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4살을 맞은 배우 윤여정이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트로피를 안으면서 연기 인생의 최전성기를 맞았다.
윤여정은 19살이던 1966년 <동양방송>(T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티브이(TV) 드라마에서 활동하던 그를 스크린으로 불러들인 이는 <하녀>(1960)로 유명한 김기영 감독이었다. 김 감독은 자신의 영화 <하녀>를 리메이크한 <화녀>(1971)의 주인공으로 신인 윤여정을 낙점했다. 시골에서 상경해 부잣집에 가정부로 취직했다가 주인집 남자의 아이를 낙태하는 명자 역이었다. 명자의 광기와 집착을 파격적인 연기로 표현한 윤여정은 대종상영화제 신인상,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스페인 시제스 국제판타스틱영화제 여우주연상 등을 받으며 크게 주목받았다. 이듬해 김 감독의 <충녀>(1972)에도 출연했다.
하지만 윤여정은 한창 인기를 누리던 이즈음 갑자기 미국으로 건너가 가수 조영남과 결혼하며 연기 활동을 쉬었다. 이후 1980년대 중반 귀국하기까지 가정에만 집중했다. 남편과 이혼한 뒤 다시 연기를 시작한 윤여정은 훗날 인터뷰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목숨 걸고 연기를 했다. 아이를 키워내야 해 말도 안 되게 죽는 역할, 막장극도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생계를 위해 직업인으로서 작품과 배역을 가리지 않고 연기를 한 것이다.
영화 <충녀> 스틸컷. 네이버데이터베이스 갈무리
두 아들을 키우는 일에서 해방된 환갑 이후에는 작가주의 감독들과 많은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다. 특히 임상수 감독(<바람난 가족> <그때 그 사람들> <오래된 정원> <하녀> <돈의 맛> <헤븐: 행복의 나라로>), 홍상수 감독(<하하하> <다른 나라에서> <자유의 언덕>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이재용 감독(<여배우들> <죽여주는 여자>) 등 한번 인연을 맺은 감독과 꾸준히 작품을 하며 자신만의 색깔을 공고히 해왔다. 파격적인 연기 도전에도 주저함이 없어 <죽여주는 여자>(2016)에서 노인을 상대로 성을 파는 ‘박카스 할머니’를 연기해 국내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 스틸컷. 씨지브이아트하우스 제공
“60살 넘으면서부터 웃고 살기로 했어. 전에는 생계형 배우여서 작품을 고를 수 없었는데, 이젠 좋아하는 사람들 영화에는 돈 안 줘도 출연해. 마음대로 작품을 고르는 게 내가 누릴 수 있는 사치야.” 윤여정이 <찬실이는 복도 많지>(2020)의 김초희 감독에게 해줬다는 말이다. 홍상수 감독 영화의 프로듀서로 처음 인연을 맺은 김 감독의 영화에 윤여정은 기꺼이 노개런티로 출연했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컷. 찬란 제공
윤여정의 이런 태도는 <미나리>로 이어졌다. 리 아이작 정(한국 이름 정이삭) 감독의 진심을 느끼고 열악한 환경인 줄 알면서도 흔쾌히 출연을 결정했다.
윤여정은 차기작으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애플티브이플러스의 글로벌 프로젝트 드라마 <파친코>를 촬영 중이며, 세계 여러 곳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