할 법하다. 최근 한국에서 <딜라일라 더크와 터키 중위>, <딜라일라 더크와 왕의 동전> 두 권의 만화가 한꺼번에 출간되었다(문학세계사 펴냄).

<딜라일라 더크와 왕의 동전> 표지.
<딜라일라 더크와 왕의 동전> 표지.
딜라일라 시리즈를 비롯해 최근 출판만화시장에선 여성 관점의 서술이 눈에 띈다. <제가 좀 별나긴 합니다만…>(이숲 펴냄)은 여성 아스퍼거 증후군을 겪는 이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작품이다.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끼는 발달장애인 ‘아스퍼거 증후군’은 남성 대 여성의 비율이 4 대 1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그 비율도 적은데다,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가장하는 사람이 많아 내면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실제 아스퍼거 증후군인 쥘리 다셰가 글을 쓰고, 마드무아젤 카롤린이 그림을 그렸다. <그냥 좋게 받아들이세요>(북레시피 펴냄)는 그래픽 디자이너 마리아 스토이안이 성적 괴롭힘과 성폭력 사례 20가지를 구성한 만화다. 마리아 스토이안은 각 에피소드를 다른 그림체로 그리는 실험을 감행했다. 에피소드에는 남성이 피해자로 등장하는 사례들도 수집되었다.

딜라일라 더크 시리즈의 주인공은 세계 곳곳에서 47가지의 검술을 익히고 약탈과 칼싸움으로 악명을 얻었다. 그가 셀림과 만난 사연은 <딜라일라 더크와 터키 중위>에 나온다. 19세기 콘스탄티노플의 궁전, 더크는 궁전에서 고대문서를 훔치려 침입했다가 잡힌다. 오스만튀르크의 신식군대 예니체리(전쟁포로와 기독교인 소년들을 이슬람교로 개종시켜 군인으로 양성했다고 한다)에 속한 셀림은 그를 심문한다. 하지만 더크가 탈출하자 셀림은 그의 탈출을 도왔다며 즉결처형의 위기에 놓인다. 목에 칼이 내리꽂히기 직전 더크가 셀림을 구하면서 ‘콤비’가 탄생한다. 더크는 배를 개조해 비행선을 만든 발명가지만, 과거를 과장해서 말하는 허풍선에, 다짜고짜 덤벼드는 다혈질이다. 식사 뒤 이에 낀 음식물을 손가락으로 빼먹고, 비 내리는 배에서 잠들었다가 셀림이 깨우자 “나 안 잤어”라고 하는 장면 등에서 ‘허당 매력’이 흐른다. 셀림은 셜록 홈스 옆의 왓슨처럼 이야기를 서술한다. 그는 세상 최고의 차를 끓일 줄 아는 섬세한 면이 있고, 더크와 반대로 전략을 짜고 행동한다. 남녀가 함께 다니지만 한 톨의 로맨스도 없다. 더운 날 시냇물에 들어간 더크가 셀림을 물속으로 끌어들이는 장면에서조차 성적 긴장감이 없다. 온라인으로 연재 중 만화계의 아카데미로 불리는 아이스너상 후보에 세 차례 올랐고, 미국에선 2013년 책으로 발간돼 출판웹진 <퍼블리셔스 위클리>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디즈니에서 영화화를 진행 중이다.

<제가 좀 별나긴 합니다만…>과 <그냥 좋게 받아들이세요> 표지.
<제가 좀 별나긴 합니다만…>과 <그냥 좋게 받아들이세요> 표지.
<제가 좀 별나긴 합니다만…>의 주인공은 스물일곱살 직장인 마그리트다. 항상 이른 아침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를 거쳐 출근한다. 이른 아침에 오는 까닭은 소음을 견딜 수 없어서다. 업무가 한창일 때는 화장실에 가서 심호흡을 하고 한숨을 돌려야 한다. 점심시간도 혼자다. 남자친구의 친구들은 그를 가리켜 “갑갑하다, 심하다, 별난 사람”이라 말하고, 직장동료들은 “우리를 놀리는 것”이라 여긴다. 마그리트는 결국 증상을 컴퓨터에 입력해보고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마그리트는 자신의 병을 안 뒤로 같은 병을 앓는 이를 만나 괴로움을 나누고 견딜 수 없는 업무방식에서 해결책을 찾아간다. 원작자 쥘리 다셰는 “‘정상’이라는 것이 횡포로 작용할 수 있다”며 “당신은 치료받을 필요도, 변해야 할 필요도 없다. 당신의 별난 점은 문제가 아니라 해답”이라고 말한다.

<그냥 좋게 받아들이세요> 역시 견딜 수 없는 체험이 ‘당신 혼자 것이 아니다’라는 위로를 주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각자의 고통을 나눔으로써 살아남은 자들이 그들의 아픈 경험으로부터 보다 쉽게 벗어날 수 있으며, 성폭력에 관용 없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는 점은 희망적”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책의 마지막엔 들어주기, 도와주기, 지켜보기, 중단하기, 다가가기 등 ‘살아남은 자들’이 서로 연대하는 방법을 정리해두었다. 글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사진 각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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